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역이슈]'박정희 쿠데타' 미화 논란..제주 5·16도로 변경 언제쯤

조수진 2019. 2. 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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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당시 정비..도로 곳곳에 5·16 기념비 설치
"군사독재 정권 잔재..반드시 개정해야" 비판 여론 거세
서귀포시 "찬성 주민 의견 모이기 전까진 변경 어려워"
【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제주시 산천단 인근에 세워진 516도로 비석. 2019.02.21. bsc@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배상철 기자 =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 3인의 ‘5·18망언’ 파문으로 역사 왜곡 근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제주도 내 군사 정변을 뜻하는 도로명이 그대로 남아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516로는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비석거리 교차로와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 사거리를 잇는 총연장 40.56㎞의 지방도 1131호선이다. 한라산 동쪽 일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횡단도로라 불리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5·16 군사정변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

'516로'는 지난 1932년 일제가 무기와 탄약 등 군수품과 보급품을 운반하고 산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개설한 임도(林道·산림 내 위치한 도로)였다. 이후 1943년 지방도로 지정되고 1961년 5·16 군사 정변을 일으키고 들어선 박정희 정부 당시 확·포장 공사가 이뤄졌다.

도로가 개통되기도 전인 지난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五一六道路(516도로)’ 기념비가 도로 곳곳에 세워지며 ‘횡단도로’라 불리던 도로는 ‘516도로’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516로’ 명칭은 지난 2009년 도로명주소법 시행에 따라 붙여졌다.

이후 수년간 도로명이 5·16 군사 정변을 미화한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제주=뉴시스】지난 2017년 1월 ‘박정희 폐단 청산 및 제주 516도로명 변경을 위한 국민행동’이 서명 운동을 벌이는 모습. (사진=박정희 폐단 청산 및 제주 516도로명 변경을 위한 국민행동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겨울, 도로명 개정을 추진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만들어졌다.

시민 40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박정희 폐단 청산 및 제주 516도로명 변경을 위한 국민행동’은 도민과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제주시청 및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일원 등에서 도로명 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3000여명의 서명이 모였다.

◇개명 서명 운동 3000여명 참여…“군사독재 정권 잔재 반드시 청산해야”

창단 회원인 김모(39·제주)씨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제주에 와서 516도로를 보고 매번 ‘그 5·16이 맞느냐’며 물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라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이 도로가 군사 쿠데타를 기리는 이름으로 불리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고 모임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국민의 심판을 받아 탄핵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왜곡된 기억이 만들어낸 향수 때문”이라며 “516도로명 개정 운동은 군사독재 정권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로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관련 행정 절차는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행정의 추진 의지가 부족한 점과 주민들의 무관심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도로명 개정을 위해선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우선 도로명 변경 의견 제출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해당 도로명을 주소로 사용하는 사업주 및 세대주 5분의1 이상의 찬성 의견이 있어야 한다. 의견이 모이면 도로명주소 변경에 대해 주민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제주 516도로(1131번 지방도). (사진=네이버 지도)

◇서귀포시 “찬성 의견 접수되기 전엔 변경 절차 진행 어려워”

행정은 이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율이 낮아 도로명 변경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2일 서귀포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지난 1일까지 서귀포시 내 516로를 주소로 사용하고 있는 사업주 및 세대주 700호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이 진행됐다.

우편을 통해 의견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지난 20일 기준 찬반 의견을 제출한 주민은 700호 중 20호가 조금 넘는 정도다. 이중 도로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단 2호에 불과했다.

시 관계자는 “도로명 개정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찬성 의견이 일정 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라며 “찬성 의견이 접수되기 전까지는 우리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씨는 “주민들의 참여율이 낮아서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라며 “최근 서울 성북구청은 청장을 비롯한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나서 친일행위자의 호를 딴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북구 공무원들은 일일이 집을 방문해 동의서를 받아내고 외국인 주민들을 위해 영어로 질문지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한다”라며 “이처럼 주민들을 설득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susie@newsis.com
bsc@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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