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들 죽음을 이용하는 엄마"..'유족다움' 강요하는 사회

최유경 2019. 2.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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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용균 유가족에게 쏟아진 악성 댓글…"엄마가 죽은 아들을 이용한다"
■비난 견뎠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겹쳐져…'행동하는 유족'을 보는 가혹한 시선

오늘(18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유가족과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납니다. 김 씨가 숨진 지 70여 일만입니다.

이 만남은 이미 한 차례 엎어진 적이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28일, 유족을 만나 위로와 유감의 뜻을 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측은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이 가능할 때 만나겠다"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날부터였을까요. 고 김용균 씨의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스물넷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 쏟아진 비난과 모욕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반감 생기니 너무 나가지 마세요. 이 세상엔 불행하게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많고 많아요.”
"세월호 이후로 무슨 사고만 당하면 유가족이 갑이 되는 세상이네."
"이 아줌마도 정치적으로 가고 있군."
"나라면 세월호만큼 (이익을) 뽑는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놔라..."

지난 9일, 두 달 만에 고 김용균 씨의 영결식이 열렸을 때도 반응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관련 기사에 달린 가혹한 악성 댓글들은 대부분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그만 좀 해라. 우려먹는 거 진짜 징글징글하다."
"자식이 죽었는데 2달 후에 장례식 치른 부모도 대단하다."
"돈이 되니까 그렇죠. 저기 부모가 보통 사람으로 보임?"
"이분 어머님은 비정규직 그리 걱정되시면 보상받은 거 기부하시면 되시겠네요."
"김미숙 씨 성공하셨습니다. 노조에서 간부 자리 하나 꿰차세요."

◆"죽은 아들을 이용하는 비정한 엄마"…설치거나, 불순하거나


김미숙 씨에게 쏟아진 비난의 주된 논리는 "너무 설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김미숙 씨와 시민대책위는 아들의 죽음부터 장례까지, 그 두 달간 참 많은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위험 작업에 대한 하도급을 금지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28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고, 정부와 여당은 사고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고 연료나 설비 분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원청업체인 서부발전 역시 유가족에 배상하고 안전 설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마이크만 봐도 도망가고 싶던 주부였던 김미숙 씨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부당한 노동 환경에 눈을 뜨고 세상에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김 씨가 단단한 투사가 되어 갈수록, 이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은 늘어만 갔습니다. 뒷배가 있는 것이 아니냐, 무언가 더 바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또 다른 비난의 논리는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 시민대책위를 꾸린 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어머니 김미숙 씨와 함께 움직이게 되면서, 노조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졌습니다. '시체 장사'라는, 입에 담기 힘든 말도 오르내렸습니다.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문제를 비정규직 전체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고인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습니다.


아들의 일이기 때문에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조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할 자신이 없어서, 밤늦게까지 고민하며 꾹꾹 눌러쓴 문장을 휴대폰 메모장에 담아와 그대로 읽곤 했습니다. 이런 김미숙 씨를 두고도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난이 돌아왔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거나 담담하게 심정을 토로하면, 여론은 김 씨의 비정함을 탓했습니다.

싸움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도 늘어났습니다. 정부, 그리고 원청업체와의 줄다리기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자꾸만 차가워졌습니다.

◆'행동하는 유족'을 바라보는 가혹한 시선…세월호 유가족 겹쳐져


흘러가는 모양새가 낯설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연상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역시 끔찍한 비난에 노출됐었습니다. 이들이 과한 요구를 일삼으며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음 달 중 광화문 광장에 세워질 기억공간이나 안산에 마련하기로 한 4·16 생명안전공원을 두고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2016년 숨진 고 백남기 씨 유족도 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유족들의 거듭된 부검 반대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일각에선 딸 민주화 씨가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인데도 인도네시아 발리로 휴가를 즐기러 갔다"는 허위사실을 전하며 진정성을 의심했습니다.

정부에 당당하게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바라는 유족은 "유족답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곤 합니다. 유난을 떤다, 얼마나 더 큰 특혜를 받아야 성에 차느냐,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유족들을 숨게 했습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유족들도 인터넷 댓글 상황이나 여론을 잘 알고 있고, 많이 속상해한다"며 "우리가 댓글을 보지 말라고 유족들을 뜯어말리곤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 간사는 이러한 악성 댓글과 모욕에 대해 시민대책위 차원에서 언젠가 법적 대응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결정하기가 쉽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혹시나 유족에게 한 번 더 견디기 힘든 비난이 가해질까 봐,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유족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전에, 진정성을 되묻고 '유족다운 모습'을 찾았습니다. 그 질문들 앞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은 잊혔습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과 고 김용균 씨 유가족이 만납니다. 이 만남 뒤 김 씨 유가족은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겠지요. 아들 같은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하나로 버텨온 어머니 김미숙 씨는, 오늘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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