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남자가 타고 있다"..남혐 부추기는 '에어드롭 테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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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모(29)씨는 최근 지하철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누군가 애플 ‘에어드롭(AirDrop)’ 기능을 이용해 자신의 아이폰으로 ‘여러분 여기 집중해 주세요. 이 열차에는 임신한 남자가 타고 있습니다. 임산부석을 보세요’라고 적힌 이미지를 보낸 것.
이씨는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이미지를 받은 게 아닌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다 말고 임산부석 쪽을 흘깃거리고 쳐다보더라”며 “임산부석에 남자가 앉은 게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테러’를 하니 같은 남자로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애플의 무선 통신 파일 공유 규격인 ‘에어드롭’을 이용해 임산부석에 앉은 남성을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소위 ‘에어드롭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가해자가 공공장소에서 애플 기기를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임산부석에 앉은 남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이미지를 전송하는 것이다. 주변의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애플 기기끼리 사진, 비디오, 문서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에어드롭’ 기능을 활용해서다.
이런 일을 당한 건 이씨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비슷한 사례가 많이 올라와 있다. 한 누리꾼은 ‘여러분 저기 임산부석에 앉은 남성 보이세요? 정말 미개하지 않습니까. 동의하시면 기지개를 펴주세요’라고 적힌 이미지가 왔다고도 밝혔다.
이에 대한 누리꾼 반응은 엇갈린다. 불쾌함을 드러낸 의견도 있지만, ‘에어드롭 테러’를 선동하는 글도 보였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SNS에 ‘공격용 이미지’를 공유하며 “지하철 탔을 때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남자 발견하고 열차 번호로 신고해도 잘 들리지도 않는 방송밖에 안 나온다”며 “우리 모두 ‘에어드롭’으로 이 ‘짤(이미지)’을 보내자. 앉은 놈이 받고 화들짝 놀라 도망갈 수도 있다”고 적었다.
이를 본 한 누리꾼은 “모두 공격 대상이 ‘남성’이다. 이런 걸 보내는 사람들이 임산부석에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 앉았을 경우에 보낼 이미지도 갖고 다니는지 의문”이라며 “이렇게 남자만을 특정하는 건 자칫 남녀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에어드롭’ 기능이 악용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선 ‘에어드롭’으로 음란물을 보내는 ‘사이버 플래셔(cyber-flasher)’가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지하철,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남성의 성기나 성관계 사진 등을 보내는 것이다.
가해자는 ‘에어드롭’으로 이미지를 보낼 때 상대방 기기에서 이미지의 섬네일 알림이 뜨는 점을 노린다. 피해자들은 해당 사진을 받겠다고 수락하지 않아도 이 과정에서 축소된 형태의 음란물을 보아야 한다. 상대방이 수락하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차례 외설적인 이미지를 보내는 가해자도 있다.

‘사이버 플래셔’ 문제가 커지자 미국 뉴욕 시의회는 음란 사진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보내는 행위에 대해 벌금 1000달러 또는 1년 이하 징역을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에어드롭 테러’는 처벌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가해자를 특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에어드롭’을 통한 데이터 공유는 이동통신사의 망을 이용하지 않고 블루투스와 와이파이 다이렉트(Wi-Fi Direct)를 이용한다. 누가 이미지를 보냈는지 알아내려면 애플에 정보를 요청해야 한다. 이씨는 “수많은 사람이 타 있는 지하철에서 누가 이미지를 전송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황당한 경험을 한 이후 ‘에어드롭’ 기능을 아예 끄고 다닌다”고 전했다.
◆전문가 “공론화하려는 경고... 과시감도”
사용자가 아이폰에서 별다른 설정을 바꾸지 않았다면 기본적으로 ‘에어드롭’ 기능이 켜져 있다. 수신 범위는 ‘아이폰 설정-일반-AirDrop’에서 바꿀 수 있다. 기본은 ‘모든 사람’이다. 이를 ‘연락처만’, ‘수신 끔’으로 설정하는 편이 안전하다.
공정식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지난달 3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가해자·피해자와 범죄 행위가 특정된다면 ‘에어드롭 테러’도 처벌 가능하다고 본다”며 “남성을 비난하는 이미지를 불특정 다수에게 보낸 가해자는 누군가의 부당한 행위를 공론화하려고 ‘경고’를 보낸 것 같다. 그러한 심리의 기저에는 ‘자신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알리고 싶은 과시감도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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