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착한가게 인증 떼고 가격 올리고 싶다"

석남준 기자 2019. 2. 1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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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비 크게 오르고 최저임금 인상에 어려움 호소

"착한가격업소 인증이 취소되더라도 음식값을 500원이라도 올릴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가격을 올리면 장사가 더 안 될까 봐 그게 무섭네요."

김치찌개, 된장찌개, 라면 등을 파는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 입구에 정부 인증 '착한 가격 업소'로 표기돼 있지만, 이 식당은 최근 물가 인상을 견디지 못하고 메뉴 가격을 1000원씩 올렸다. /오영은 인턴기자

경기도 고양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A씨는 전화 통화 내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A씨가 말한 '착한가격업소'는 2011년부터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물가 안정 모범업소다. 외식, 미용, 세탁 등 업종 가운데 지역 평균 가격 이하이거나 1년 이내 가격을 인하·동결할 경우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될 수 있다.

정부는 전국에 5000개 넘게 분포된 착한가격업소가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착한가격업소는 김치찌개 5000원, 짜장면 3500원에 파는 식으로 운영하는 영세업체가 대부분이다. 착한가격업소들은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나름의 경쟁력으로 업소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최근 '물가 안정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착한가격업소들 사이에서도 물가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 이중고에 시달린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지가 전국의 착한가격업소 50곳을 전화 인터뷰한 결과, 21곳(42%)이 물가 인상으로 최근 1년 사이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인력을 줄였다고 답했다.

"뭘 사러 갈 때마다 가격이 오르고 또 오른다"

인터뷰에 응한 50곳의 착한가격업소 가운데 86%인 43곳의 업소가 최근 1년 사이 물가 인상을 체감한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체감하는 물가 인상률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답변한 39곳의 체감 물가 인상률은 평균 28.5%에 달했다. 착한가격업소들은 다른 업소보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해왔기에 물가 인상으로 원가 부담을 체감하는 정도가 실제보다 더욱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삼계탕, 곱창전골 등을 파는 서울 구로구의 한 식당 업주는 "어째 뭘 사러갈 때마다 가격이 오르고 또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에서 삼겹살 업소를 하는 업주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 직원이 착한가격업소 실사를 나왔길래 물가가 너무 올라서 힘들다고 말했어. 그랬더니 잘 안다면서 차라리 가격을 올리라고 하더라고…."

재료비 인상과 함께 착한가격업소 업주들을 힘들게 하는 건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재료비와 최저임금 인상의 이중고는 결국 업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영업시간 단축과 인력 감축이었다. 전체의 42%인 21곳의 업소가 지난 1년 동안 인력이나 영업시간을 줄였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칼국숫집 업주는 "작년부터 하루 종일 고용했던 홀 서빙 직원의 근무 시간을 반나절로 줄였다"며 "마진이 반 토막 나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식당 업주는 "예전에는 오후 10시까지 장사를 했는데, 요새는 오후 8시 반이면 문 닫는다"고 말했다.

"차라리 착한가격업소 인증 반납하고 가격 올리겠다"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되면 쓰레기봉투 지급, 대출 금리 감면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업소 입구에는 인증 스티커도 붙일 수 있다. 대신 지역 평균보다 가격을 인상할 경우 인증이 취소된다. 서울 강서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B씨는 200g에 1만원 받던 삼겹살 가격을 지난해 1만2000원으로 올렸다가 인증이 취소됐다. B씨는 "도저히 남는 게 없어서 가격을 올렸다"며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손님이 없어서 사람을 쓰지 않고 가족끼리만 운영한다"고 했다.

본지가 인터뷰한 50곳의 착한가격업소 가운데 8개 업소는 인증을 반납하고 가격을 올릴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식당 업주는 "최저임금과 물가가 너무 올라서 지금 가격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착한가격업소라 된장찌개, 순두부찌개를 5000원에 팔고 있는데 6000원으로 올릴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업주는 "지원받는 게 쓰레기봉투밖에 없다"며 "이대로라면 인증 반납하고 가격을 올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행안부는 착한가격업소 지원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게 크기 때문에 향후 홍보대사를 뽑아 홍보를 강화하는 등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 백반집 업주 C씨는 "10년 전 물가 안정 시대에 나온 '착한가게'라는 정책을 요즘처럼 각종 비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시대에 강조하는 걸 보니 어느 시대에 사는 정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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