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6 잉글랜드인에게 역대 최고는 보비 무어다

김태석 2019. 2. 1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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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6 잉글랜드인에게 역대 최고는 보비 무어다



(베스트 일레븐=런던/잉글랜드)

역사상 세계 최고의 수비수는 누구일까? 질문을 받자마자 많은 이름들이 뇌리를 스칠 것이다. 독일의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 이탈리아의 ‘무결점 수비수’ 파올로 말디니, 스페인 ‘무적함대’ 시기를 이끌었던 카를레스 푸욜 등 저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슈퍼 디펜더들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잉글랜드인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십중팔구 이 이름을 언급할 듯하다. 바로 보비 무어다.

1966 FIFA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삼사자 군단’ 잉글랜드 수비의 핵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맹활약하며 조국에 월드컵 우승을 안긴 인물이다. 하지만 무어의 위상은, 특히 이상하리만치 한국에서의 위상은 작은 듯하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을 거론할 때 가장 처음, 그리고 많이 거론될 이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이기도 한 보비 찰턴일 것이다. 서독을 상대한 결승전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골 라인 골’을 포함해 해트트릭을 성공시킨 제프 허스트도 당시 대회의 주인공으로 꼽을 만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잉글랜드에서는 그렇지 않다. 무어는 월드컵 우승의 ‘진 주인공’이며, 나아가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 증거를 잉글랜드 축구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찾을 수 있다. 손흥민이 활약하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의 임시 홈 구장으로 팬들에게 친숙할 이 웸블리 스타디움의 정문 앞에 바로 무어의 늠름한 동상을 살필 수 있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낀 상태로 발밑에는 볼을 두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은 축구 선수가 아닌,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 같은 느낌을 준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엇비슷한 위엄을 느끼게 해주는 동상이다.

잉글랜드의 축구 경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상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물론 사실이다. 올드 트래퍼드의 ‘유나이티드 트리니티(조지 베스트·데니스 로·보비 찰턴)’ 동상 등 잉글랜드 클럽 축구사에서 힘 좀 꽤나 썼다는 클럽의 홈구장에 가면 대개 그 팀의 레전드가 동상의 형태로 팬들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무어의 동상은 그래도 특별하다. 일단 자리 자체가 잉글랜드 내 여타 경기장과는 ‘수준’이 다르다. 잉글랜드 축구의 흥망성쇠,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이어지고 있는 웸블리다. 단순히 클럽팀이 아니라 한 나라를 대표하는 팀의 안방이다. 자국 내 훌륭한 스타디움이 즐비하면서도, 고집스레 안방으로 쓰는 곳이기도 하다. 장소가 주는 상징성은 잉글랜드의 다른 구장 동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무어의 위상은 장소가 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웸블리 앞 무어 동상은 방문객들이 대개 위엄이 가득한 무어의 동상만을 바라보지만, 이 동상이 품은 의미를 모두 이해하려면 그 주변을 모두 봐야 한다. 동상 정면 기둥을 살피면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당시 베스트 일레븐이 새겨져 있다. 그 베스트 일레븐은 열 명의 선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단 한 명이 팀을 대표해 한걸음 더 앞서고 있다. 바로 무어다. 단순히 주장이어서가 아니다. 그 팀의 중추적 구실을 한 핵심 선수였기에 가능했던 표현이다.

동상의 주변 보도블럭에는 영국 사회의 고위층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일명 ‘보비 무어 클럽’이라 불리는 이 사교 집단이다. 정확히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VIP 클럽이라 보는 게 좋을 듯한데, 영국 수도 런던에 자리한 이 초현대적인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메이저 경기에서 VIP로 초대되어 비싼 식사와 경기를 즐긴다는 점에서 영국 사회의 주류층이 모이는 그룹이라 봐도 무방할 성싶다. 이들이 모임의 이름으로 무어를 정한 데에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무어가 보인 뛰어난 리더십을 표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무어는 단순히 축구 선수가 아닌, 현재 영국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여전히 끼치고 있는 리더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무어가 이런 위상을 쌓는데 웸블리라는 장소가 매우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무어는 현역 시절 세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1963-1964시즌 FA컵, 1964-1965시즌 UEFA 컵 위너스컵을 거머쥐었으며,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언급한 월드컵 우승을 맛봤다. 그런데 이 대회의 결승전이 바로 모두 웸블리였다. 잉글랜드 축구 성지에서 한 번도 아니라 세 차례나 우승을 휩쓴 우승의 아이콘, 그래선지 무어의 동상은 현재 잉글랜드 축구를 위한 ‘승리의 부적’ 같은 느낌도 준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무어의 동상이 국가대표팀 안방에만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무어는 웨스트햄의 사상 첫 FA컵 우승을 안긴 주역이자, 팀에 유일한 유럽 클럽대항전(UEFA 인터토토컵 제외) 정상을 안긴 전설이다. 당연히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도 따로 챙겼다. 과거 웨스트햄 홈 구장이 자리했던 업튼 파크의 교차로에는 ‘월드컵 동상’이 존재한다. 축구 영화 ‘그린 스트리트 훌리건스’를 기억하는 팬들을 위해 좀 더 부연하자면, 웨스트햄 팬들이 주름잡고 있는 동네 ‘그린 스트리트’에 바로 그 월드컵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이 동상은 웸블리의 그것에 비교해 전혀 부족하지 않은 멋진 작품인데, 바로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당시 웨스트햄 선수였던 무어·제프 허스트·마틴 피터스 그리고 에버턴에 소속되었던 레이 윌슨이 주인공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이가 또 무어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직후 선수들의 무등을 타고 줄리메컵을 높이 든 무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이기도 한데, 바로 이를 모티브로 얻어 만든 동상이기 때문이다. 소속팀은 당연하고, 대표팀에서도 동상의 주인공으로 모신 선수라는 점에서 무어의 위상은 여타 잉글랜드 전설과는 확연히 차별화한다. 이 쯤 되면 잉글랜드인들이 생각하는 역대 최고 선수라는 표현을 붙여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글·사진=김태석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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