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최강시사] 이덕주 "2.8 독립선언에는 세계주의 담겨 있어"
- 2.8독립선언, 3.1운동에 가장 크게 영향 준 항일저항 운동
- 동경 유학하던 20-30대 한국엘리트들이 세계질서 속 민족의 방향 모색한 선언
- 2.8독립선언서, 동경유학생들 토론의 산물... 개인의 작품 아니라 집단지성의 발로
- 마지막에 합류한 이광수는 선언서 문장 다듬는 역할 해
- 2.8선언, 동경유학생 700명중 600명이 침략국 심장부 동경에 모여
- 주모자 60여명 내란죄로 사형하려했으나, 국제여론에 1년 금고형 처해
- 2.8독립선언서...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 외에 세계평화, 인류문화 공헌 선언해
- 민족주의에 머물지 않고 세계주의와 미래 조명해... 당시 청년들의 통찰 담겨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2>
■ 방송시간 : 2월 8일(금) 7:25~8:57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이덕주 위원(서울YMCA시민논단, 前감신대 교수)
▷ 김경래 : 딱 100년 전 오늘입니다. 1919년 2월 8일 도쿄에 있는 재일본도쿄조선 YMCA회관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했습니다. 3.1운동은 많이들 당연히 알고 계시지만 2.8독립선언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오늘 서울하고 일본에서 2.8독립선언을 기념하는 행사가 동시에 열린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종로YMCA에서도 2.8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는 강의가 열린다고 하는데요. 이 강의를 오늘 진행하실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님 연결해서 2.8독립선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덕주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제가 말씀드렸는데요. 3.1운동 요새는 3.1혁명이라고도 하고요. 이건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2.8독립선언은 교과서 때 잠깐 보고 잘 기억이 안 나요. 어떤 운동이었는지 먼저 좀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세요.
▶ 이덕주 : 3.1운동이 거족적인 그런 항일저항 투쟁으로 발전되기 전에 여러 가지 작은 흐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흐름들 가운데 중국 상해에서 신한청년단들이 파리의 민족 대표 파견하는 것 또 북한도 우리 동포들이 독립선언을 하는 것 또 하와이나 샌프란시스코 미주 동포들이 민족 자결주의에 대해서 독립선언을 준비하는 것, 이런 여러 가지 작은 운동들이 모아서 3.1운동이라고 하는 큰 횃불을 만들죠. 그런 작은 모임 중에 그래도 서울에서 이루어진 3.1독립선언에 가장 영향력을 크게 강하게 끼쳤던 것이 2.8독립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김경래 : 2.8독립선언은 아까 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린 게 일본에 있는 조선 유학생들이 모여서 했다는데 어느 정도로 그리고 누가 이렇게 모여서 어떻게 한 건가요?
▶ 이덕주 : 글쎄요, 그 무렵에 일본 동경에 유학을 하고 있었다면 한국의 엘리트, 최고의 지성인들이죠. 결국 이분들이 다 20대, 30대들이거든요. 가장 민족 문제에 예민했을 것이고 또 이분들이 동경에서 유학을 하면서 거기에서 전 세계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종결이 되고 그다음에 세계의 질서가 재편이 되는 과정 가운데 우리 민족의 앞날, 장래 여기에 대한 그러니까 예민한 통찰을 가질 수 있었던 젊은이들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아마 3.1운동 전체 전개 과정에서 가장 우리 민족의 과제와 세계 질서의 개편이라고 하는 그래서 세계 질서 속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동경 유학생들의 냉철한 판단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김경래 : 그 당시에 제가 기억하기로는 소설가 이광수 나중에 변절을 했지만요. 등등이 선언서를 기초를 하고 낭독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분들이 있었어요, 이광수 소설가 말고요?
▶ 이덕주 : 사실은 그분은 뒤늦게 참여한 분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발표된 3.1 독립선언서가 최남선 선생이 개인이 초안을 내고 그게 민족 대표들이 열람하는 식으로 진행이 됐지만 2.8독립선언서는 이미 1919년 1월 초부터 동경 YMCA에서 유학생 모임이 거의 주마다 모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미 동경 유학생 친목회 학생 단체들이 한 서너 개가 있었어요. 그 대표의 대표자들이 끊임없이 모여서 토론하고 그리고 문장을 다듬으면서 이제 뒤늦게 북경에 계셨던 이광수 선생이 서울 거쳐서 거기 합류하면서 어떻게 보면 이광수 선생은 제일 마지막에 문장 다듬는 그런 일을 했다고 저는 보고요. 그런 면에서 2.8독립선언은 한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그때 당시에 동경의 유학생들이 최고 지성인들의 모임이니까 우리가 얘기하는 조선독립청년단 대표로 이름을 올렸던 최팔용, 송계백, 김상덕 이런 분은 와세다 대학에 또 백관수 선생은 메이지 대학에 김도연, 김철수 이런 분은 게이오 대학에 윤창석, 전영택 이런 분은 아오야마 대학에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 일본 동경에서도 최고 명문학교 다녔던 분들이 공동 작품으로 저는 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봐요.
▷ 김경래 : 당시에 이렇게 만세를 외쳤으면 거기가 일본 그러니까 식민지 지배국의 수도 한복판 아니겠습니까?
▶ 이덕주 : 그렇죠.
▷ 김경래 : 거기서 만세를 외쳤으면 당연히 경찰들이 와서 다 연행해갔겠죠?
▶ 이덕주 : 그럼요.
▷ 김경래 : 그리고 그런 것들을 유학생들이 이렇게 거사를 하기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좀 들어요.
▶ 이덕주 : 그렇죠.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 얼추 잡아서 동경 유학생 한 700명으로 보고 있거든요. 그중에 600명이 모였다면 거의 다 모인 거죠. 그러니까 20~30대의 젊은 유학생들의 그 청년들의 민족에 대한 열기 그게 굉장히 뜨거웠고요. 사실 일본도 굉장히 당황했죠. 심장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한 60여 명을 체포해서 주모자들이죠. 처음에는 내란죄로다가 이걸 재판에 걸자 했어요. 내란죄는 사형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여론을 보는 거죠. 그때 당시만 해도 일본이 서구 국가들에게 가장 아시아 국가 중에 문명 국가다, 개발된 국가다, 이런 이해를 그들이 받기를 원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조선의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한 걸 가지고 내란죄로 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죠.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출판법 위반으로 해서 1년 금고형으로 비교적 낮은 걸로다가 결국 그들도 바꿀 수밖에 없었죠.
▷ 김경래 : 그러면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2.8독립선언서는 민족 문제를 안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훌륭한 역사 교재가 될 것이다.” 우리가 3.1운동 독립선언문은 많이 외웠잖아요, 학교 다닐 때. 2.8독립선언서는 저도 부끄럽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구절이 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 이덕주 : 제가 이번에 강연을 준비하면서 차분하게 다시 한 번 읽었는데요. 특히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건국 이래에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민족은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선진국의 모범을 본받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후 세계 평화와 인류 문화에 공헌할 수 있을 것임을 확인하는 바이다. 이에 우리 민족은 일본을 위시한 세계 각국의 우리 민족에게 민족 자결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며 만일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은 생존을 위해 자유 행동을 취함으로써 독립을 성취할 것을 선언한다.’ 저는 이 구절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이분들이 우리가 민족주의 얘기하면 굉장히 국수적이고 내부로만 생각하는 거가 있는데 이분들은 세계 평화와 인류 문화에 공헌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그러니까 세계주의로 나간 거죠. 그래서 오히려 독립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독립은 수단이고 독립된 다음에 우리는 세계 평화와 인류 문화에 공헌하기 위하여 자주 독립된 국가로서 세계 무대에 당연히 참여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래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이 청년들의 위대한 통찰을 저는 발견할 수가 있었어요.
▷ 김경래 : 시야가 굉장히 넓었군요. 더군다나 이게 어떤 자유권을 행사하겠다, 이게 일종의 선전포고 같은 청년들의 약간 용기라고 해야 될까요? 호연지기 이런 게 느껴지네요. 알겠습니다. 오늘 2월 8일인데요. 사람들이 한 번씩 2.8독립선언에 대해서 생각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강연 잘 치르시고요.
▶ 이덕주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고맙습니다. 서울 YMCA 시민논단 위원으로 활동하시는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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