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 감싸주고 싶었는데.. 염정아 향한 사랑이 흔들렸다

김혜영 입력 2019. 1. 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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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JTBC 드라마 < SKY 캐슬 > 한서진의 과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오마이뉴스 김혜영 기자]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의 한 장면.
ⓒ JTBC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의 한 장면.
ⓒ JTBC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 게 확실한 타인에게 매력을 느낄 때 나는 종종 당황스럽다. '그의 외모, 재력, 학력 같은 것들이 뛰어나서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속물스러운 내가 부끄러워진다.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정의롭고, 따뜻하고, 사려 깊고 열정 넘치는 캐릭터들을 좋아하다가도 종종 비호감 요소가 가득한 캐릭터들과 사랑에 빠지곤 한다. JTBC 드라마 < SKY 캐슬>에서 배우 염정아가 연기하는 한서진이 바로 그런 캐릭터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고자 하는 상류층 사람들의 지독한 욕망을 그린 이 드라마 속에서 한서진은 단순히 예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기품 넘치는 외모와 원하는 걸 반드시 가지고 마는 뜨거운 집념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난 그녀에게 금세 반해버렸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개차반 같은 성격의 딸을 그저 옹호하기만 하는 왜곡된 모성,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짓밟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잔혹한 성정 등 비호감 요소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난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염정아의 섬세한 연기가 한서진의 모든 행동을 납득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진 가치관과 교육관에 동의하진 않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고, 자식에게도 반드시 자신이 누리는 것들을 물려주고 말겠다는 집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염정아가 연기하는 한서진은 나에게 "네가 내 위치에 있다면, 나와 다를 것 같아?"라고 질문하는 것 같았다.

지독한 가난 고백한 한서진, 그러나 딸의 반응은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의 한 장면.
ⓒ JTBC
 JTBC 드라마 < SKY캐슬 >의 한 장면.
ⓒ JTBC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한서진의 본명이 곽미향이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자신을 명문가의 딸로 포장하고 살아왔지만 사실 그녀의 본명은 곽미향이며 지독히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다. 출신이 천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멸시와 구박을 당하며 살아왔던 한서진은 3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시댁의 가업을 이어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능력 있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고자 했다. 자신의 딸을 반드시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키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엄만 정말 지긋지긋한 부모 밑에서 컸어. 기집애가 무슨 공부냐고 걸핏하면 책을 찢어 버리는 할머니에, 엄마가 알바한 돈까지 탈탈 털어서 술값으로 탕진하는 할아버지에... 그런데도 엄마는 악착같이 공부해서 장학금 받고 대학 다녔어. 가난하고 무능력하고 무지한 부모 때문에 상처 받는 건 엄마 한 사람으로 족해. 그런 부모를 둔 엄마의 흠이 너희들에게도 흠이 될까봐 그랬어!"

엄마가 자신을 속였음을 알고 분노하는 딸 예서에게 한서진은 절절한 마음을 담아 고백한다. 못난 부모로 인해 고통 받은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니 너 만큼은 엄마가 누리지 못한 것까지 모두 누리며 오직 최고로 키우고 싶었다는 그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예서는 "가난하고 무식하고 무능한데다 파렴치한 술주정뱅이 피가 흐르는 거잖아! 그딴 유전자가 내 몸에 있다는 거잖아"라고 소리 지르며 엄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오로지 경쟁에서만 승리하면 다른 모든 것은 상관없다고 딸을 가르쳐 온 한서진이 맞닥뜨린 참혹한 현실이었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경멸하는 남편과 딸로 인해 눈물 흘리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저지르는 악행마저도 이해하고 감싸주고 싶었다.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어두움도 내겐 묘한 위로를 주었다. 누군가를 죽일 듯이 미워하는 마음, 짓이겨버리고 파멸시키고 싶은 그 마음을 표현하는 한서진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아한 한서진에게서 종종 곽미향이 소환되어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라고 일갈할 때가 특히 그랬다.

단 2회만을 남겨둔 드라마... 한서진의 갈등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의 한 장면.
ⓒ JTBC
 JTBC 드라마 < SKY캐슬 >의 한 장면.
ⓒ JTBC
 
하지만 혜나(김보라)의 죽음 이후 한서진을 향한 내 사랑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편 준상(정준호)의 혼외 자식이었던 혜나가 살해 당하고 용의자로 자신의 고교동창 이수임(이태란)의 아들인 우주(찬희)가 수감되어 있다. 지금 진범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한서진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서의 입시코디인 김주영 선생(김서형)이 범인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여기서 한서진이 만약 진실을 밝힌다면 앞서 김주영 선생이 빼돌린 학교 시험지로 예서가 전 과목을 만점 받았다는 것도 함께 밝혀야 한다. 예서의 성적은 모두 0점 처리가 되고 퇴학을 당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진범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딸의 성적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한서진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악행의 한계를 그녀는 이미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서진의 아름다운 외모, 지독한 끈기, 솔직한 욕망 그 모든 것을 사랑했기에 그녀의 약점도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선을 넘는 순간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할 것을 알기에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하다.

지난 19일 방송된 18회에서는 한서진이 또 다시 김주영 선생님이 빼돌린 시험지를 보며 갈등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부디 최소한의 인간성만은 져버리지 않기를,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이 부디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 SKY 캐슬 > 19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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