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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학생·간호사·수녀복..대형마트 '성인용 코스튬'

고희진 기자
입력 2019. 1. 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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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삐에로쑈핑 코엑스점에서 팔리고 있는 각종 직업 코스튬. 매장 내 ‘19금 코너’가 아닌 일반 매대에서 찾을 수 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일본 ‘돈키호테’ 벤치마킹 삐에로쑈핑, 이마트 입점 판매 위법 아니지만 ‘시끌’ “성적 이미지로 소비 불쾌” “개인 성적 취향 규제 못해”

최근 잡화점 ‘삐에로쑈핑’의 이마트 경기 의왕점에 소비자들의 항의가 잇달았다. 교복, 간호사복, 경찰복, 수녀복 등을 모티브로 해 성적 이미지를 부각한 옷이 ‘청소년 이용 불가’ 표시가 붙은 코너에서 판매됐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성인 코스튬을 판다’는 항의가 쇄도했다. 삐에로쑈핑 측은 며칠 뒤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삐에로쑈핑 관계자는 “핼러윈과 파티 문화가 대중화하면서 소비자 욕구도 다양해졌다. (이에 부응하려고) 동물 모양 의상, 재미있는 가면 등 갖가지 코스튬을 판매 중”이라면서도 “의왕점의 경우 가족 단위 고객 방문이 많은 점포 특성을 반영해 해당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23일 말했다.

논란 이후 삐에로쑈핑 코엑스점을 찾았다. 의왕점 성인 코스튬과 비슷한 상품이 ‘청소년 이용 불가’ 표시가 붙은 채 판매되고 있었다. 특정 직업 유니폼 차림의 여성 이미지로 포장한 상품 매대는 일반 매장에 놓였다. 신분증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19금 코너’ 바깥 공간이다.

코스튬 판매는 문제일까. 코스튬을 ‘성인용품’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판매도 위법이 아니다. 문제는 성적인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코스튬 중 일부가 학생, 간호사, 승무원, 경찰 등 특정 집단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데 있다.

해당 코스튬 이미지를 접한 이들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행동하는간호사회 소속 최원영 간호사는 “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환자의 노출된 신체를 보살펴야 하는데 이를 선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간호사에게 성적인 판타지를 만들고 소비한다. 왜곡된 직업 이미지를 심어주는 듯해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박정은양(17·가명)도 “교복이나 간호사복 같은 게 항상 성인용품으로 사용되는데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간호사 등 특정 직업의 옷을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하는 일은 흔하다. 남성 대상 성인잡지에서는 여성 모델이 노출 심한 제복을 입고 등장하기 일쑤다. 최근 핼러윈 파티 때도 이런 옷을 입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인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는 이때마다 “속상하다”는 글이 넘쳐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어떤 옷을 입은 여자가 어떤 성적 행위를 할 거라는 이미지가 상품이 되는 상황”이라며 “욕망이 있어서 상품이 되기도 하지만, 상품이 욕망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 같은 코스튬은 문제”라고 말했다.

삐에로쑈핑은 일본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점포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진두지휘해 낸 쇼핑몰로 유명하다. 지난해 6월 서울 코엑스몰에 1호점을 연 뒤 중구 명동, 강남구 논현동 등 여러 곳에 로드숍 형태로 점포를 냈다.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한 점도 논란이 됐다. 성 관련 상품이 많은 일본 물품을 한국에 별 고민 없이 수입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SNS에서 나왔다.

코스튬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중학생 김지원양(13)은 “옷을 보고도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예쁘고 착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소년단체 활동가인 쥬리는 “TV를 보면 아이돌도 비슷한 옷을 입고 나온다. 청소년들이 이런 옷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했다.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씨는 “옷 활용법은 구매하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코스튬은 성인용품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며 “용도를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들도 특정 직업에 대한 성적 이미지 부각은 우려했다. 쥬리는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해당 코스튬이 여성 직업인을 남성들이 소비할 수 있는 성적 대상으로 보는 문화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씨는 “과거 강용석씨의 ‘아나운서 논란’처럼 특정 직업에 대한 성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부각하는 것은 문제”라며 “규제하기보다는 콘텐츠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과 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학자 박이은실씨는 “기본적으론 개인의 성적 판타지에 속하는 걸 규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논쟁점은 교복이라고 했다. 옛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추억의 소품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약자인 10대 여학생을 성적 대상화하는 용품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논쟁거리가 된다는 뜻이다.

박이씨는 “어린 학생들이 겪는 (성폭력) 문제가 체육계에도 터지는 상황에서 이런 용품들을 무작정 판매하는 것은 고려할 여지가 있다”며 “(이런 상품이) 공공연히 판매되려면 한국 사회의 성인식도 동시에 성숙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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