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 순댓국집 사장에서 '패션모델'이 되기까지..55년생 모델 김칠두의 '은빛 도전' [인터뷰]

이유진 기자 입력 2019. 2. 17. 06:00 수정 2019. 2. 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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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패션모델로 데뷔한 시니어모델 김칠두씨(64). 흰머리가 섞인 곱슬 장발에 이국적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로 데뷔 1년 만에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김정근 선임기자

“좋습니다. 좋아요. 아, 지금 너무 좋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 사진 기자의 입에서 연신 “좋다”는 말이 터져나왔다. 이마와 눈밑 등 얼굴 선을 따라 깊게 팬 주름과 카메라를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 카메라 앞에 선 이는 자유분방하게 헝클어진 은색 긴머리와 수염, 181㎝ 키를 가진 패션모델 김칠두씨(64)였다. 1초 안팎의 간격으로 김씨의 표정과 시선, 몸의 각도가 변했고, 카메라 셔터는 쉴새없이 터졌다. 그런 김씨에게서 친근함을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 쑥쓰러워요. 내가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던 김씨가 패션모델로 불린 지도 어느덧 1년. 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6000명에 이르는 ‘SNS 스타’이기도 한 김칠두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패션모델로 정식 데뷔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칠두씨. 김정근 선임기자

-‘2년차 패션모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나.

“지난해 2월 모델 학원에 수강생으로 등록했다. 대표님이 잘 봐주셨는지 바로 3월 서울 패션위크 런웨이를 서게 해주셨다. 당시 김희진 디자이너의 ‘키미제이쇼’에 섰고 그게 데뷔무대가 됐다. 이때를 계기로 딸이 인스타그램에 아빠 사진을 올려보자 해서 그렇게 했더니 젊은 친구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거다. 인터넷 의류 쇼핑몰 같은 데서도 룩북 작업을 같이 하자고 문의가 왔다. 그렇게 지난해 5월에 정식으로 모델 계약하고 시니어 패션모델이 됐다.”

-패션모델이 된 계기가 무엇인가.

“참 사연이 많다. 재작년 11월에 (경기도)평택시에 있던 마지막 사업장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서울로) 올라오니 나이가 차서 막상 할 게 없더라. 그래서 딸이랑 상의를 했다. 딸이 ‘아빠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해봐’ 그러더라. 사실 어렸을 때부터 옷 입는 걸 좋아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직접 디자인한 여성의류를 팔아본 적도 있다. 20대부터 패션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게 생각이 안 났던 것 같다. 딸과의 대화 끝에 ‘아,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그거구나. 옷 쪽을 한 번 해보자’ 싶더라. 젊었을 때 주변에서 키도 크고 하니 모델해봐란 소리를 많이 들어서 이쪽으로도 생각이 닿게 됐고, 이후에 딸이 이것저것 알아보고 모델 학원에 등록하게 됐다.”

-이전에는 요식업을 40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웃음) 40년은 딸이 잘못 올린 거다. 딸은 잘 모르니까. 식당은 정확히 27년 정도 했다. 식당하기 전엔 옷도 팔고 여러가지 많이 했다. 그러니까 딸하고 이야기하게 되기 전까지는 내가 패션에 대한 것을 잊고 살았던 거다. 젊었을 때 좋아하던 감성이 잊혀진 것. 모든 사업을 접고 나서 집에서 놀 수 없으니까 막일도 다녀보고 했는데, 나이가 먹으니까 그것도 힘들었다. 고민 끝에 딸하고 상의를 했고, 다시 패션이란 관심사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자녀는 어떻게 되나.

“1남1녀를 두고 있다. 딸은 서른 넷. 참 막막했다. 갈 데란 경비자리밖에 없더라. 근데 경비를 하려고 보니까 머리를 이렇게 기르고 수염을 기르고 하니까 못 가더라. 30년 넘게 기른 머리와 수염인데 (자르는 것이)썩 내키지 않기도 했다.”

김칠두씨는 모델 일을 시작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으로 딸을 꼽았다. 김정근 선임기자

-은빛 긴 머리와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이다. 줄곧 고수한 스타일인지.

“식당할 때도 이랬다. 물론 그땐 머리도 묶고 수염도 좀 더 단정했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서 했는데 사진 넣고 ‘털보토종왕순대촌’ 이렇게 간판을 내걸기도 했다.(웃음)”

-모델 학원 등록하던 날 기억이 나나. 어떤 기분이었나.

“무섭거나 두려운 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찾으러 가는 거니까. 학원 대표님이 좋은 말만 해줘서 그런가 자신감이 생겼다. 근데 막상 등록하고 수강생이 돼서 보니까 남자는 없는거다. 어휴. 여성분들이 30~40명 있고 남자가 나 혼자였다. 처음에는 남자 혼자니까 굉장히 쑥쓰럽더라. 근데 또 바로 적응이 됐다. 지금은 즐겁게 다니고 있다.”

-모델일 하면서 새로 발견한 자신의 매력이 있다면.

“젊었을 때는 ‘(연예인)누구누구 닮았다’ ‘외국 사람 같다’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모델 데뷔하고 연기 수업이나 카메라 (촬영) 수업을 받아보니까 젊었을 때의 포스보다도 지금은 나이 먹고 생긴 잔주름이 오히려 새로운 매력처럼 다가왔다.(웃음)”

-패션모델 일은 어렵지 않나.

“사실 촬영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어색한 부분도 많고. 얼굴 표정이라든가 몸동작 이런 게 제일 어렵다. 해도 해도 어려운 것 같다.”

김칠두씨의 젊은 시절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1974년 촬영한 고등학교 졸업사진. 23살이던 1978년 서울 대공원에서 촬영한 사진. 2006년 태국 여행 때 찍은 사진. 25살이던 1980년 부여 낙화암에서 촬영한 사진. 김칠두씨 인스타그램
55년생 패션모델 김칠두씨 활동 모습. 더쇼프로젝트 모델 컴퍼니 제공

-인터뷰 전에 ‘참 쑥스럽다’고 했다.

“쑥스럽다는 건 (인터뷰)이런 거다. 내가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좋게) 봐주는 게 쑥스러운 거다. 화보촬영이나 런웨이에 섰을 때 쑥스러운 건 없다.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알아보고 하면 쑥스럽다.”

-요즘 인기를 좀 실감하는지.

“두 세달 전만 해도 인스타그램에서 젊은 친구들이 좋은 댓글을 많이 올려주셔서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지난 1월14일에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에 나가면서 화제가 된 것 같았다. 젊은 분들 위주로 길에서도 알아봐주시고. 길가에 다니면서 인사도 받고 사진도 찍어드리고 그렇다.”

-오랫동안 알고지낸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멋있다. 이런 전화를 많이 받는다. ‘이제 너 시대가 된 것 같다’, 이런 식의 조언도 많이 해주더라.(웃음)”

-모델일 시작할 때 이런 반응 예상했나.

“어휴, 전혀 안 했다. 그건 뭐 생각지도 않은 거다. 모델 일로 인해서 내가 즐겁고, 또 어떤 도움이 될까 하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란) 생각을 안 했다.”

-오늘 입고 있는 패션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입고 있는 주황색 재킷을 가리키며)사실 이 옷은 한 30년 된 옷이다. 이 재킷이. 이건 기성품이 아니고 (옷 안감에 새겨진 이름을 보여주며) 이름도 있지않나. 예전부터 옷을 이렇게 맞춰 입고 다녔다. 30년 전 당시에 15만원을 주고 양복점에서 아래 위로 맞춰입었다. 맞춰입으니 옷에 이름이 다 새겨져 있다.”

“원래 도전정신이 많은 편”이라는 김칠두씨는 스스로를 ‘오뚝이’에 비유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이렇게 패션을 좋아하는데, 왜 이전엔 도전을 못했을까.

“도전은 했었다. 20대 초반에 한양패션모델 선발대회에서 입선도 했다. 지금이야 SNS나 인터넷이 있는데 그 당시엔 이런 게 없었다. 줄 대기를 못 하면 힘들었다. 그 당시 도신우씨나 유명한 모델들 찾아가서 사사도 받아봤는데,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잘 안 됐다.(웃음) 패션 일을 하지 못한 건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다. 집안이 넉넉한 살림도 아니었고.”

-‘제2의 인생’을 사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사람을 한 명 꼽는다면.

“뭐 역시 딸이다. 그리고 또 식구들이고. 사업이 잘 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인들한테 도움을 받기도 힘들었다. 가족밖에 없었다.”

-패션모델 일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꾸준히 연습하는 건 당연한 거고, 학원에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서 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도 거울 놓고 연습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학원에 들러서 젊은 친구들이 교육하는 거 엿보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노력할 것이다. 열심히 해야만 하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서 나만의 어떤 스타일을 만들어야 하니까. 많은 노력이 필요하더라.”

젊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칠두씨. 이날 그가 입고 있던 주황색 재킷은 30년 전 양복점에서 당시 돈으로 15만원을 주고 맞춘 것이다. 김정근 선임기자

-패션모델 대부분이 10대~20대 초반인데, 어린 동료들과 일하면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다면.

“좋은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친구들도 처음엔 서먹서먹하고 나이든 사람이 오니까 쉽게 말도 못 붙이지만. 그걸 없애기 위해서 내가 먼저 다가간다. 다가가서 먼저 말도 걸고, 키가 몇이냐 묻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보듬어 주고 그런 식으로 하니까 젊은 친구들 하고 금방 친숙해지더라. 그 외에는 다른 거 없다. 힘들고 이런 것도 없다. 내가 이걸 하다보니 뭐랄까 열의가 생긴다고 할까? 힘이 나는 것 같고. 런웨이에 있을 땐 진짜 기분이 좋다. 떨리는 것도 별로 없고. 기운을 받는다고 하지 않나. 열정 같은 게 다가오는 것 같고 그래서 참 좋다.”

-지금까지 런웨이는 몇 번 정도 섰나.

“서울 패션위크에 두어 번 섰다.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건 없고 더 좋더라고. 흥분되는 그런 느낌.”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6000명(17일 기준)이 넘는다. SNS 관리는 어떻게 하나.

“처음엔 딸이 해주다가 지금은 회사에서 관리를 한다. 나도 관리를 하고. (게시물) 몇개는 직접 올리기도 했다.”

-SNS 댓글은 다 보는지.

“댓글 다 본다. 인상 깊었던 건 한 젊은 친구가 ‘우리 아빠도 저렇게 한 번 이런 도전을 하게끔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남긴 댓글이다. 또 ‘나도 이 다음에 나이 먹으면 할아버지처럼 살아보고 싶다’ 이런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김칠두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직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연극배우 활동도 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자꾸 딸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웃음) 안똔체홉극장이라는 곳에서 연출가가 매 무대마다 일일 배우를 SNS에서 모집을 한다. 일반인이 일일배우 신청을 하면 공연하는 데 가서 한마디 대사를 넣어주고 무대에 서게끔 해주는 코너가 있다. 딸이 먼저 일일배우 도전을 했다. 그걸 하고 오더니 ‘나 이런 거 했는데, 아빠도 한 번 해볼까?’ 그러더라. 그래서 거기서 일일배우를 해봤다. 그때를 계기로 연출가가 <검은 옷의 수도사>란 작품 이미지가 나랑 맞아떨어진다 하면서 같이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연기 수업을 학원에서 좀 받아보고 해서 도전했다. 그래서 지금 딸하고 같이 작업을 하고 있다. 나오는 배우는 다섯명인데, 딸도 같이 공연을 한다. 나는 수도사, 딸은 주인공을 사랑하는 여자 역할이다.”

-자녀들이 아빠의 꿈을 응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만큼 자녀들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자란 것 같다.

“부모된 입장에서 미안한 게 많다.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사실 우리 딸이 서울대에서 가야금을 전공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뒤로 뒷바라지를 못해줘서 미안하다. 아들한테도 마찬가지고. ”

자유분방하게 헝클어진 긴 머리와 수염은 김칠두씨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김정근 선임기자

-패션모델, 연극배우에 이어 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

“일단 패션모델이니까 모델 일을 꾸준히 할 거다. 세계 4대 패션위크가 있다고 하더라. 런던·뉴욕·밀라노·파리 이렇게 있다고 하는데, 이 네 개 중 하나라도 한국 시니어 모델 대표로 서는 게 내 꿈이다. 또 할 수 있다면 영화 쪽에서 연기도 한 번 해보고 싶다.(웃음)”

-꿈이 있지만 현실에 치여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끼가 하나씩은 다 있다. 내면에 있는 그 끼를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도 얼굴에 주름이 자연스럽다거나 하는 말을 듣지만, 이런 부분에서 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꾸준히 노력하는 것, 그게 최고일 것 같다. 모델이 그냥 걷고 이런 게 아니더라. 모든 분야가 다 똑같겠지만, 배움이라는 게 끝이 안 보인다. 어디가서 앉을 때도 바른 자세로 앉고, 걸음걸이도 늘 신경을 쓴다.”

-원래 소위 말하는 ‘도전정신’ 있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모델 일을 하며 성격이 변한 것인가.

“둘 다이다. 원래 도전정신이 많았다. 사업에 실패한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너무 욕심이 많고 과하고, 그런 부분에서 실패를 많이 봤다. 근데 또 실패를 해도 남들처럼 좌절을 모른다. 바로 돌아서서 싹 잊어버리고 다시 (도전한다). 나를 아는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희한한 세상을 산다고 한다. 오뚝이 같이. 어느 날 보면 이렇게 망해있고, 또 어느날 보면 또 흥해있고. 이런 식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이 나 보고 희한하다고 한다.”

김칠두씨는 최종 목표에 대해 “세계 4대 패션위크 무대에 한국 시니어 패션모델 대표로 서는 것”이라 말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시니어 모델이란 직업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같이 활동하는 분들이 많나.

“일단 시장이 별로 없다. 나는 SNS로 젊은 친구들에게 각광 받았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시니어 모델들을 보면 의욕은 있는데 불러주는 곳이 없는 거다. 그 정도로 힘들다. 디자이너분들이 젊은 모델만 채용을 하는 게 아니라 시니어 모델들도 같이 콜라보하는 형식으로 많이 (시도)해주면 좋겠다. 열 개 중 한 쇼라도 그렇게 진행되면 기대감이 있지 않을까. 작년 가을시즌에 오디션을 7번 정도 봤는데, 한 군데도 불러주는 곳이 없더라.”

-만약에 패션모델이 안 됐다면, 지금의 김칠두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일반적인 생활을 했겠지? 우리 나이에 갈 데라곤 경비 자리 정도밖에 없다. 특별히 배운 것도 없으니까. 기술이 없지 않나. 있다해도 식당 기술? 직접 주방에서 요리도 다 했기 때문에. 사실 이쪽으로 노크도 많이 해봤지만 나이가 있다고 안 써주더라. 아마 경비업을 하거나 대리운전을 하거나 그랬을 것 같다.(웃음)”

-김칠두의 2019년 목표는 뭔가.

“목표로써 다른 게 없다. 조금 있으면 패션쇼 시즌인데, 거기 두세 개 쇼에 서보는 게 목표다. 모델에게 큰 목표가 있겠나. 그런 거지.”

-끝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상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조금씩 실감하고 있지만, 많이들 알아봐주시고 항상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써주신 좋은 글들을 보면 이런 게 많이 올라온다. ‘건강하셔야 됩니다.’ 그 얘기가 참 와닿는다. 얼마나 고마운가. 앞으로 기대 벗어나지 않게끔 열심히 노력할 거다. 그 동안 감사했고, 앞으로도 꾸준한 지지 부탁드린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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