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7살의 양성애자 수라고 해" 퀴어 유튜버 '수낫수'의 읊조림이 세상을 움직였다 [인터뷰]

김지혜 기자 2019. 1. 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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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성소수자 편견 바로잡기 위해 퀴어 콘텐츠 선보이는 유튜버 수낫수를 만났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결론부터 말할게. 나는 27살의 바이섹슈얼(양성애자) 여성 수라고 해. 나 이거 방금 커밍아웃 한 거다?”

2017년 7월17일 유튜버 수낫수는 평소처럼 7분 남짓의 영상을 게시했다. ‘커밍아웃(COMING OUT)’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읊조리듯 말하는 수낫수의 음성이 담겨있다. 이 개인적이고 내밀한 고백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힘으로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녹음했던 그의 커밍아웃은 1년6개월여 동안 총 3만7301회(28일 기준) 재생됐다.

영상을 본 구독자들은 “용기 있는 영상 감사하다” “영상보니까 커밍아웃하고 싶어진다”며 그의 발언에 지지를 표했다. 이들 구독자들은 곧 서로를 ‘도란이’라 부르며 퀴어(성소수자)·앨라이(성소수자 인권 지지자)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유튜브라는 확성기가 한 사람의 작은 읊조림을 유의미한 사회 운동으로 만든 셈이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퀴어 콘텐츠를 제작하며 성소수자의 인권과 존재에 대해 알리고 있는 유튜버 수낫수를 만났다. 그의 채널은 커밍아웃 영상 외에도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양성애자 등 퀴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져있다. 퀴어 애인과의 데이트를 담은 일상 영상부터 퀴어의 삶을 소재로 한 단편 영화까지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재까지 3만7000여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고 전체 동영상 누적 조회수는 3700만회에 달한다.

수낫수는 유튜브를 통해 커밍아웃을 했다. 수낫수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가 처음부터 퀴어 콘텐츠로 유튜브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15년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는 단순히 취미 생활의 연장선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놀면서 찍은 ‘챌린지’ 영상을 올리는 게 다였어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이 퀴어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퀴어가 어떤 존재인지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잘못된 편견을 걷어줘야겠다 싶어서 ‘무성애자 101’와 같이 퀴어에 대한 정보전달성 영상들과, 퀴어 당사자들이 서로 묻고 답하는 영상인 ‘큐큐앤에이(QQ&A)’ 등을 제작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제 영상을 보는 퀴어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까지 콘텐츠의 영역이 확대됐어요.”

그가 퀴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 배경에는 자신들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싶어했던 퀴어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 그는 “양성애자뿐만 아니라 무성애자나 다성애자 등 최대한 다양한 퀴어들의 삶을 알리기 위해 직접 당사자들을 섭외했다”면서 “내 성 정체성을 밝히기 전이라 신뢰를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많은 퀴어 당사자들이 내 채널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싶다고 전해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줄 창구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낫수는 퀴어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재미를 줄 수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채널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 ‘기억에 남는 커밍아웃 리액션’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이 영상의 제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에 퀴어들에게 설문조사를 받아 ‘극단적인 커밍아웃 리액션’ 영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커밍아웃을 했을 때, 화를 내거나 현실을 부정했던 주변인들의 반응을 모아 소개했죠. 그런데 함께 작업했던 친구가 ‘그럼 어떻게 반응해야 하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만들게 된 영상입니다. 많은 퀴어 구독자들이 공감을 표한 것은 물론이고, 퀴어가 아닌 구독자들도 ‘커밍아웃한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는 등 좋은 반응을 보였어요.” 그의 영상이 퀴어뿐만 아니라 퀴어가 아닌 이들의 삶까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성소수자 편견 바로잡기 위해 퀴어 콘텐츠 선보이는 유튜버 수낫수를 만났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처럼 유튜브는 수낫수와 같이 홀로 고립돼 있던 퀴어들이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펼치고 커뮤니티를 이루는 장을 제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표현이 별다른 제재 없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유튜브에서는 성소수자나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담긴 영상물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수낫수도 유튜브에 대해 “양면성이 뚜렷하다”면서 “어떤 플랫폼보다 소수자로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인 동시에 끔찍한 혐오의 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퀴어포비아(성소수자 혐오자)’들로부터 심각한 악성 댓글 피해를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쏟아지는 혐오 표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그는 “당장 그들의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다. 열심히 ‘차단’ 버튼을 누르는 수밖에”라며 쓰게 웃었다. 그러면서 “다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조롱거리 삼지 않는 재미를 계속 추구하려고 한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그렇지만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다 보면 세상이 조금씩은 바뀌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수낫수는 앞으로도 다양한 포맷으로 퀴어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를 만들 예정이다. 그는 현재 여성과 퀴어의 일상 생활에 특화된 생활용품 브랜드와 관련 잡지를 만들고 있으며, 여성 퀴어 웹드라마 제작을 목표로 배우를 모집 중이다. FTM(Female to Male·여성에서 남성이 된) 트랜스젠더 등 퀴어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도 적극적으로 다룰 것이다. 그는 “퀴어를 알리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다. 미적으로 더 아름답고 서사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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