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엾은 강아지 도와주세요"에 늘어나는 '눈먼 후원금'

유경선 기자,김연수 기자 2019. 2.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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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자처하지만 "상당수 후원내역 증빙 안해"
'똑똑한 후원자' 돼야.."감정에 호소하는 후원글일수록 의심"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김연수 기자 = # "좋은 마음으로 D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후원금을 운영진의 술값과 나들이비로 쓰는 것을 보고 실망하기 시작했어요. 급기야는 지어낸 사연을 인터넷에 올려서 후원금을 모으는 것을 보고 단체 활동을 그만뒀습니다."

# "친분이 있는 2~3명이 모여 동물구호 활동을 한다며 한달에 4000만원씩의 후원금을 모으고서도 영수증 한 장 올리지 않는 경우도 봤어요. 저는 활동하던 단체에 지출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다가 도리어 고소를 당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개농장이나 불법 번식장처럼 열악한 환경에 처한 동물들을 구조하는 활동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동물들의 사진과 글이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진다.

이 같은 게시글 말미에는 대부분 '가엾은 동물을 구조하는 데 쓰겠다'며 후원을 부탁하는 메시지와 함께 후원 계좌가 따라붙는다. 동물보호 분야 관계자에 따르면 사연과 사진에 따라 일주일 만에 수천만원가량의 후원금이 모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보호 분야 관계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과 글을 앞세워 후원금을 모아 놓고는 사용 내역을 제대로 공개·증빙하지 않는 행태가 빈번하다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돈이 동물보호보다 후원금이라는 젯밥에 관심을 둔 '가짜 활동가'들의 눈먼 돈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후원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헐거운 윤리의식도 문제지만, 일차원적 감정에 치우친 후원자들의 행태도 문제로 지적됐다. 후원자들이 단체를 꼼꼼하게 검증하거나 후원금 사용 내역을 살피는 '똑똑한 후원'을 해야 후원금을 노리는 거짓 구호 행태를 방지할 수 있다.

이밖에도 1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모으려는 경우 등록관청에 신고해야 하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에 빈틈이 많은 만큼 손질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 구조' 후원금 받아 개인 유용…"단체 절반은 돈 문제"

G 단체가 단체 페이스북 페이지에 동물 구조 활동을 벌인다며 올린 사진.© 뉴스1

서울북부지검은 지난 1일 서울 중랑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G 동물보호단체 대표 서모씨(37)를 사기 및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서씨는 지난 2016년 1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개농장을 폐쇄하고 동물을 구조한다는 명목으로 후원금을 모아 이중 98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서씨가 실제로 동물보호활동에 쓴 금액은 전체 후원금의 10% 이내였던 것으로 드러났고, 서씨는 1000만원 이상의 돈을 모으면서도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지 않았다.

또 이 단체는 실제로 동물을 치료하는 등 후원금 모집 명목에 맞게 후원금을 지출하기보다, 불법 개농장을 방문해 농장주에게 철거를 약속받는 등 간접적인 구호활동을 벌인 게 대부분이었다.

이 단체 회원 23명은 대표 서씨가 동물을 구조해 놓고도 제대로 돌보지 않거나, 후원금 관리가 못미덥다는 문제가 계속되자 서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G 단체를 고발하는 데 동참했던 A씨는 "'동물판'에 있다 보니 동물구호 활동을 한다고 후원금을 모으는 단체의 절반가량은 돈 문제가 있다고 체감된다"고 말했다.

◇"사용내역 비공개…문제삼으면 고소·고발 등 보복"

동물보호 분야 활동가 및 관계자들은 G 단체와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수많은 인터넷 카페나 SNS 계정이 동물보호 활동을 한다고 자처하지만, 비영리법인이나 사단법인으로 단체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판만 내걸어 후원금을 끌어모으고 이를 제대로 증빙하지 않아도 제동을 걸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물보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B씨는 "G 단체는 그나마 일이 잘 풀려 재판에 넘겨진 것"이라며 "G 단체 대표 서씨는 회원들이 후원금 사용 내역을 올리라고 요구하자 워낙 엉터리로 이를 올려놔 덜미가 잡혔지만, 사용 내역을 아예 공개하지 않거나 제한된 회원들에게만 공개해 증거를 잡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일부 단체들은 '페이팔'과 같은 전자결제 플랫폼을 이용해 모금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후원금을 받으면 돈이 들어오고 나간 내역을 확인하거나 추적하기가 국내 계좌보다 어렵다.

이 같은 운영 행태로 인해 증거를 모으기도 어렵지만, 증거를 모아서 고소·고발 등 조치를 취해도 도리어 명예훼손이나 무고죄 등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동물보호 분야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보복을 우려하며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G 단체 대표 서씨는 구조활동과 지출증빙이 허술하다고 문제삼는 회원 3명을 도리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서씨는 자신의 활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다른 회원들을 보호소 물품을 훔쳐갔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등 방법으로 괴롭히기도 했다고 A씨는 털어놨다. G 단체는 대표가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SNS상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D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했던 C씨도 이 단체가 불특정 다수에게서 후원금을 받으면서도 이를 간식비와 나들이비 등으로 지출하거나, 1000만원 이상을 모금하면서도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문제를 제기했다가 '음해세력'으로 몰리며 무고죄로 고소를 당했다.

◇'기부금품법' 구멍 지적도…"회원이 후원하면 법 대상 아냐"

동물보호단체의 활동이 미심쩍은 경우 제동을 걸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기부금품법'이다. 1000만원 이상을 모으면서도 기부금품법 소관부처인 행정안전부나 관할 지자체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1000만원 이상 10억원 미만의 금액은 관할 지자체에, 10억원 이상의 금액은 행안부에 모집을 등록하게 돼 있다.

하지만 기부금품법 제2조의 '소속원' 개념이 발목을 잡는다. 현재는 인터넷 카페 회원도 '소속원' 개념으로 인정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를 위시하며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회원들로부터 후원금을 모으면 기부금품법의 제재 대상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카페 회원들로부터만 후원을 받는다고 해도, 카페 회원의 지위는 클릭 몇 번만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모금 행위에 가깝다는 지적이 적지 않아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관련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제도 개선을 할 부분"이라며 "현재는 기부금품법 2조의 소속원 개념이 수사기관의 판단에 그때그때 맡겨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길거리 모금의 경우에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모금을 하는 게 아니냐는 민원이 종종 들어오지만 현장에서는 기부금품법상 '소속원'의 지위를 확보시키기 위해 가입서를 받는다"며 "이런 때는 문제를 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비영리법인이나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단체 중 1000만원 이상 10억원 미만의 후원금을 받는 단체들의 현황은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며 "후원하려는 단체가 이 목록에 있는지를 확인하면 부정한 단체에 후원금을 보내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단체 검증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똑똑한 후원' 필요"

© News1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동물보호 활동가 및 관계자들은 현재 후원금과 관련된 관행을 지적하면서도, 이런 문제들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정직하게 동물보호 활동을 하는 단체들까지 후원이 위축되는 등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나같이 우려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는 후원자들이 '똑똑한 후원'을 해야 선량한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유영재 비글네트워크 대표는 "막연히 '불쌍하다'는 생각에 후원금을 무턱대고 보내다 보니 '케어' 사태와 같은 일도 벌어진 것"이라며 "후원하려는 단체가 얼마나 지출 내역과 보호 활동을 투명하게 개방하고 있는지 검증한 후에 후원금을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 단체가 비영리법인이나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최소한이 절차"라며 "장기적으로는 동물보호단체를 허가제로 운영하거나 자격사항을 명확하게 정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B씨는 "두 번 세 번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동요돼 후원금을 보내는 것은 결국 동물들에 대한 자신의 부채감을 해소하려는 마음에서 비롯한 게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며 "자극적인 사진이나 글로 후원을 유도할수록 믿을 만한 단체인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G 단체 고발인으로 나섰던 A씨도 "지나치게 구구절절한 이슈몰이를 하는 단체들은 게시글을 조금만 살펴봐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보인다"며 "활동가들의 사기를 꺾을까봐 후원금 사용 내역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문이 나는 부분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kays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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