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엔 비행기 대신 '고추'..정기노선도 없는 국제공항

정진우 김하늬 이재원 한지연 기자 2019. 2. 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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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공항의 정치학]인구 500만에 공항만 5개, "공항은 정치거물 전쟁터"

인구500만에 공항만 5개, “공항은 정치거물 전쟁터”

대한민국에 공항이 넘쳐난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만 있다. 비행기가 하루 한 두번 이착륙하는 공항이 있는가 하면 이용객 없이 개점휴업인 공항도 많다. 공항이 경제 논리로 건립된 게 아니라 철저히 정치 논리로 만들어진 결과다.

6일 국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엔 국제공항 8개와 국내공항 7개 등 모두 15개 공항(성남 등 군용공항 제외)이 있다.

인구 500만명인 호남(전북, 전남, 광주)에만 공항 4개(군산, 광주, 무안, 여수 등)가 있다. 이번 새만금 국제공항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탓에 5개(군산공항과 통합되기 전)가 되는 셈이다. 1300만명이 사는 영남(경북, 대구, 경남, 부산, 울산)에도 5개(대구, 김해, 울산, 사천, 포항) 공항이 있다. 인구 155만명인 강원도엔 양양국제공항과 원주공항 2개가 있다.

이들 대부분 공항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 지난해 전국 10개 지방공항의 적자를 모두 합치면 800억원에 이른다. 입지나 경제성을 따지지 않은 탓이다. 오로지 정치 논리로 접근한 곳이 대부분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정치인들이 사활을 걸고 유치전을 펼친 결과다. 대규모 토목 사업인 공항 프로젝트는 확실한 표를 보장한다.

3년전 신공항 입지를 두고 영남권이 들썩인 게 대표적이다. 부산 가덕도(PK)와 경남 밀양(TK)이 지역 민심을 기반으로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심각한 지역갈등으로 이어졌다. 대선 때마다 영남권 표심을 흔들던 초대형 시한폭탄이다. 경제성이 우선돼야 할 국책사업은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진흙탕 싸움이 됐다. 특히 당시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박근혜 정부와 차기 대권 후보 간 물밑 혈투로 나타났다. 정치 거물들이 뛰어들어 권력 대결 양상을 보였다.

경남 밀양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적 지지 기반인 TK에 ‘신공항 선물’을 안겨주려 할 것이란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반면 부산 가덕도는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을 때 “부산에서 5석만 더민주에 주면 박근혜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신공항을 착공하겠다”고 말하는 등 대척점에 섰다.

이번 새만금 국제공항 예타 면제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고 전북권 10명의 국회의원들은 모두 공항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국회 관계자는 “공항은 대표적인 대규모 건설 사업으로 예산 규모가 크고 지역 건설산업에 도움이 되는 등 지역민들이 반긴다”며 “인구가 없어도 일단 유치해놓고 보자는 지역 정치인들 때문에 우후죽순 공항이 생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활주로엔 비행기 대신 ‘고추’…적자에 허덕이는 ‘위기의 지방공항’

797억원.
지난해 전국 10개 지방공항의 적자를 모두 합친 금액이다. 적게는 27억원부터 크게는 139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이라 개선의 여지도 적다. 모두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된 곳이다.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선거때마다 지역발전을 향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신공항 유치 경쟁에 사활을 건다. 막대한 경제효과를 앞세운다. 하지만 엉터리 예비타당성(예타) 검사나 예타 면제 등으로 ‘선심성 건립 후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제공항만 △인천 △김포 △제주 △김해 △청주 △대구 △양양 △무안 등 모두 8곳이다. 국내공항은 △군산 △여수 △포항 △울산 △원주 △사천 △광주 등 7곳이다. 총 15곳 가운데 인천공항공사가 관리하는 인천공항을 제외한 14곳을 한국공항공사가 관리한다.

14곳 가운데 흑자를 내는 곳은 △김포 △김해 △제주 △대구공항 뿐이다. 그나마 대구공항도 2016년에야 처음 흑자로 전환했다.

나머지 지방공항들은 상황이 녹록지 않다. 흑자로 전환했다가도 금새 적자로 돌아선다(청주공항). 여기에 이번 예비타당섬 검사 면제 대상으로 선정된 새만금 국제공항을 비롯해 추가 건설될 예정인 △제주 2공항 △동남권 신공항 △서산국제공항 등까지 합치면 지방공항 ‘악순환’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 공항의 타당성 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편익·비용 분석항목으로 계상할 수 없는 비목을 계상해 경제성 타당성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통과했다. 예상되는 이용객 수를 부풀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최악의 적자를 낸 무안공항이다.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도 유명하다. 텅텅 빈 활주로에 인근 주민들이 수확한 고추를 말리는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타당성 조사 당시 878만 명을 예상한 무안공항의 이용객은 실제 10만 명 남짓에 불과했다.

2007년 목포공항과 광주공항 국제선을 대체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개항했지만 오가는 항공기가 많지 않다. 정기 국제 노선도 없어 ‘무늬만 국제공항’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호남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의 실패를 언급할 때 늘 사례로 꼽힌다.

KTX나 고속도로 개통 등 다른 교통수단의 발달로 상황이 악화하는 경우도 있다. 2017년 118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도 119억원의 적자를 낸 양양공항이 그 사례다. ‘영동권 허브공항’을 외치며 2002년 3500억원을 들여 개항했지만 침체의 늪에 빠졌다. 2009년 서울-양양 고속도로까지 개통되며 공항 활용도가 더 줄었다.

대구공항 역시 2004년 KTX 개통 직후 적자가 1억2000만원에서 2005년 16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2012년부터 대구시와 대구공항 관계자들이 저비용 항공사들을 찾아다니며 유치에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겨우 2년 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이같은 지방공항의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으로는 저비용항공사의 ‘지방거점공항’ 전략이 꼽힌다. 기존 저비용항공사들이 특정 지자체와 손잡고 해당 공항을 거점으로 삼거나 지자체가 신생 저비용항공사 설립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강원도는 양양공항을 모기지로 저비용항공사 ‘플라이강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청주도 청주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에어로K’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방공항 문제를 지적했던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공항이 심각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만큼, 정부차원의 실효성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방공항 역시 공항 활성화를 위해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공항 입지 선정만 혈안된 국회…‘발언’은 많은데 법 ‘발의’는 ‘0’

20대 국회는 신공항 건설 결정의 정당성이나 인허가 제도의 공정성을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 대신 국회 회의록을 빼곡히 채운 건 ‘김해, 무안, 새만금, 대구, 울릉도…’ 등 신공항 유치의 욕망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지역명 뿐이었다.

6일 국회 의원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 발의된 ‘공항시설법 개정안’은 정부안을 포함, 모두 5건이다. 모두 본회의를 통과했다. 논란의 여지가 없어서다. 개정안 모두 공항의 쾌적한 운영에 방점이 찍혔다. 공항 불법주차 대행 단속 강화, 공항시설 호객행위 단속 등이다.

20대 국회가 막 출범했던 2016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이던 영남권 신공항 건설 추진이 불발되면서 신공항 관련 논의는 국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전국의 15개의 국제·국내 공항의 현황이나 개선방안 등의 점검도 일시 정지했다.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신공항 유치 공약을 내걸며 다시 ‘지역 공항 ’에 불이 붙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후보 모두 부산 가덕도 공항과 대구 신공항을 약속했다. 새누리당은 제주권 2공항 건설과 영남권 5개 지자체 중심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요구했다. 같은 시기 전북은 ‘새만금 국제공항’ 신설을 주장했다. 충남은 공군비행장인 서산 해미 비행장에 민항기가 다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정기국회로 이어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배석시킨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은 지난해 11월 제각기 지역 현안 묻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북을 지역구로 둔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과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새만금공항을, 부산의 박재호 민주당 의원과 이헌승 의원은 인근의 김해 신공항을, 전남 완도의 윤영일 평화당 의원은 흑산도 공항을 장관에게 제각각 주문했다. 또 충남 제천이 지역구인 이후삼 의원은 “충남만 공항이 없다”며 서산공항 추진을 다그치기도 했다.

박덕흠 한국당 간사가 “계속 우리가 공항을 만들어야 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선을 신중론을 폈는데 박 의원의 지역구 충북 보은 인근엔 청주공항이 있다.

문제는 ‘발언’만 있었을 뿐 ‘발의’는 없었다는 데 있다. 허가권을 가진 국토부 장관에게 지역 현안을 전달하는 게 전부다. 그나마 지난해 100개 가까이 쏟아진 공항 관련법인 ‘항공사업법 개정안’이나 ‘항공안전법 개정안’은 소위 ‘한진가 갑질근절법’일 뿐이다.

의원들은 지역별 공항 유치 건립을 위한 법리적 검토도, 무분별한 공항 건립의 속도 조절 역할을 할 합리적 규제도 내놓지 못했던 셈이다. 입지 선정을 위한 ‘지역감정’ 부추기기 보다 효율적인 규제 개혁과 합리적인 필수 규제의 접점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포함된 인·허가 관련 법은 건축법, 국토계획법, 농지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산림관리법, 수도법, 항로표지법, 하천법 등 굵직한 것만 30개에 달한다.

지방공항 살리는 LCC…면허 ‘완화’ 법안 나왔다

‘저비용항공사’(LCC) 확충은 지방 공항 활성화의 핵심 조건이다. 지방 공항을 만들어도 정작 취항하는 항공사가 없으면 공항이 무용지물이 된다. 지방 공항을 모기지로 삼는 LCC가 늘어나면 지방 공항 이용객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기대할 수 있다.

6일 국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LCC는 △제주항공(인천·김포·제주 공항) △진에어(인천·김포) △티웨이항공(대구) △이스타항공(청주) △에어부산(김해) △에어서울(인천) 등 총 6곳에 불과하다. 강원도와 전라도에 위치한 지방 공항은 LCC 모기지가 없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항공사업 면허 기준을 완화해 신규 LCC사업자의 진출을 늘리기 위한 ‘항공사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내와 국제 항공운송사업의 면허 기준이 완화된다. 또 항공사업 면허의 발급과 취소에 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한 기구로 항공면허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위원명단과 회의록을 공개해 투명한 심의 과정이 이뤄지도록 한 게 골자다. 또 지방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국제항공운송사업자에 대해선 국제항공 운수권을 우선 배분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정 대표는 “현행 항공운송사업의 면허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며 “이는 항공운송시장의 독과점 체제를 강화하고 신규 사업자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면허 기준에서 ‘사업자 간 과당경쟁의 우려가 없을 것’이란 조항을 삭제하는 ‘항공운송사업법 개정안’을 지난해 5월 대표발의했다. 변 의원은 해당 조항이 기존 항공운송사업자를 과도하게 보호해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근거로 악용됐다고 봤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LCC 에어로케이와 플라이양양의 면허 발급을 불허하며 ‘국적사간 과당경쟁 우려가 크다’, ‘충분한 수요확보가 불확실하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항공운송업을 ‘독과점 산업’으로 지정하고 지나치게 높은 진입장벽이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하락시키고 독과점 체제를 강화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변 의원은 “‘과당경쟁의 우려’라는 조항은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크다”며 “해당 조항을 없애 건전한 경쟁을 통한 항공 운송시장의 발전에 기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지난해 10월 항공운송사업 신규면허 심사를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새로운 지방 거점 LCC의 탄생에 청신호가 켜졌다. 종합 심사 과정 중 ‘이용자 편의’ 항목은 ‘수요 확보에 따른 영향권 내의 경제적 효과와 지방공항 활성화 기여수준’을 검토한다. 심사를 신청한 에어로케이(청주)와 플라이강원(양양), 에어프레미아(인천), 에어필립(무안) 등 4개 항공사 모두 지방 공항을 모기지로 택했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3월 최종 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 중 1~2곳이 신규 면허를 취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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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김하늬 이재원 한지연 기자 peac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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