[투자 썰쩐] (10) 44조 굴리는 자산운용사 CIO "채권같은 주식에 투자"
[ 이송렬 기자 ] (10)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국내부문운용총괄 부사장(CIO)
"가치투자는 돈을 버는 것 말고도 좋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투자 대상의 시세보다 내재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이 트이면 그 다음에는 사물과 현상의 본질과 가치, 나아가 삶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부사장(50·사진)은 사회 초년병 시절 삼성생명 투자분석팀에 재직했다. 발 빠른 정보와 넓은 인맥을 무기로 개인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모멘텀 투자(시장 심리·분위기 변화 따른 추격매매 투자방식)는 거액의 손실로 돌아왔다.
생활이 힘들어진 그는 돈을 더 준다는 말에 솔깃해 삼성투신운용(현 삼성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주식을 뒤로하고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채권운용부에 들어갔다. 여기서 투자 방법은 물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채권'을 알게 됐다. 그는 채권을 알고 난 후 주식을 보는 눈은 물론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변했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무실에서 그의 투자론을 들어봤다.
◆"남은 건 마이너스 통장 뿐…죽으란 법은 없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흔하지 않던 미국 MBA(경영대학원) 과정을 템플대학교에서 밟은 서준식 부사장은 삼성생명 투자분석팀에 입사했다. 주변 증권사 친구들로부터의 정보가 넘쳐흘렀고 기관투자가로서의 네트워크도 탄탄했다.주식투자에 대한 자신감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시작한 주식투자는 1997년 IMF 사태와 함께 마이너스 통장으로 남았다. "자신감만 가지고 시작한 투자의 끝은 결국 '폭망'이었습니다. 가격을 쫓는 모멘텀 투자로 당시 제 연봉의 10배가 넘는 빚을 지게 됐습니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던가. 그는 머지않아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다니던 보험사가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자리를 옮길 직원을 찾았고 그는 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전공인 주식운용이 아닌 채권운용부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주식투자로 빚까지 지고 자신감을 마저 잃었던 당시 연봉을 1000만원이나 더 올려준다는 소리에 삼성투신운용으로 갔습니다. 회사에서는 주식운용팀을 권했지만 고객의 돈까지 잃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잦은 야근으로 모두가 기피하던 채권운용부서로 가게 됐죠. 조금 엉뚱한 시작이었지만 저에게는 투자는 물론 인생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LG생활건강·농심 등 채권형 주식에 관심 가져야"
채권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면서 그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투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채권 업무를 하면 뗄 수 없는 것이 금리입니다. 금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이슈는 물론 정말 다양한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 하더군요. 채권의 구조와 금리를 이해하고나니 투자 전반에 대한 눈이 떠졌습니다. 투자의 기본이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임에도 단기 수익에 눈이 멀어 모멘텀 투자를 했던 것이 실패요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주식투자로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던 당시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은 5%, 채권시장의 기대수익률은 14%였습니다. 14% 수익을 버리고 5%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 기준 국내 주식시장 주가수익비율(PER)를 활용해 계산한 결과 1997년 6월 국내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은 5%가량, 5년 만기 국고채·은행보증채 등 채권시장에 투자했을 때 기대수익률은 14%가량이었다는 설명이다.
채권은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등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일종의 차용증서다. 만기 시 원금과 함께 발행 당시 확정한 이자를 받는다. 채권을 알고나니 주식 중에서도 채권처럼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을 찾게 됐다.
그렇게 찾은 것이 바로 '채권형 주식'이다. 채권형 주식은 말 그대로 채권과 같이 미래가치(이자)를 가늠할 수 있는 주식들을 말한다. 실적이 꾸준하고 외부변수에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는 종목들이다. 서 부사장이 꼽은 채권형 주식은 LG생활건강 농심 롯데제과 등이다.
서 부사장은 기대수익률을 산정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PER의 역수'(1/PER)를 활용한다. 현재 PER로 1을 나누면 1년간의 기대수익률을 구할 수 있다. 또 한국거래소에서 제공하는 코스피시장 PER 혹은 MSCI 한국시장 PER를 활용해 해당 주식의 고평가나 저평가 여부를 판단한다.
"미래가치는 곧 기대수익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채권은 수익률이 8%, 10% 등 확정돼 있어 미래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반면 주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채권형주식은 채권처럼 명확한 기대수익률을 구하긴 어려워도 대략적인 기대수익률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경기, 조선 경기 등 '경기'가 붙지 않는 업종과 바이오와 게임 등 연구개발비 등이 크게 투자되는 종목은 피하고 본업에 충실하면서 꾸준히 실적을 기록해 기대수익률을 측정할 수 있는 종목이 채권형 주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 부사장의 철학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상품에도 녹아들었다. '스노우볼인컴펀드'는 채권형주식과 국내 채권을 선별해 투자한다. 채권형주식 투자 대상 종목을 채권처럼 등급을 나눠 분류하고 각 등급마다 목표수익률을 정한다.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면 투자하고 반대로 하락하면 매도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2월24일 설정된 11개의 스노우볼인컴펀드는 현재 1.39~2.72%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아직은 수익률이 낮지만 '스노우볼'이라는 이름처럼 장기로 갈수록 수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지난 25일 국내 기준 44조원(순자산가치·NAV)을 굴리고 있다. 서 부사장은 이 44조원의 투자를 총괄 책임진다.
◆"기대수익률 계산 못하면 주식 하지 마라"
결국에는 가격을 쫓는 모멘텀 투자가 아닌 가치투자를 해야한다는 조언이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투자에 임하고 단기에 수익을 내려하기 보다는 긴 시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멘텀 투자가 자산가치의 상승이나 하락을 전망해 가격을 쫓는 투자 방법이라면 가치투자는 자산의 가치를 분석하고 예측해 자산 가치 대비 현재 시세가 낮을 때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입니다. 상위 0.01%의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면 몰라도 모멘텀 투자에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드뭅니다. 가치투자는 자신 만의 기대수익률과 매수·매도 시점 등을 정해 투자하는, 잘 짜여진 레시피를 보면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단기적으로 전망하게 되면 전망이 적중할 확률은 매우 낮아지게 됩니다. 예컨대 동전의 앞면 수익률이 10%, 뒷면이 –10%면 한 번 던졌을 때 10%가 나올 확률보다 여러 번 던졌을 때 10%가 나올 확률이 더 높습니다. 주식시장처럼 기대수익률이 높은 곳은 단기보다 장기로 투자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주식의 기대수익률이나 나만의 투자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주식에서 손을 떼는 것이 낫다는 말도 전했다.
"워렌 버핏은 미적분처럼 복잡한 수학 계산법이 아니라 곱셈과 나눗셈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아주 기본적인 기대수익률 산정마저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주식을 하지 마시고 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의 기준과 철학이 담기지 않은 투자는 투기일 뿐입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사진·영상=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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