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압제에 가까운 차단이란 비판
음란물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규정도 없어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정부가 11일부터 불법음란물 및 도박 등 불법정보를 유통하던 해외 인터넷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에 나서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불법 음란물 유통 근절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외 성인사이트의 접속을 원천 차단하는 정책은 시대착오적인 검열제도이자 사생활 침해라는 반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이트 차단은 '유교탈레반'적 발상이란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2일 불법음란물 및 불법도박 등 불법정보를 유통하는 해외 인터넷사이트 895개에 대한 접속차단을 실시하기로 하고 KT, LGU+, SK브로드밴드, 삼성SDS, KINX, 세종텔레콤, 드림라인 등 7개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가 새로운 접속 차단기술인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필드차단'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URL 차단'이나 'DNS 차단'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우회접속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치가 시작되자마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지나친 규제라는 반발이 일고 있다.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불법사이트 차단 반대 청원에는 10만명이 넘는 추천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이트 차단 반대 의견의 주된 요지는 이것이 인터넷 검열의 시초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과 음란물 규제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부의 차단정책이 '유교탈레반'적인 발상이란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유교탈레반이란 흔히 우리나라의 유교문화를 통해 형성됐다고 잘못 알려진, '성(性)을 금기시하는 풍속', '남녀차별', '상명하복' 등 일제강점기 이후 형성된 불합리한 권위주의적 관습들을 통칭하는 인터넷 은어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을 장악,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폭정을 펼치며 바미얀 석굴 등 불교 문화재 훼손으로 비난받았던 군벌집단인 '탈레반(Taliban)'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적체된 한국의 권위주의적 관습들과 정부의 강제적인 하향식 정책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했던 시대착오적 압제와 같다는 의미다.
이처럼 정부의 불법음란물 대책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음란물 규제 관련 법망이나 규제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조건 모든 성인물을 금지하고 차단부터 하는 정책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서 음란물을 유포·판매하는 행위는 위법이지만, 음란물의 개념은 명확치 않다. 포르노 등 음란물에 대해서도 법률로 개념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례상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어두운 분위기 아래 생식기에 얽힌 사건들을 기계적으로 반복·구성하는 음란물의 일종'으로 규정돼있을 뿐이다.
이러한 음란물의 불분명한 정의에 따라 성기가 노출되거나 성행위 장면이 드러나는 모든 포르노 콘텐츠는 국내에서 불법 음란물로 규정돼 정식 유통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성인용 포르노 자체를 국가가 아예 불법으로 규정, 유통을 금지시킨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몇몇 이슬람국가들 뿐이다. 포르노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면서 오히려 웹하드 업체 등에서 해외 포르노 콘텐츠를 음성적으로 유통시키는 구조가 이어져 논란이 커져왔다. 이번 해외사이트 차단 정책 역시 음란물 유통의 음성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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