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27) '가장 스페인적인 화가' 고야는 무얼 보고 있을까..
"피렌체 산맥을 넘으면 아프리카다."

스페인의 경제적 낙후성과 반계몽적인 정치 분위기를 비하한 나폴레옹의 말이다. 1800년을 전후로 한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19세기 전반 세 권짜리 ‘스페인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쓴 영국인 리처드 포드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스페인에는 호텔이 세 종류밖에 없다. 나쁜 호텔, 더 나쁜 호텔, 가장 나쁜 호텔이 그것이다."
확실히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풍경과 기후가 확연히 다르다. 태양이 뜨거운 계절에 이 곳을 여행한다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선글라스 없이는 못산다’는 말을 절로 이해하게 된다. 태양은 스페인 최고의 관광자원이다.
세계경제포럼이 2년마다 발표하는 관광경쟁력 순위에서 2015년과 2017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2018년 8,2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인데, 알프스 이북 사람들을 스페인으로 유혹하는 가장 큰 요인은 태양이다. 하지만 그 뜨거운 태양은 동시에 그늘이기도 하였다.
스페인의 시계는 확실히 다르게 움직인다. 출장자에게 익숙지 못한 환경이다. 저녁 7시에 식사하기 위해서 식당을 찾았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다. 그들의 저녁식사는 보통 밤 10시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신 아침은 가벼운 커피 한잔이다.

유럽연합에 통합 되고 글로벌화가 된 이후 많이 바뀌었지만, 전통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은 ‘시에스타’라는 낮잠을 경계로 생활이 완전히 달라진다. 시에스타 이전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생업의 시간이며, 반대로 저녁 이후의 시간은 즐기기 위한 시간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를 두 번 산다. 여름철 대낮은 지옥, 태양이 진 이후 밤시간은 천국으로 변해서 밤늦도록 상쾌하고 서늘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태양이 그토록 스페인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멀리 수도 마드리드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붉은 황무지를 발견하게 된다. 뜨거운 태양과 그 태양 아래 숨은 그림자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풍경들이다. 그 극적인 명암의 대조를 보여주는 화가가 있으니 바로 가장 스페인적인 화가라는 프란시스코 고야다.
‘태양과 그림자’(Sol y Sombra),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바로 그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문자 그대로 혁명적인 시대, 인생이 혁명 자체였다. 스페인의 가혹한 운명처럼 한편으로 모순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창의력을 발휘한 화가다.
그에 눈에 의해서, 진정한 스페인의 정서가 발견되기 시작되었다고 평가 받는다. 스페인의 삶과 역사를 알려면 고야를 알아야 하고, 고야를 알기 위해서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가야 한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루벤스, 티티안 같은 해외의 거장들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고 있지만,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 그리고 프란시스코 고야, 이렇게 3명의 화가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 있다. 그들이 바로 스페인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다만 엘 그레코(El Greco)는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고 이름도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다.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쳐 스페인에 와서 톨레도와 카스티야의 건조한 지방에서 스페인의 신비주의를 그렸다.
[미니정보] 프라도 미술관
"나에게는 세 명의 스승이 있었다. 자연의 여신과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다."
고야가 말한 벨라스케스는 렘브란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스페인을 대표하는 또 다른 화가다. 벨라스케스는 스물 세 살 때인 1623년 왕궁에 들어간 이후 1660년 말라리아와 과로로 죽음을 맞을 때까지 피곤하게 살았다.

그의 고향 세비야에는 동상에 세워져 ‘진리를 그린 사람’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그가 걸작 ‘궁정의 시녀들’에 그려진 것처럼 난쟁이, 장애인들과 함께한 인생이란 뜻이다. 궁정에 살면서 나중에는 거의 모든 소소한 것을 책임지는 일종의 총무담당 책임자로 활동했던 탓이다. 본업인 화가가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피곤에 시달리다 재능을 낭비한 아까운 천재였다.
반면에 고야는 어떤 화가였던가? 고야는 평생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다. 생애 전반기 서른 살 때부터 마흔여섯까지 16년동안 태피스트리 공장을 위해 63점의 밑그림을 그렸다. 궁정화가가 된 이후로도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통틀어 350여점에 이르는 초상화를 그렸으니 실로 엄청난 작업임에 틀림없다.
잠잘 때와 식사할 때 이외에는 항상 붓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렘브란트에 비견된다. 흔히 글은 곧 사람이라 한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이야 말로 그가 누구인지 말한다. ‘서양미술사’에서 곰브리치가 평가하는 고야는 이렇다.
"(그의 그림은) 티치아노나 벨라스케스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고야는 그것을 버리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는 그들의 초상화에서 허영과 추악함, 탐욕과 공허함을 낱낱이 드러냈다. 자기 후원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던 궁정화가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당시 화가란 교회와 왕실 그리고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더욱이 스페인은 종교재판소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신성모독적인 그림이나 고위 인사의 체면을 떨어뜨리는 그림은 금지되었다. 하일라이트는 ‘벌거벗은 마하’라는 그림이었다.

마하(Maja)는 18세기 스페인어로 여자 멋쟁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남자는 마호(Majo)라 불렀다. 상류계급이 아닌 하층계급 신분에 기원을 둔 마하와 마호의 모습을 당당히 궁정의 그림 속으로 갖고 들어간 사람이 고야였다.
교황청이 있던 로마나 피렌체와 달리 당시 스페인은 나체화 그림이 금지되어 있었다. 17세기와 18세기를 통틀어 유일한 예외는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와 큐피드’ 정도였다. 이 경우조차 벌거벗은 비너스는 뒤로 돌아선 채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고야는 완전히 벌거벗은 여인이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도발적인 그림을 그렸다. 종교재판소에 기소되었지만 그림 검열 담당자들이 지인들이었던 덕분에 그 그림과 고야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결함이 많은 남자였다. 젊었을 때는 바람둥이였고, 40년에 걸친 결혼생활 동안 아내로부터 무려 스무 명이 넘는 자식을 낳게 했으며, 그 중에서 무사히 자란 것은 아들 하나뿐이었다.
초상화 모델이 된 여자와 염문을 뿌리기 일쑤였고, 불쌍한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뒤에는 자기보다 마흔 살이나 아래인 여성으로부터 또 다시 딸을 얻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68세였다.

천벌처럼 중병에 걸려 청력을 잃어버렸다. 베토벤처럼 귀가 들리지 않았다. 이루 열거하기 힘든 복잡한 여자관계와 질병, 정치적 변화, 음모, 싸움, 전쟁을 비롯한 그늘이 그의 그림 속에는 존재한다.
프랑스의 침략을 전후로 1808년에 일련의 정치적 격변과 폭력을 그린 걸작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적으로도 애매한 자세를 취했다. 병이 들어 숨진 곳도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의 보르도지방이었다.
고야가 활동했던 때의 스페인은 더 이상 무적함대가 아니고 신대륙을 발견하던 위대한 시대도 아니었다. 전쟁을 자주 했지만 그때마다 패배를 거듭했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은 독립했으며 나폴리는 반란을 일으켰고, 프랑스는 바르셀로나를 점령했다.
아메리카와의 무역은 격감했으며 신대륙으로 떠난 자들은 돌아오지 않아서 인구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과거의 선진국이었던 스페인은 이제 후진국의 양상이었다. 그런 모순적인 정신세계가 고야의 그림 속에 있다.
고야는 몇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일종의 내적 성찰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일까? 혹은 그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관람객인 우리 자신일까? 고야의 그림은 묻고 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깜짝 실적’ 엔비디아, 현대차·LG 언급… ‘생태계 확대’ 강조한 젠슨 황
- [비즈톡톡] 벤치마킹하던 일본으로… K패션, 도쿄 상권에 잇따라 ‘깃발’
- “6000 넘었지만 삼전·하이닉스만 웃음?”…종목 열에 여섯은 축제서 소외
- “임대주택도 한강뷰 배정”… 9월부터 공개추첨 안 하면 재건축 불허
- 더 강력한 AI 기능 무장한 ‘갤럭시S26’… 256GB 전 모델 9만9000원 인상
- 고향 후배가 1인자로… ‘성추행 비호’ 논란에 흔들리는 한미약품
- “1000원 못 넘기면 퇴출당한다”…동전주, 상폐 공포에 ‘생존 병합’
- 현대차그룹도 몰랐다… 이병헌, 제네시스 조끼 입고 손흥민 만난 이유
- 활명수 파는 동화약품에 왜… 다시 돌아온 ‘국정농단’ 우병우
- 구직촉진수당 최대 360만원… SNS에 퍼진 ‘지원금 챙기기’ 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