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기타신공] 인피니트(INFINITE) 기타·보스 아티스트 유승범

조성진 기자 2019. 2. 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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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범이 마요네즈(Mayones) 레지우스6 기타를 BOSS GT-1000에 연결해 시연하는 모습 [사진제공=코스모스악기]
사진제공=코스모스악기 (C)Grimmza Lee
유승범의 사용장비 일부
인피니트 월드투어 중 김성규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유승범 [사진출처= mori610블로그]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유승범(36)은 그룹 인피니트(INFINITE)의 투어 기타리스트로 잘 알려진 뮤지션이다. 그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25개국 44개 도시 이상을 도는 120여 차례의 인피니트 월드투어를 함께 하며 기타리스트로서 주목받았다.

월드투어의 경우, 아이돌 그룹 소속사 입장에선 비용이 많이 들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에 백밴드보다 백댄서를 대동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반면 당시 인피니트는 월드투어 출정에 앞서 함께할 고정 밴드를 갖추고 투어를 감행해 화제를 모았다. 인피니트 소속사가 무엇보다 음악적인 부분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유승범은 인피니트 이외에도 50여회의 신화 아시아투어를 비롯해, 러블리즈, SG워너비, Supernova(초신성), 블락비, 걸스데이, 거미, 마마무, 원더걸스, 비, 포맨, 문희준, 존박, 정동하, 정용화, 김우빈, MC몽, 소년24, 달샤벳, 프로듀스101 및 다수 방송 라이브 세션 등등 다양한 활동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또한 그는 지난 1월부터 일렉트릭 기타 이펙트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 보스(BOSS) 한국 아티스트로 선정돼 김세황과 함께 보스의 가치를 더욱 크게 알릴 예정이다.

세션 기타리스트로서 많은 음악인들과 함께 한 유승범이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로서 그의 본령은 오랜 시간 다져진 연주력을 통한 ‘테크니컬 기타 인스트루멘틀’이다.

음악적으로 해보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음에도 유승범은 빡빡한 일정 때문에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여야 했다.

“3월~8월까지 신화, 이어서 9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인피니트 투어, 이런 식으로 1년 내내 쉴 새 없는 스케줄이다 보니 해보고 싶은 세션 제의가 와도 그에 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유승범은 오는 2월부터 있을 4일간의 러블리즈 단독 콘서트에서도 기타 세션을 맡을 예정이다.

기타리스트 유승범은 1982년 서울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대기업 생활을 한 후 독립해 건축회사를 창업했는데, 그 분야에서 꽤 잘 나가던 건축 전문가였다. 어머니는 클래식 기타 애호가였다.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8년간 학원 레슨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엔 놓치지 않고 반장으로 학급을 이끌기도 할 만큼 리더십을 갖춘 모범생이었다.

그가 공부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농구 때문이다. 워낙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NBA에 심취하며 온통 신경을 그곳에만 쓸 정도였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다니던 집(압구정) 근처의 클래식 기타학원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기타를 만지게 됐다. 당시 클래식 기타학원 선생은, 한번 들은 음악인데도 즉시 그걸 연주해내는 유승범을 보고 놀랐다. 소위 말하는 절대음감의 소유자가 유승범이었던 것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은 승범에게 “서울대 음대는 문제없을 것 같으니 제대로 배워보라”고 했지만 승범은 운동 특히 농구에 빠져 있던 상태라 그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그는 고교에 입학해 농구부에 들어가 선수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중학교 때의 키가 이후로 성장하지 않아 농구하는데 한계를 느끼게 되고 결국 농구를 포기하게 된다.

유승범이 고교에 입학할 즈음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집안 형편이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급식을 받는 학생 중의 하나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음악을 워낙 좋아했던 유승범은 이 급식권으로 밥을 먹는 대신 급우에게 장당 2500원에 파는 식으로 약간의 돈을 조달해 CD를 구매했다. 밥은 굶어도 음악은 들어야겠다는 열정을 대표하는 에피소드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서 이상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유승범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급우가 듣던 음악으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을 처음 듣고 승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렉트릭 기타로 거침없이 감정을 표출해내는 그 자유로운 방식과 소리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이 곡의 감동을 안고 승범은 아르바이트(신문배달)를 하며 모아놓은 약간의 돈을 들고 곧바로 낙원상가로 뛰어갔다. 생애 첫 일렉트릭 기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얼마동안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지만 한계를 느끼던 중 어머니가 ‘기타특강’ 전단지 한 장을 갖고 와서 승범에게 건넸다. 당시 그룹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하는 특강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집 근처인 압구정 ‘타임투락’ 클럽에 우연히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김도균이 연주하는 걸 보고 그에게 약 1년 반 정도 기타레슨을 받았다. 논현동 소재의 백두산스튜디오에서.

유승범은 당시 X-Japan을 좋아해 이 밴드의 모든 악보를 입수해 카피했다. 이어서 연주력이 늘며 미스터 빅(Mr. Big)의 전곡들을 카피했고 스티브 바이, 존 페트루치, 브루스 사라세노, 조 새트리아니 등등 많은 명 기타리스트들을 카피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2001년 서울예대 실용음악과(기타) 입학해 한상원, 박지혁 교수를 사사했다. 이듬해엔 서울예대 선후배들로 구성된 헤비메틀 밴드 라디오스타(Radio Star)를 결성해 인디 씬에서 활동한다.

이어서 2003년부터 본격적인 스튜디오 세션을 시작하게 된다. 2005년엔 밴드 QPIT(윤여규밴드)에 가입, 중국활동과 3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귀국해 세션활동과 밴드활동을 병행해 갔다. 2011년엔 배우 김재욱과 밴드 월러스(Walrus)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방송과 일본 콘서트 등을 개최했다.

헤비메틀 밴드 활동을 할 때엔 머리가 길었던 그가 월러스 밴드를 하며 김재욱의 권유로 머리를 깎고 단정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지난 1월엔 ‘USB’라는 이름으로 강렬한 헤비메틀에서 발라드까지 총 6곡을 담은 자신의 첫 솔로앨범 ‘COLOR of LIFE’(스콘 엔터테인먼트)를 발표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전형적인 인스트루메틀 속주 기타가 불을 뿜는 작품이다.

“이번 앨범에서 베스트로 꼽고 싶은 곡이 있다면 ‘Black Ice’와 ‘Life’입니다. 전자는 흔히들 말하는 유승범 스타일, 다시 말해 일반적인 내 색깔의 연주를 잘 보여주는 트랙이고, 후자는 내 감성적인 면을 리얼하게 담은 작품이죠.”

“저는 악상을 주로 시각적인 곳을 통해 얻어요. 유럽에 갔을 때 그곳의 거대한 자연미에 감동해 그걸 음악화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제가 보고 들은 모든 게 기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남미의 해변을 걷다가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코파카바나’) 봄이란 계절을 표현(‘프리마베라’) 한다거나 등등. 아마도 다른 뮤지션들도 시각적인 경험을 통해 악상을 떠올릴 때가 많을 겁니다.”

유승범은 지금까지 많은 기타를 섭렵해 왔다. 한창 헤비메틀에 심취할 때인 2002년 전후 ESP 호라이즌을 비롯한 여러 모델들을 연주했었다. 당시 ESP를 워낙 좋아해 일본 본사까지 찾아갔을 정도니까.

이외에 아이바니즈, PRS(폴 리드 스미스) 등등 수없이 많은 모델들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2008년경 가요 세션을 하게 되면서 기타를 바꾸게 됐다.

“ESP의 경우 소리가 쭉쭉 뻗고 스트레이트한 면은 있지만 따뜻함이 없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찾은 게 서(Suhr) 기타입니다. 처음엔 가요 세션 때문에 연주하게 된 것이지만 사용하면서 나한테 잘 맞는 악기라고 여겨졌죠. 고가의 기타임에도 10여 년 동안 서 기타를 20여대 이상 구매했던 것 같아요. 오죽했으면 이 기타 관계자가 내게 ‘한국에서 서 기타를 가장 많이 구매한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혹자는 유승범이 그만큼 고액의 소득자라서 비싼 기타를 구매하는데 애로사항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유승범은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 꾸준히 전문성과 그 깊이를 지속하려면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며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수입의 대부분을 악기와 기기에 대해 투자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기타/장비에 대한 쉼없는 탐구에 몰두하던 유승범이 2018년 가을쯤 마요네즈(Mayones) 기타를 처음 접하게 된다. 그는 마요네즈 기타를 연주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마감(피니시)이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연주할 때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너무 좋았던 것이다.

“마요네즈는 기타의 부품 하나하나가 확실한 목적이 있을 만큼 그 위치에 그러한 형태로 존재하게끔 설계됐는데 이 모든 것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내가 원하는 쪽으로 세팅도 잘 되었구요. 마요네즈라는 정말 좋은 악기를 알게 돼 이제 이 기타를 메인으로 적극 활용할 겁니다.”

그가 메인 이펙터로 사용하는 보스 GT-1000은 ‘2018 남쇼’에서 처음 공개된 기타 멀티 이펙터로 세계 최초의 32비트 음질을 구현해 화제를 모은 기기다.

“보스 GT-1000은 모듈레이션과 공간계 이펙터로는 최상의 퀄리티로 동급 가격대에서 이만큼 탁월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기를 찾기가 힘들죠. 동급의 라인6힐릭스의 경우 여러 개를 연결할 때 CPU 용량이 딸리는 감이 있지만 GT-1000은 용량 또한 넉넉합니다. 톤(음색) 메이킹시에도 소화할 수 있는 폭이 워낙 커서 다채로운 음색 연출이 가능하구요. 동급 계열에선 현존하는 최고의 이펙터죠.”

유승범은 어떤 존재로 기억되길 바랄까.

“음악적으로 퇴보한 상태에서 소위 ‘추억팔이’식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선배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음악계에서 멋있는 형이자 선배이고 싶어요.”

존경하거나 가장 많이 영향받은 기타리스트를 꼽는다면.

“너무 많아서 특정인 하나 둘을 꼽기엔 너무 힘듭니다만 그럼에도 굳이 한 사람을 든다면 스티브 바이(Steve Vai)입니다. 그는 현실과 이상을 잘 구현한 대표적인 기타리스트죠. 처음 등장할 땐 화제가 되던 명 연주자들이 후반엔 빛을 망?못하며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지만 스티브 바이는 예외였어요. 상업성과 음악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은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그래서 제겐 스티브 바이가 일종의 롤모델과도 같습니다.”

유승범은 꼭 같이 연주해보고 싶은 음악인들로 적재(정재원), 임헌일을 꼽았다. 그는 이들과 함께 일종의 ‘한국판 G3’ 콘셉트 같은 형태로 연주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음주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마시게 되면 소주 5~6병 정도는 무난하게 비운다. 그러고도 같이 마셨던 주변 사람들을 다 챙길 정도다.

“거짓말하지 말자, 남에게 피해주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올해 꼭 이루고 싶은 희망사항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내 시그니처 기타가 나왔으면 좋겠고 둘째, 그동안 계속해오던 세션 활동과는 별개로 밴드 활동도 계속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밴드가 월러스였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유승범에게 기타란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걸 표현해주는 통로.”

사용장비 메인기타 - 마요네즈, 앰프 - 마샬, 이펙트 - 보스(BOSS) GT-1000, 그 외 4개의 페달보드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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