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탈 쓰고, 웹툰 띄우고..신인 아이돌 생존법 '튀어야 산다'

이유진 기자 2019. 2.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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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멤버 중 한 명이 토끼탈을 쓴 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8인조 걸그룹 ‘핑크판타지’. 마이돌엔터테인먼트 제공

해마다 70여팀 가요계 데뷔 ‘홍수’ 기상천외 노이즈 마케팅 등 경쟁 팬들 “재미·참신” 일각선 “지나쳐” 대형 기획사에선 위험부담 우려 방송·쇼케이스로 안정적 신고식

흰색 와이셔츠와 분홍색 치마를 입고 무대에 선 7명의 소녀들 앞에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고, 엄연한 걸그룹 ‘핑크판타지’의 멤버다. 데뷔곡 ‘이리와’의 간주가 시작되자, 토끼탈을 쓴 멤버 대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리와. 그래 옳지” 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핑크판타지는 지난해 8월 데뷔한 8인조 걸그룹이다. 멤버 대왕이 토끼탈을 쓰고 활동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해졌다. 대왕은 음악방송 무대는 물론 뮤직비디오, 팬사인회, 팬들과 영상으로 소통하는 일상 브이로그까지 전부 탈을 쓰고 등장했다. 대왕을 둘러싼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팬들은 “얼굴이나 성격 등을 상상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참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룹 홍보를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돌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에 따르면 해마다 아이돌그룹 70여팀이 가요계에 데뷔한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신인 그룹들의 경쟁 전략도 상상을 초월한다. ‘복면 전략’도 그중 하나다. 2015년 데뷔한 6인조 보이그룹 ‘에이식스피(A6P)’는 핑크판타지처럼 한 멤버가 가면을 착용하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가면을 썼던 멤버 아도는 신비주의 콘셉트를 계속 유지하지 않고, 이후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했다.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한 래퍼 마미손 역시 분홍색 복면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며 이름을 떨쳤다.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전략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세계관’은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이다. 세계관이란 멤버들이 가진 개성과 앨범의 서사를 그리스·로마 신화나 초능력 같은 하나의 콘셉트로 스토리텔링해 판타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그룹 ‘엑소’와 ‘방탄소년단’ 역시 이 세계관을 통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방탄소년단의 팬인 김정현씨(22)는 “앨범 콘셉트부터 가사, 춤, 스타일까지 다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에 팬 입장에서는 숨은 의미를 찾거나 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기대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종합엔터테인먼트사 판타지오가 웹툰 플랫폼 ‘코미카’와 손잡고 만든 아이돌 데뷔 과정이 담긴 웹툰 <트레니즈>. 판타지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별자리, 마법학교 등 각종 세계관이 등장하면서 세계관의 소재도 차별화 경쟁이 치열하다. 데뷔 2년차 걸그룹 ‘드림캐처’는 ‘악몽’을 콘셉트로 한 세계관으로 주목받았다. 드림캐처 멤버들이 불안한 현실 세계 속 악몽에 시달리는 이들의 대변인이 돼 노래하는 식이다. 또 지난달 데뷔한 걸그룹 ‘체리블렛’은 그룹명을 딴 OS(운영체제)가 존재하는 게임 형식의 세계관을 선보여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

웹툰과 같은 다른 장르의 콘텐츠를 아이돌과 결합시켜 홍보에 활용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종합엔터테인먼트사 판타지오의 경우 웹툰 플랫폼 ‘코미카’와 제휴를 맺고 2016년 아이돌 연습생들의 데뷔 과정을 상세하게 담은 웹툰 <트레니즈>를 공개했다. 2017년에는 엠넷 <프로젝트 101> 시즌1 출신인 최유정의 정식 걸그룹 데뷔 과정을 그린 웹툰 <두근두근! 스테이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그룹과 달리 방탄소년단의 ‘동생그룹’이란 홍보 효과 덕분에 튀는 생존전략이 필요하지 않았던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보이그룹 ‘TXT’.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반면 대형 기획사가 배출하는 신인 아이돌은 위험부담이 높은 차별화 마케팅보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쇼케이스를 통해 안정적이고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선배 그룹’의 후광만으로 데뷔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이는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대표적이다. 약자인 ‘TXT’로 불리는 이들은 데뷔 전부터 공식 트위터 팔로어 수가 133만여명에 달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3월4일 엠넷 단독 특집쇼 ‘데뷔 셀러브레이션 쇼’로 데뷔한 후 다음날 쇼케이스를 가질 예정이다.

‘걸그룹 명가’ JYP가 선보이는 걸그룹 ‘있지’도 지난 12일 쇼케이스를 통해 정식 데뷔했다. 데뷔 하루 전날 선공개된 데뷔곡 ‘달라달라’ 뮤직비디오는 공개 18시간30여분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000만뷰를 달성하기도 했다.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은 “요즘은 대형 3대 기획사 아이돌도 데뷔 초반 입지를 다지는 데 2~3년의 시간이 걸리는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소속사 규모가 작더라도 참신한 기획을 해서 튀면 된다. 즉 기획력이 좋으면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몇 년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득세하면서 신인 그룹들이 살아남기 더 힘들어졌고, 지난해부터 남들이 보기에 특이한 전략을 취해 살아남는 분위기가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통상적인 앨범 홍보조차도 튀지 않으면 묻힐 정도로 아이돌 시장이 포화상태에 있다”며 “과거엔 과도한 노출 등 선정적인 마케팅 전략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B급 코드나 ‘병맛’ 콘셉트로 SNS 화제성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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