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거부했다, 그렇게 잡초뽑기가 시작됐다

김예리 기자 입력 2019. 2. 22. 09:00 수정 2019. 2. 2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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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관계사 신화인터텍, 퇴사 거부하자 외부청소·잡초제거…배우자 암수술 날에도 출근 영하 날씨 종일 작업 중 뇌졸중, 산업재해 인정…사측 “직장내 괴롭힘은 근거 없는 주장”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효성그룹 한 관계회사가 직원에게 사직을 종용하려 장기간 혹한에 외부 환경미화 업무를 시키고 휴식시간을 주지 않는 등 직장내 괴롭힘을 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해 직원은 4년가량 버티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지만 같은 업무로 복귀를 앞두고 있다.

스마트폰과 가전기기용 광학필름 제조업체 신화인터텍은 23년 동안 일해온 차장급 직원 김아무개씨(53)에게 전문분야와 무관한 환경미화 업무를 전담시키고, 아내가 암수술로 입원한 날에도 휴가를 주지 않았다. 김씨는 사퇴를 종용하려는 직장내 괴롭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발단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지난 2013년 초 별안간 김씨에게 하던 일을 관두고 야간 당직을 하라고 했다. 김씨는 1996년 입사해 줄곧 생산설비 유지보수 부서에서 일했다. 주로 공장 생산설비를 고치는 임무를 직원들에게 배분하고, 품의서를 만드는 일을 했다. 김씨는 “야간당직을 지시한 상사가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고 귀띔했다”고 했다. 회사는 김씨에게 인사고과로 최하위 등급을 주기도 했다. 23년 일하면서 처음 보는 등급이었다. ‘제 발로 나가라’는 신호로 느껴졌다.

김씨는 1년 간 야간 당직을 버텨냈다. 그러자 회사는 이듬해인 2014년 6~7월께 퇴직을 권고했다. 전무는 김씨에게 7월까지만 회사에 다녔으면 좋겠다 7월 부로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퇴직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가혹한 업무지시는 그 뒤부터 시작됐다.

회사는 두 달 뒤 김씨를 인사총무과로 옮겼다. 김씨에게 공장 대지 전체를 돌며 잡초 뽑고 잔디를 깎으라고 했다. 원래는 전 직원이 일주일에 30분씩 하던 일이었다. 남은 일은 용역업체에 맡기곤 했다. 그가 잡초 뽑기를 맡으면서는 용역업체도 오지 않았다.

▲ 신화인터텍 차장 김아무개씨가 퇴사권고에 응하지 않자 지난 2014년 배정받은 환경미화·조경작업을 수행하는 모습. 사진=금속노조 법률원 제공
▲ 지난해 2014년 9월 김아무개씨가 배치된 환경미화·조경작업을 수행하고 작성한 일일 업무보고 일부. 사진=금속노조 법률원 제공

그밖에 쓰레기 줍기, 법인차량 세차, 눈 치우기 등 공장 터를 청소하는 일 전체가 김씨 몫이 됐다. 기숙사에서도 퇴거조치됐다. 회사가 D등급을 받으면 기숙사에 살지 못하도록 2015년 3월 기숙사규정을 바꿨다. 그 뒤 김씨는 경기도 집에서 근무지인 충남 천안으로 매일 출퇴근했다.

버티다 못한 김씨는 2달 뒤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사부장은 김씨에게 “(진정 내면) 이렇게 계속 다닐 수 있을 것 같나? 나와 원수가 되고 싶나? 세상이 교과서처럼 되는 게 아니잖느냐”고 다그쳤다. 결국 회사는 감봉액 가운데 일부를 지급하기로 김씨와 합의했다. 김씨는 진정을 취하하기로 했다. 김씨는 “합의 후 조금이나마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했다”고 했다.

기대는 엇나갔다. 회사는 합의 후 더 노골적이 됐다. 모든 직원이 관행으로 받는 ‘고정 OT’ 수당을 두고, 김씨에게만 받은 만큼 일하라며 초과근무를 시켰다. 10시간 근무하는데 휴식시간도 없앴다. 동료 직원들에게 피해를 호소할 수도 없었다. 김씨가 동료에게 말을 붙이자 ‘인사팀에서 김씨와 대화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게 1년 넘게 일하던 김씨는 2017년 초 아내가 암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날에도 연차를 못 썼다. 회사는 눈이 많이 올 예정이니 다 치우고 가라고 했다. 김씨는 결국 당일 출근했다. 그가 쓰러진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다. 영하 6도 날씨에 종일 작업을 하다 뇌졸중이 왔다.

▲ 김씨가 지난 2017년 1월18일 김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날 수행한 잡초·쓰레기청소 업무 보고. 사진=금속노조 법률원 제공

근로복지공단은 김씨의 뇌졸중과 우울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공단은 뇌졸중이 “근무환경의 변화, 불합리한 작업지시에 따른 스트레스, 영하의 추운 날씨에서의 옥외작업 등 물리적 위해요인으로 발병했다”며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치료를 받고 지금까지 휴직 중이다.

김씨는 복직해서도 같은 업무를 해야 한다. 회사는 김씨가 복직하면 4월까지 건강을 고려해 내부 환경미화와 세차 등 업무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 측은 부당한 업무지시와 불이익, 지속적인 퇴사 종용 등 불법행위와 휴직 기간 임금 등에 대해 지난달 말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미디어오늘은 반론을 듣기 위해 신화인터텍에 4일 동안 다섯 차례나 접촉을 시도했으나 ‘누구 담당인지 모른다’ ‘담당자가 부재중’ ‘담당자가 원래 없다’ 등의 이유로 회사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보도하겠다고 통보하자 회사는 인사총무과 발령은 양쪽이 합의했고 본인이 인정했다. 직장내 괴롭힘 등 부당한 행위는 근거 없는 주장이며 법원에서 판단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회사는 “김씨에게 점심시간 외 휴식시간을 1시간 부여하겠다”고 답했다.

신화인터텍은 1988년 특수테이프 제조 목적으로 설립돼 광학 필름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3년 효성 계열사로 편입됐다가 지난해 6월 효성의 인적분할에 따른 최대주주 변경으로 효성화학이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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