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백신 불안, 진짜와 가짜

2019. 2. 2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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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거부와 수용 사이 ‛백신 망설임’…
홍역퇴치국에서 벌어지는 백신 논란 팩트체크

1월21일 홍역 확진자가 발생한 경기도 안산의 하나병원 입구에 홍역 예방 수칙 등에 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왜 이렇게 접종이 밀렸어요?”

지난 1월 말, 15개월 된 아이 건강수첩을 들여다본 의사가 타박하듯 물었다. “아, 그게….”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홍역이 유행이니까 홍역부터 맞힐게요.” 아이의 양팔에는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MMR)과 수두(Var) 백신 주사가 꽂혔다. 아이는 앙앙 울었다. 보름 뒤 아이는 폐렴구균(PCV) 백신을 맞았다. 아이는 또 앙앙 울었다. 이틀간 고열로 앓았다. 아직도 예방접종 예약 날짜는 두 번이나 더 잡혀 있다.

아이를 고생시킨 ‘연쇄 접종’은 엄마·아빠의 귀찮음(‘토요일엔 늘어져 있어야지’)과 무심함(‘나도 홍역 앓았는데 잘 컸어’)과 연민(‘아이 우는 게 불쌍해’)에서 비롯됐다. ‘내 아이가 만분의 일 확률이라는 부작용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한켠에 있다.

홍역 유행이 미개한 부모들 탓?

최근 전파력이 강한 홍역이 유행해 예방접종에 대한 일부 부모들의 불안과 불신이 또다시 고개 들고 있다. 한국은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홍역 퇴치국 인정을 받았으나, 올해 들어 2월20일까지 59명이 홍역 확진을 받았다. 벌써 지난해 확진자 규모(26명)를 넘어섰다.

육아 인터넷 카페에는 “홍역백신이 효과도 없는 거 같은데 꼭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초보 엄마라 백신 부작용이 걱정되는데 내가 미개한 건가”라는 글이 줄을 잇는다. 이런 글에는 “접종 안 시키는 애들 때문에 다 사라진 홍역이 다시 돌고 있다” “미개한 엄마 때문에 아기가 고생이다”라는 또 다른 부모들의 댓글이 붙는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흔히 그어지는 ‘백신 전선’이다.

정말 미개하거나 극성인 일부 부모의 예방접종 거부나 지연으로 전염병이 다시 돌고 있는 걸까. 최근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을 예방하는 혼합백신인 MMR 접종률은 2017년 기준 97.6%로 같은 연령대에 백신을 맞히는 미국(91.1%), 영국(92.8%), 오스트레일리아(95.3%) 등에 견줘 높다. 1년 전(97.8%)와 비슷하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최근 동남아와 유럽 등에서 홍역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잦은 국제 교류로 (바이러스가)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며 “접종률이 낮아서 생긴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홍역만이 아니다. B형간염,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DTaP), 소아마비(IPV) 같은 주요 백신 접종률도 선진국 평균치를 크게 웃돈다.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의 효과가 크다. 정부는 2014년부터 만 12살 이하 어린이가 17종의 감염병 백신을 무료로 맞을 수 있게 해왔다. 감염병으로부터 몸이 약한 어린이를 보호하는 동시에 공동체를 지키는 ‘집단면역’(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면역을 가지고 있을 경우 병원체 전파가 차단되는 현상)을 확보하려는 조처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준해서 봐도 필수 예방접종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높은 백신 접종률이 곧 백신에 대한 확신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부모들 중에도, 인공면역을 만들기 위해 인간 몸에 주입하는 가짜 병원체인 백신 성분이 안전한지, 그로 인한 부작용(예방접종 뒤 이상 반응)이 없는지 의심하는 이가 꽤 많다. 2017년 12월 질병관리본부가 자녀가 있는 20~40대 여성 1068명에게 ‘인플루엔자 무료 예방접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백신 성분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응답은 전체의 15.3%, ‘이상반응이나 부작용을 우려한다’는 응답은 20.5%로 나왔다.

백신 부작용 우려는 실재

이처럼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 없이 마지못해 예방접종을 수용하는 부모의 행동은 ‘백신에 대한 망설임’으로 설명된다. 양극단인 ‘백신 거부’와 ‘백신 수용’의 중간 어디쯤에서 백신 접종을 고민하는 부모들에 대해 세계보건기구가 규정한 개념이다. 2017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자연주의 육아 모임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처럼 ‘수두파티’(수두 백신을 맞히지 않고 수두에 걸린 아이들과 함께 놀게 해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를 하며 극단적으로 백신을 거부하는 부모들은 극소수지만, 접종을 주저하는 부모들은 한국에서 꽤 많다.

만 1살, 4살, 6살, 8살 아이 4명을 둔 강성진(가명)씨는 셋째 아이까지는 “정부에서 맞으라고 하니 아무 생각 없이” 필수 예방접종을 다 했다. 그러다 3년 전쯤부터 “백신에 수은이 있다더라” “백신을 맞고 나서 자폐가 생겼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선 3개월 된 막내는 접종하지 않고 있다. “1% 확률도 내 아이한테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강성진씨가 들은 정보에는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가 섞여 있다. 먼저 수은, 알루미늄,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든 백신이 있긴 하다. 알루미늄은 적은 항원으로 면역반응을 강화하는 첨가제로, 수은은 박테리아 오염에서 백신을 보호해 오래 사용케 하는 보존제로 쓰인다. 현재 어린이 필수 예방접종 중 수은을 보존제로 사용한 백신은 없지만, 알루미늄은 지금도 면역증가제로 흔히 쓰인다. 포름알데히드는 백신 생산에서 만들어지는 부산물로 대부분 정제 과정에서 사라진다. 질병관리본부 예방관리과 관계자는 “수은과 알루미늄은 워낙 극미량이라 과학적으로 위험을 일으킨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부작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백신 구성 물질로 인한 이상반응이나 백신 생산·유통·접종 과정의 오류로 가볍게는 발열과 부기, 심하면 뇌병증이나 장기도 손상시킬 수 있는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쇼크)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보건 당국도 인정한다. 2018년 어린이에게 실시한 총 1400만 건의 필수 예방접종 중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받아 피해를 보상받은 사례는 32건이다.

홍역백신 자폐 유발은 허위 정보

반면 ‘홍역백신이 어린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정보는 사실이 아니다. 1998년 영국 의사가 이런 내용의 논문을 발표해 전세계 부모들을 경악시켰으나 이후 연구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다.

최근엔 국내외에서 자궁경부암을 예방해주는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만 12살 여성 청소년 대상)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공식적인 부작용인 발열, 메스꺼움을 넘어 만성통증과 감각이상 같은 부작용이 있다는 신고가 잇따라서다. 2012년 HPV 백신 접종을 도입한 일본에서는 1년 만에 2천여 건의 부작용 신고가 접수되자 접종 권고를 중단하기도 했다. 황승식 교수는 “일본 학계에서 조사한 결과 (백신 이상반응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관리 부실 역시 불안을 부추긴다. 지난해 11월, 만 1살 미만에 흔히 쓰이는 일본제 경피용 결핵예방(BCG)에서 독극 물질로 알려진 비소가 검출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회수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극히 소량이 검출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식약처가 백신 원재료인 분말과 달리, 이번 비소가 검출된 생리식염수 등 첨부용제는 별도로 검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비판받았다.

백신 접종을 망설이는 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충분한 설명과 설득이다. 보건 당국이나 의사들은 “부모들이 인터넷 가짜뉴스에 빠져 있다” “백신은 무조건 맞아야 한다”고 되풀이할 뿐 객관적 증거로 백신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노력을 크게 키울이지 않는다.

지난해 8월, 고미진(가명)씨는 코피를 쏟는 15개월 된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뇌수막염과 폐렴구균 접종을 하고 돌아온 이튿날 새벽이었다. “일주일 전에도 두 가지 접종을 동시에 했기에 아이 몸이 부담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접종한 직후 코피가 났다는 아이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응급실 의사는 “접종 부작용은 거의 없다. 집이 너무 건조해서 코피가 난 것 같다”며 미진씨를 돌려보냈다. 그 뒤 어린이집에 접종내역서를 보내려고 필수 예방접종은 하고 있어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집단 면역을 위해

부모들도 불안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엄마 의사 야옹선생의 초록 처방전>을 쓴 박지영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보호 장치로 백신을 이해하면 부모들의 마음도 편해질 거라고 조언한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처럼 면역력이 너무 떨어진 아이들은 백신 접종을 못하니까 집단면역의 보호를 받아야 해요. 세금이랑 비슷한 거죠. 나는 세금을 안 내고 다른 사람이 낸 세금으로 살면 가장 좋지만 그게 올바르진 않잖아요. 내가 세금을 내서 못 내는 사람도 도와줄 수 있으면 좋잖아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백신 불안, 세계는?

예방 접종을 선택할 권리를 달라

2월20일 미국 워싱턴에서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엄마들이 아이를 안고 행진하고 있다. REUTERS

한국과 달리 세계적인 홍역 대유행의 배경에는 반백신 운동이 있다. 그 구호는 ‘위험한 백신 거부’에서 ‘백신 접종을 선택할 권리’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유럽에서는 ‘자녀가 백신을 맞아야 한다면 국가가 아니라 부모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모 개인이나 집단이 늘고 있다. 채식이나 금연처럼 백신 접종도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생활양식이라는 것이다.

‘백신=자폐증’이라는 근거 없는 공포와 제약회사의 로비로 과도한 백신을 맞고 있다는 의심이 ‘백신 거부 운동’의 중심에 있던 1970~2000년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천연두 백신을 시작으로 집단 백신 접종이 시행된 1853~71년, 철학적·종교적 이유로 백신 접종 강제화에 저항했던 흐름과도 결이 다르다.

접종 결정권을 중시하는 움직임은 낮은 접종률을 끌어올리려 접종 의무화를 밀어붙이는 국가에서 흔히 나타난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7월 아동·청소년이 10개 백신을 맞아야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법안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MMR) 백신 접종률이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95%)을 크게 밑도는 80%대로 떨어져 홍역이 대유행하자 접종을 강제했으나, 부모들이 집단 망명을 신청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2016년 7월부터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어린이의 등교를 제한한 ‘백신 접종 의무화법’이 시행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법안을 철회하라’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접종을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보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어느 백신을 맞힐지 스스로 결정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과학·기술학부의 스튜어트 블룸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두 얼굴의 백신>에는 결핵(BCG)·장티푸스 백신처럼 오래전부터 써온 백신은 자녀에게 접종하는 반면, 수두·로타 바이러스 백신 같은 새로운 백신은 전문가와 상의해 접종하지 않는 캐나다 퀘벡과 브라질의 부모들을 소개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선 엄마의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의 자녀가 엄마의 교육 수준이 가장 낮은 자녀 집단보다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접종률이 낮게 나타나기도 한다. 중산층 이상의 부모가 스스로 정보를 알아보고 판단해 백신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이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논란이 벌어진 2017년 9월 정당한 사유 없이 아동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 등에게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이른바 ‘안아키 방지 법안’을 제출했다.

지금은 보건 당국이 아동에게 필수 예방접종을 하도록 권고하고 어린이집·유치원 입학시 접종 내역서를 내도록 하지만, 처벌 조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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