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효부로 거듭나는 결혼 이주여성? 미디어 편견을 뒤집다

이혜미 2019. 1. 24.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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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사회서 공감사회로] <5> 화해는 이해로부터

국제결혼 권순홍ㆍ니콜라 권씨, 유튜브에 평범한 일상 올려 화제

“유명 프로그램 섭외 요청왔지만 비극적으로만 연출하려 해 거절”

실제 다문화 가족이 직접 만드는 ‘틈새 미디어’의 목소리 거세져

권순홍(37)씨 부부는 2년 전 태어난 아들(권율)이 앞으로 살아갈 한국 사회를 위해서라도 유튜브 활동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저희 영상을 보고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바뀌었다’는 댓글이 달리곤 해요. 한 명의 생각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이 일을) 그만둘 수 있겠어요.” 홍인기 기자

“연애 시절, 아내가 ‘너는 나의 작은 호박이야’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못생겼다’는 의미로 이해해 당황했지만, 곧 호주에서는 호박이 귀여운 애칭으로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됐죠. 사소한 부분도 다른 점이 많지만, 오히려 알아가기 위해 서로 나눌 대화 소재가 무궁무진해서 좋아요.” (남편 권순홍)

니콜라 권(36)씨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온 권순홍(37)씨와 2012년 결혼했다. 그와의 결혼 생활과 일상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를 소소하게 담아낸 웹툰을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했고, 2013년에는 ‘마이 코리안 허즈번드(나의 한국인 남편)’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국제결혼 커플이 인식 차를 극복하고 알콩달콩 사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구독자 수만도 9만5,000여명. 각각 영상은 1만에서 수백만회 재생에 이를 만큼 영향력이 크다. 부부는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운영 이사로서, 그리고 한국에 있는 외국인 유튜버들의 커뮤니티 리더로서, 다문화와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활동에 힘쓰고 있다.

하얀 피부를 가진 호주인이라고 해서 니콜라가 인종 차별과 혐오를 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6년 어느 명절을 앞두고 권씨 고향인 경남 산청군에서는 ‘달맞이 축제’가 한창이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펼쳐진 음식을 즐기던 권씨 부부의 흥은 일순간 깨졌다. 행사 진행을 보던 한 중년남성이 니콜라를 보고는 “한국 전통문화를 ‘러시아 사람’과 함께 즐기게 돼 기쁘다”고 발언했다. 비슷한 일은 외국인의 거주 비율이 높은 서울에서도 비일비재하다. 택시를 타더라도 권씨는 “어쩌다가 이렇게 예쁜 러시아 아내를 얻었냐”는 질문을 듣곤 한다. 니콜라는 “’어디 출신이냐’고 한마디만 물으면 되는데, 타인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 없이 ‘나’를 쉽게 규정해 유쾌하지 않았다”라며 “이해는 그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타다 보니, 다문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러브콜도 수차례 받았다. 한 프로그램은 열다섯 번이나 섭외를 요청했지만, 다문화와 국제결혼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부부는 거절했다.

“한 유명 프로그램에서 섭외 요청이 왔을 때 전화 인터뷰를 먼저 했는데, 방송국이 자꾸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하더라고요. 한국에 적응 못 한 니콜라가 회사에서 말을 못 알아들어 실수를 연발해 야단을 맞고, 결국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넣길 원했죠. 다문화 가정도 평범한 한국 가정과 다를 바 없이 행복하게 사는데, 굳이 비극적으로 연출하려 해 재차 거절했어요.”

권씨 부부는 국제커플의 ‘평범한 일상’에 주목한다. 매운 닭발과 곱창 등 편의점 음식 먹방, 2016년 촛불집회 참여를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나간 에피소드는 특별한 일들이 아닌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최근에는 아들 율(2)군을 얻기까지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출산까지의 과정을 편집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권씨는 “피부색이 달라도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라며 “앞으로도 문화적 차이가 있어도 극복하고 사는 국제커플도 많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니콜라는 한국 사회가 보여온 타자를 향한 부적절한 시선의 개선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문화를 ‘무엇이 낫다’는 우열의 잣대로 측정하거나, ‘맞고 틀리다’는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 고유의 문화도 대단하지만, 전 여러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강해지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너무나 당연해서 ‘다문화’라는 단어 자체를 안 쓰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타자’ 아닌 ‘당사자’로

어눌한 한국말로 남편과 아이 양육에 대해 더듬더듬 실랑이를 벌이는, 그러다 북받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마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어린 부인. 갑자기 한국의 농촌 마을에 떨어져 문화ㆍ세대 차이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극심한 고부 갈등을 겪지만, 시어머니로부터 한국의 생활방식과 살림 비법을 배우고 진정한 ‘효부(孝婦)’로 거듭나는 결혼 이주 여성. TV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다문화 재현’의 현주소다.

‘다문화 사회’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 사회의 인구 구성은 복잡 다양해졌다. 2017년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혼인은 전체 혼인 중 8.3%(2만1,917건)를 차지하고, 신생아 20명 중 1명이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을 정도. 정작 사회를 비추는 미디어의 고민은 깊지 않다. ‘가난한 나라’ 출신 이주 여성을 경제 사정 때문에 혼인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행태는 TV가 다문화를 다루는 익숙한 수사다. 노예 같은 삶을 버티며 ‘사장님 나빠요’를 소리치는 이주 노동자,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다문화 2세 자녀도 같은 맥락이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은 “미디어가 ‘동화주의적’ 시각을 갖고 다문화를 다루는 경향이 뚜렷해 시청자들에게 되레 고정관념을 심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를 ‘대상화’, ‘타자화’하지 않는 틈새 미디어의 반격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편견을 재생산하는 게 아닌,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통해 당사자가 주체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권씨 부부뿐 아니라 이주자들이 출연하고 다문화 2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늘어나고 있다. 12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는 웹 드라마 ‘조선에서 왓츠롱’에는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 출신 주인공이 등장한다.

다문화 구성원이 더는 ‘타자’가 아닌 우리 사회의 주체로 등장할 때, 편견을 만들었던 벽은 무너지고 공존을 위한 이해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차별과 고충, 불편한 경험 등을 얘기할 수 있다면 선입견을 극복하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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