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한국산 TV를 미국에서 '직구'하는 이유 [체험기]

나진희 입력 2019. 2. 17. 08:02 수정 2019. 2. 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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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외국에서 더 싼 국산TV 논란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의 TV 가격이 미국과 두 배 이상 차이 난다는 언론 보도가 논란이 됐다. 삼성전자 75인치 QLED TV의 미국 내 가격이 한화기준 300만원대인 반면 국내 가격은 800만원대이고 국내 양대 TV 제조사인 LG전자 제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LG전자 65인치 TV를 미국서 ‘해외직구’했다. 국내 기업의 제품을 2주가 넘는 배송 기간을 기다려 받은 이유는 가격이 2/3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양은 국내와 해외 모델이 대동소이했으나 가격 차는 100만원을 훌쩍 뛰어 넘었다. 직구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슷한 사양의 국내모델(좌)과 해외모델의 15일 온라인 최저가 비교.온라인쇼핑몰 캡처

◆170만원 가격 차이에... TV 해외직구 도전

기자는 수년간 스피커, 청소기, 빔프로젝터 등 다양한 제품을 직구 해왔다. 하지만 TV처럼 크고 비싼 제품은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관세는 어쩌지’ ‘오다가 파손이라도 되면?’ ‘A/S는 어렵지 않을까’ 등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만원이 넘는 가격 차이는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먼저 구매를 희망한 LG전자 65인치 OLED TV를 비교해봤다. 한 미국 수출용 해외모델(OLED65C8PUA)의 인터넷 최저가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259만8000원. 비슷한 사양의 국내모델(OLED65C8GNA)의 인터넷 최저가는 400만원 중반 대였다. 두 달이 흐른 뒤 가격 차이는 점차 좁혀졌다. 16일 기준 해외모델 인터넷 최저가는 259만8000원으로 동일했으나 국내모델은 가격이 조금 내린 426만7702원으로 약 170만원 차이가 났다.

◆쉽고 빠른 ‘해외구매대행’... 국내 제품 구매와 비슷

최근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직구로 눈을 돌리는 큰 이유, 직구 과정이 ‘누워서 떡 먹기’ 수준으로 쉬워졌다. 요즘엔 G마켓, 옥션 등 오픈마켓이나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소셜커머스 등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해외구매대행 서비스를 내놓았다. 복잡하게 ‘구대지(구매대행지)’ ‘배대지(배송대행지)’ 등을 찾거나 해외결제용 카드를 따로 마련해 놓을 필요도 없었다. 해당 온라인쇼핑몰에서 제공하는 쿠폰 할인 및 카드 무이자 혜택이 있다면 똑같이 적용도 가능했다. 
 

기자가 구매한 상품은 관부가세 및 배송비 포함이라 추가로 지불할 비용도 없었다. 배송 후 업체 소속 전문 설치기사까지 찾아와 설치를 해줬다. 하나 다른 점은 주문 시 ‘개인통관고유번호’를 입력해야 한다는 것. 이는 관세청 홈페이지에서 손쉽게 발급 가능했다.

단 기다림은 길었다. 보통 2~3일이면 도착하는 국내 배송 서비스에 익숙해져서인지 2주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 업체로부터 ‘해피콜’(주문 확인 전화)을 받았고 설치 일자와 시간을 맞추자 배송과 동시에 설치기사가 방문했다. 기본 스탠드형 설치비는 무료였으며 벽걸이는 추가금이 들었다.

◆음성명령, 지상파 UHD 수신 등 못 해... “큰 불편함 없다”

전자제품이라 구매 전 전압 차이도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 미국 제품의 전압은 110~120V인 반면 국내 제품은 220V다. 다행히 해당 모델은 ‘프리볼트(110~220V 전압에서 사용이 가능)’ 제품으로 소위 ‘돼지코’라 불리는 변환플러그만 꽂으면 쉽게 사용 가능해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설정에서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하면 모든 메뉴를 한글로 볼 수 있다. 사용과정에서 해외모델이라 불편한 점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업데이트도 가능하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없진 않다. 국내모델은 국내 생산, 해외모델은 멕시코 생산이다. 모두 국내 제조사에서 A/S(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보증 기간이 전자는 2년, 후자는 1년이다. 또한 해외모델은 국내 지상파 UHD방송을 볼 수 없고 인공지능(AI) 기능인 ‘ThinQ’를 쓸 수 없었다. 다만 기자는 케이블방송 서비스를 가입해 놓았고 음성명령 서비스를 잘 쓰지 않아 개의치 않았다.
또한 해외모델은 유튜브(Youtube), 넷플릭스(Netflix) 등 애플리케이션(앱)이 탑재돼 있었지만 티빙(Tving), 푹(pooq) 등 국내 TV 방송 콘텐츠 앱은 설치가 불가능했다. 지난해 출시한 모델부터 제조사 측에서 국가코드 변경을 막아놓았다고 알려졌다. 그 전 모델들은 약간의 ‘꼼수’로 국가코드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변경해 앞서 언급한 앱들을 실행할 수 있었다.
리모콘을 두 개 써야한다

해외모델을 구매해 가장 번거로운 점을 꼽자면 리모콘을 케이블 셋톱박스용과 TV용으로 2개 써야한다는 점이었다. 단 유튜브, 넷플릭스 이용이 아니면 대부분의 조작은 셋톱박스용 하나로 충분했다. 기자 입장에선 170만원 차익을 위해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선택은 소비자의 몫.

16일 관세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16억3500만 달러(한화 1조8450억원)에 달하던 해외직구 시장은 2017년 21억1000만달러(한화 2조3811억원), 2018년 약 30억달러(한화 3조3855억원)로 증가했다. 기자와 같은 선택을 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전문가 “가격차는 시장 크기 때문... 직구 전 신중한 판단 필요”

이런 가격 차이는 왜 발생할까?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1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내와 미국 등 해외의 가격차별은 TV뿐 아니라 모든 가전에서 발생하고 심지어 자동차가 가장 심하다”며 “보이는 가격 뒤에 숨겨져 있는 게 있다. 보통 국내는 판매 가격에 어지간한 세금과 배송비가 포함돼있지만 미국은 지역에 따라 TV가격에 10% 이상 세금이 포함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가격은 사실 업체가 아니라 시장에서 형성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TV시장만 놓고 보면 국내는 200만대, 미국은 4000만대로 20배 차이”라며 “미국은 여러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어 경쟁구조가 타이트하다. 유통이든 제조사든 제품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요인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매 전 신중한 판단도 주문했다. 그는 “유사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미국 모델을 샀는데 ‘지상파 UHD’ ‘음성인식 인공지능 서비스’ 등 본인이 생각하는 기능이 구현 안 될 수도 있다”며 “이 때문에 소비자가 불만이 생기면 제조사 입장에선 고객만족도와 신뢰도가 떨어질까 우려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구를 하면 구매나 배송 과정 등에서 생긴 불만사항이 처리되는데 (배송이) 오래 걸릴 위험성도 있다. TV 같은 고가제품은 구매 시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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