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인이 성인물 보는 게 죄냐" https 차단에 들끓는 2030

김준영 2019. 2. 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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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자유 침해" 서울역 앞 시위
청와대 규제 반대 청원 20만 넘어
문 대통령 과거 "인터넷 자유" 언급
네티즌 "집권 뒤 변했다" 불만 폭발
지난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규탄하는 ‘https 차단 정책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시위에는 남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성인이 성인물 보는 게 죄입니까?”

“무슨 권리로 개개인의 인터넷을 뒤지고 야동(야한 동영상)을 막아요?”

“이것은 민주주의인가 공산주의인가…지금까지 이런 정부는 없었다.”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가득 메우는 게시글 중 일부 제목들이다. 속어인 ‘야동’이 포함된 게시글만 해도 최근 1주일 새 330건 이상 검색될 정도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부의 ‘https’ 차단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며 정치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한 청원인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는 제목의 글은 등록(11일) 1주일도 안 된 17일 오전 서명 인원 20만 명을 넘어섰다. 한 달간 20만 명 이상 동의한 청원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공식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청원인은 글에서 “해외 사이트에 퍼져 있는 리벤지 포르노의 유포 저지, 저작권이 있는 웹툰 등의 보호 목적 등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https를 차단하는 것은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https 차단의 다른 말은 ‘SNI(Server Name Indication) 차단’으로 지난 11일 정부가 “해외 성인·도박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겠다”며 도입한 규제다. 기존의 DNS(Domain Name System) 차단 방식보다 강화된 조치로, 사이트가 암호화된 정보를 주고받기 전에 암호키를 교환하는 패킷(SNI)을 정부가 보고 이에 따라 접속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https 차단 정책을 반대하는 글. 지난 17일 서명인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와대 게시판 캡처]
◆야동 볼 권리=일차적으로 나오는 거센 비판은 바로 국가가 성인의 본능을 죄악시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려 한다는 것이다. 16일 서울역 광장에 남성 100여 명이 참석해 항의 시위를 한 배경이다. 이들은 “야동 차단 내걸고 내 접속 기록 보겠다고?”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 못 입게 하는 건 부당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야동 볼 권리’를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우리 헌법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많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7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8조),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제21조 제2항) 등이다. 정치권에서도 우려 발언이 나왔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9금(禁) 사이트는 19세 이하에게만 금지하면 된다. 단순 성인 사이트까지 막는 것은 성인의 자유 제약”이라고 주장했다.

◆빅 브러더화=전문가들은 국가 주도의 검열을 우려한다. 야동 차단은 명분일 뿐 사실상의 인터넷 사전 검열로 국민을 감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이다. 인터넷 관련 시민단체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1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조치는 일종의 빅 브러더 정책이다. 국가가 국민이 봐도 되는 정보, 봐서는 안 되는 정보를 정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니 명백한 검열”이라고 주장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과거 밤 12시만 되면 무조건 밖에 못 나가게 한 통행금지 정책과 똑같다. 현 정부도 근원적으로 국민의 통행을 차단하려 한다. 문제가 있는 사이트만 사후 규제 또는 처벌하면 되는데, 길목을 지켜서 일일이 감시하겠다는 것은 전근대적 사상”이라고 꼬집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https 차단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오만과 착각이며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인터넷 접속 기록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에 어느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마음놓고 쓸 수 있으며, 어느 기술자나 정보과학자가 그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겠는가. https 사이트를 차단하는 나라가 중국과 일부 중동 국가뿐이라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개인의 통신 및 인터넷 사용 내역을 도·감청도 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정부는 “접속 차단이 되는 해외 불법 사이트에 대한 판단은 독립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심의를 통해 결정한다”며 정부의 도·감청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방통위는 “서버 네임을 확인하고 통신사업자가 차단하는 거라 내용은 전혀 볼 수 없다”(김재영 이용자정책국장), “SNI를 차단하는 건 패킷을 열어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접속 경로를 막는 것에 불과하다”(허욱 상임위원) 등의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 기관이 사이트 접속 시도를 감시하는 자체가 검열이라는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

◆또 등장한 내로남불?=네티즌들의 비판이 커지고 있는 데는 과거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비판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입장을 바꿨다는 반감도 한몫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불법사찰 의혹이 터질 때마다 문 대통령 등 현 여권 인사들은 ‘불법적 일탈 행위’로 규정하고 “국민의 사이버상 자유를 억압했다”며 날을 세웠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전 국민의 인터넷 활동을 감시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와 일부 정적들을 불법 감찰해 온 과거 정부 중 무엇이 더 나쁜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2012년 10월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판교 테크노밸리센터에서 한 말도 회자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동안 우리나라는 ‘인터넷 검열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5년 전만 해도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비판하던 한국이 지금은 동급이 됐다. 인터넷 세상에서만 보면 이명박 정부는 독재정권이다. (중략) 네트워크 세상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이어야 하며 이를 공권력으로 통제해선 안 된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인터넷 자유국가로 만들겠다”는 언급이다.

김준영·백희연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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