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빨간날]"열심히 좀 살지"..두 번 우는 졸업유예생

한민선 기자 2019. 2.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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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유예생은 웁니다-②]대졸 예정자 10명 중 1명만 정규직 취업..심리적 고통, 경제적 어려움 겪어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언니 열심히 안 살았구나, 많이 놀았나 봐"

최지수씨(24·가명)는 최근 친한 동생에게 "이번에는 졸업을 안 한다"고 말하자 이 같은 말을 들었다. 그는 "많이 놀았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다"며 "동생이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비참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대학생과 졸업생, 애매한 경계에 있는 '졸업유예생'이다. 이수 학점, 인턴쉽 등 졸업요건을 모두 충족했지만, 취업을 못해 졸업만 미뤘다. 한국 사회에서 '졸업을 유예했다'는 말은 곧 '취업·합격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올해 4년제 대졸 예정자 10명 중 9명은 정규직 취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올해 국내 4년제 대학 졸업예정인 대학생 1112명을 대상으로 '현재 취업 현황과 졸업식 참석 여부'를 집계한 결과, '정규직 취업했다'는 응답자는 11.0%에 그쳤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주변에선 졸업유예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후배 마주칠 때마다 죽고 싶은 기분"…마음 졸이는 졸업유예생

대학 취업률 현황./사진=교육부 고용알리미 캡처

졸업유예생 대부분은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다.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단연 '취업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졸업유예생 김모씨(25)는 "사실상 매일매일이 자유 시간이지만, 더 억압감이 느껴진다"며 "스스로 시간을 주도적으로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쉽게 무기력감에 빠진다"고 했다.

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16년간 느낀 소속감을 하루아침에 잃는다.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 휴학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졸업을 2학기 유예했던 직장인 이모씨(29)는 졸업유예 당시 가입 문서 신분란 등에 '대학생'이라고 쓰면서도 '사실 난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씨는 "소속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또 '사람을 만나기 싫은 동시에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다. 학교 선후배·주변 어른 등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취업하지 못한 것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다. 반대로 친한 친구들이 먼저 취직에 성공할 경우, 매번 만나자고 하기도 어렵다. 이모씨는 "후배를 마주칠 때마다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며 "도서관을 몇 년 동안 못 떠나는 선배도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졸업유예생들은 "'왜 졸업을 유예하는지' 설명할 때마다 피로감을 느낀다"며 "졸업 유예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졸업 유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졸업을 유예하고 있는 최모씨(24)도 "주변 어른께 졸업유예를 한다고 말씀드리면, '왜 굳이 졸업을 안하냐'고 물어보신다"라며 "졸업 유예를 내 의지로 하는 것도 아닌데, 상대를 매번 이해시켜야 될 때 어려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유일하게 기댈 곳인 대학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졸업생이 일정 금액을 내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대학은 졸업유예생의 도서관 출입을 허용하거나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 입장에선 돈을 받지 않고 취업준비생을 지원하는 셈이다.

◇기숙사 숙식·생활비 대출 끊기는데…아르바이트 못해 '생활고'

/사진=이미지투데이


대학생 때보다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지는 경우도 많다. 학교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집에 무작정 손 벌리기 힘들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평일에는 면접 및 스터디 일정, 주말에는 시험 등이 겹치니 정기적인 일을 하기엔 부담이다.

4년 동안 살던 기숙사에서는 쫓겨난다. 기숙사에는 대학·대학원 재학생, 장학생 등만 살 수 있기 때문. 또 장학금 및 대출 제도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소득 8분위 이하 재학생인 경우 한국장학재단에서 학기당 150만원까지 '생활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정규학기에 장학금을 받았다면 졸업유예생은 불가능하다.

재학 시절 기숙사에 살았던 한모씨(25)는 "지방에 내려가서 취업 준비를 할 수는 없으니, 서울에서 방을 구해야 한다"라며 "졸업유예를 하면 숙식비가 3배 넘게 든다"고 말했다.

졸업유예생 정모씨(26)는 "대학 다닐 때는 학자금 대출뿐만 아니라 돈이 모자를 때마다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라며 "재학생 때와 동일하게 숙식비, 교재비, 교통비 등이 드는데, 무조건 알바를 많이 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고백했다.

김지경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생 졸업유예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에서 "청년실업률의 상승과 고용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대학생들이 체감하는 졸업 후 삶에 대한 불안감은 생존에 대한 공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며 "학교 울타리 안에서 '공부 중'인 상태로 조금 더 머물고자 하는 정서가 졸업유예 학생 수를 증가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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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선 기자 sunnyda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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