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배틀그라운드]흰 유니폼 대신 군복..K-2 소총 든 '한국 나이팅게일 후예'

박용한 입력 2019. 2. 22. 06:02 수정 2019. 7. 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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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간호사관학교
"한국 나이팅게일의 후예"
지뢰·총상 등 전투외상 전문가
전투 현장 투입..전투력 복원
재난·전염병 '국가 위기' 대응
국군간호사관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생도가 사격술 등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21일 모든 과정을 통과한 90명 생도가 입학했다. [박용한]

지난 11일 ○○부대 훈련장에 도착했다. 대전에 위치한 국군간호사관학교(국간사)에 가던 길에 잠시 들렸다. 입학을 앞둔 국간사 예비생도들이 모여있었다.
흰색 간호복에 촛불을 든 나이팅게일을 상상했지만, 전투복 차림에 K-2 소총을 든 군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총성과 목청 높인 구호 소리가 가득했다. 이들이 흰색 붕대 대신 검은 총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간호장교는 위기상황에서 자신과 환자를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생존역량이 필요하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부상병 응급처치와 후송작전에 투입되면 총탄에 노출되는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전투 현장에서 부상 장병 응급처치와 구조 훈련을 하고 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제공]

그래서 국간사는 사격술을 비롯한 기초군사훈련을 통과해야 생도로 입학할 수 있다. 육ㆍ해ㆍ공군 사관학교 예비생도와 마찬가지다. 군사훈련을 받다 퇴교하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21일 최종 관문을 통과한 63기 사관생도 90명은 입학식을 치렀다. 여기엔 남자 생도 7명도 포함됐다. 국간사는 2012년부터 남자 생도를 선발하고 있다. 국간사 상징은 ‘한국 나이팅게일의 후예’ 줄임말인 ‘한나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제63기 사관생도 입학식이 21일 오후 대전 자운대 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려 생도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생도들은 지난 달 21일 이곳에 예비생도로 입소, 4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이날 당당히 입학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손에 수액, 다른 손에 총
군복 입은 간호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간호장교는 전투 환경에 최적화된 전문성과 즉응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특수 조건(항공·해양)에 필요한 간호 능력도 요구된다.
간호사관학교는 이런 군 간호 특성을 중점으로 정예 간호장교를 양성한다. 따라서 두 가지 신분을 갖게 된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간호사이지만, 소위 계급장을 받고 장교로 임관해 군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조순영 건강관리학 처장(중령)은 "이처럼 특화된 교육은 국내 대학에 설치된 202개 간호학과 중 유일하고, 전투력 복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강조했다.

간호장교가 일반 간호사와 다른 점은 전투 중 발생한 부상병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평소 어렵지 않던 혈관 주사 바늘 주입도 흔들리는 헬기나 전투 현장에선 쉽지 않다. 지척에서 포탄이 떨어져도 익숙한 듯 부상병을 돌봐야 한다. 때때로 다가오는 적을 향해 총도 쏴야 한다. 화생방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국군간화사관학교 예비생도 기초군사훈련에 참여한 말리나 인턴기자가 실제 사격에 앞서 영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사격에서 표적 100m거리에서 2발 쏴 모두 명중했다. [박용한]

간호장교는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전투 중 발생하는 대규모 전상자 생명을 모두 구할 수 없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살릴 수 있는 부상병을 골라야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부상자 중증도 분류’(트리아지ㆍ triage)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간호장교가 전투와 재난 등에서 대규모 응급 환자 대응 전문가로 불리는 이유다.

전투 중 사망 원인으로 ▶과다출혈 ▶기흉 ▶다발성 손상 등이 꼽힌다. 따라서 부상병 소생은 체계적ㆍ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전투 현장에선 생명 유지를 위한 긴급한 응급처치를 서두르고, 병원으로 후송한 뒤 본격적인 외상 치료에 들어간다.

3월 소위 임관을 앞둔 국군간호사관학교 4학년 생도가 발목 지뢰를 밟아 다리가 절단 된 부상 환자 '휴먼 시뮬레이터'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박용한]

부상병 응급 처치 및 이송 훈련에 참여해 지켜봤다. 오는 3월 임관을 앞둔 4학년 생도들이 실력을 보였다. 훈련이지만 실전적 상황을 줬다. 발목 지뢰를 밟고 왼쪽 다리가 절단된 상태로 후송된 조건에서 진행했다.

의료실습용 마네킹 ‘휴먼 시뮬레이터’는 실제 환자처럼 호흡이 거칠었다. 심장이 뛸 때 가슴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절단지 부위에선 피도 흘렀다. 실제 응급 환자 상태를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진짜 사람인 줄 알고 놀라기도 했다. 통제관은 응급 조치를 지켜보면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면 환자 상태를 긍정적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필요한 조치를 하지 못했을 때는 위급 상황 단계를 올렸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전투 현장에서 부상 장병 헬기 이송에 앞서 응급처치 훈련을 하고 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제공]

부상병 심리 상태도 확인
환자를 연결한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생명이 위급하다는 신호다. 현장에서 절단지 부분을 묶어 지혈했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아 심각한 상태였다. 서지인 생도가 피가 흐르는 절단지 부분을 다시 압박해 출혈을 막고, 이혜진 생도는 정맥 혈관으로 수액을 투입했다. 이때 정차현 생도는 기도를 확보해 산소를 주입했다.

생명 유지에 가장 필요한 조치를 하자 혈중 산소포화도는 정상범위로 올라갔고, 심장도 안정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최애경 생도는 부상병과 대화를 하면서 심리 상태도 살폈다. 전투 현장에서 경험했던 공포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확인했다. 이 또한 간호장교만 할 수 있는 군 정신간호 능력이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예비 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 기간에 행군하고 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제공]

전투 현장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총상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도 해봤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출혈 부위를 신속하게 찾아내 지혈하는 게 관건이다. 전윤경 교수(소령)는 “등 아래 손을 넣고 총알이 신체에 들어간 삽입구와 이 총알이 몸을 뚫고 나간 사출구 모두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상병 몸통을 옆으로 돌려 꼼꼼하게 찾아봤다. 손끝에 전달되는 느낌으로 총탄이 들어간 작은 삽입구를 찾아내 출혈을 막았다. 환자 상태가 안정되자 수술장으로 이송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조순영 건강관리학 처장이 대형 재난에 대응하는 간호장교 임무를 설명하고 있다. [영상캡처=공성룡]

뇌출혈 병사 구하다 희생
다급하게 이뤄지는 응급처치를 직접 해봤다. 지혈대와 허벅지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빈틈이 없는지 확인했고, 지혈대 조임막대를 쥐어짜듯 강하게 돌려 압박 수위를 높였다. 혈관에 바늘을 찌르는 수액주입도 간단하지 않았다. 부상병이 심하게 움직일 수도 있어서다. 바늘을 꽂은 뒤 수액을 주입하기까지 손을 여러 번 소독해 감염 가능성도 예방했다.

군 간호 전문성은 평시에도 발휘된다. 2008년 2월 19일 23시께 뇌출혈로 쓰러진 병사가 국군철정병원(현 홍천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왔다. 휴식 중이던 간호장교 선효선 대위가 체육복 차림으로 뛰쳐나와 응급처치한 뒤 수도병원으로 향하는 헬기에도 올랐다.

병사는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지만 선 대위가 탑승한 헬기는 복귀 중 새벽 안개 속으로 추락했다. 젖먹이 딸을 남겨둔 20대 후반 젊은 장교가 희생했다. 군 당국은 고인을 소령으로 추서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역사관 앞에 마련된 고 선효선 소령를 추모하는 조형물 [박용한]

생도 훈련을 지도했던 전 교수는 고인이 된 선 소령과 국간사를 같이 졸업한 동기다. 그는 “효선이는 본인 근무시간도 아니지만, 중환자 대응 능력과 경력을 갖췄기 때문에 스스로 나섰다”며 “간호장교 후배들이 이런 헌신적인 자세를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간호장교는 국내 메르스 사태와 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민간병원 의료진이 치료에 나서기 꺼려 사표 쓰고 물러설 때 간호장교들이 자원해 나섰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군인정신이 작동했다. 또한 평소 백령도를 비롯한 낙도와 해외 파병부대에서도 장병 건강을 지키고 있다.

군 당국이 무자격 의료행위를 근절하면서 그동안 묵인됐던 의무병 의료 행위는 전면 금지됐다. 군 간호인력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 2015년 6월 12일 메르스 확산으로 군 의료진 24명이 처음 투입됐다. 이날 오전 대전 대청병원에서 군 의료진들이 격리환자 치료에 앞서 방역복으로 갈아 입고 있다. [중앙포토]

간호사관생도는 4년간 국비 지원을 받고 임관 후 6년간 의무 복무를 한다. 임관 이후 대부분 30대 중반에 전역한 뒤 민간 의료 기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진급할 계급이 없어서다. 진급 현황을 보면 보통 80명이 입학하면 소령 진급자는 10명 정도, 대령은 1명 배출된다. 계속 근무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

그러나 간호장교 진급 기회는 적지만, 국간사 입학 경쟁은 치열하다. 올해 경쟁률은 47대 1까지 올랐다. 11일 국간사 역사관에서 송탄에서 찾아온 고교 2학년 김지연 학생을 만났다. 그는 “간호사이면서도 군인으로 봉사하고 싶다”면서 “지난해 이어 올해도 학교를 찾아 결심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영상 = 강대석·공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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