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을 가다]야간시위의 시작..수원 3·1 운동을 가다

2019. 2. 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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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은 3.1 만세운동의 뜨거운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야간 횃불시위가 처음 등장한 곳입니다.

신선미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방화수류정. 1794년 세워진 이 정자는 정조대왕이 활쏘기를 즐긴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선미]
"1919년 3월 1일 저녁, 성 안팎에 거주하던 수백 명은 횃불을 치켜들고 이곳 수원화성의 방화수류정으로 모였는데요. 수원지역의 3.1운동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3.1 항쟁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야간시위는 일제의 허를 찌르며 전국으로 확산됐고,

경기도를 전국에서 가장 격렬한 독립운동 현장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습니다.

나라 사랑엔 노래하고 춤추는게 전부인줄 알았던 기생들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김향화 등 기생 33명은 서슬 푸른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총칼에 저항했습니다.

[이동근 / 수원시 학예연구사]
"공권력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의로운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은 당시 일제 경찰들도 깜짝 놀라게 했고."

만세운동이 한층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제는 제암리에서 끔찍한 만행을 저지릅니다.

천도교도와 기독교도 20여 명을 교회에 모아놓고 불을 질러 학살한 것.

시체 타는 냄새가 밤새 바람에 실려왔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그날의 악몽은 참혹했습니다.

"제가 서있는 이곳이 제암교회가 있던 자립니다. 지금은 순국한 선열 29명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기념탑이 설치돼있습니다."

[조진옥 / 화성시 문화관광해설사]
"서울에서 이 마을을 거쳐서 오산, 평택, 천안, 충청도, 전라도로 내려가는 만세의 물결을 차단하기 위해서 이 마을을 택하지 않았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뛰어넘은 3.1 운동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뿐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채널A 뉴스 신선미입니다.

fresh@donga.com
영상취재 : 박재덕
영상편집 : 이혜리
그래픽 : 임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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