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무튼, 주말] '동료죽음 겪었다' '총 겨눈적 있다'.. 경찰관 상담은 문진표부터 다르네

이영빈 기자 2019. 1.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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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트라우마 치료 마음동행센터
본지 기자가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마음동행센터에서 정신건강 진료를 받고 있다. 모니터에 나오는 문제를 풀며 받는 스트레스를 신체에 연결된 측정 기구로 확인한다. 강력사건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은 10명 중 8명꼴로 트라우마를 겪는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찰관 20명이 매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201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관은 114명. 같은 기간 순직한 경찰 82명보다 32명 더 많다. 2017년 11월에는 인천지방경찰청 소속 3명의 경찰관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평소 주변에 우울증을 호소했다.

우울증은 경찰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경찰청은 2014년부터 트라우마 해소를 위한 '마음동행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마음이 아픈 경찰관들은 어떻게 위로받을까. 기자가 직접 진료를 받아봤다.

신체검사 후 심리 상담

"진료받아보러 왔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마음동행센터'에 들어섰다. 센터는 별관 복도 끝에 있다. 사무실 안은 모두 원목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상담실 의자에 앉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마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감지장치 3개를 붙였다. 허리에 호흡 측정 장치를 둘렀다. 엄지손가락을 뺀 4개 손가락엔 찍찍이 테이프가 감겼다. 모두 8개의 전선이 기자의 몸에 연결됐다.

"상담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묻자 상담사는 "평소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고, 해소가 빨리 되는지 측정해요. 이렇게 시작하면 형사님들도 재미있어하세요"라고 했다. 측정 항목은 근육 긴장도, 심박 수, 피부 온도 등이다. 절대적인 수치로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문진표를 토대로 상담한다.

스트레스 회복 속도 측정은 총 3회에 걸쳐 진행된다. 처음은 자극(스트레스) 없는 상태의 신체 상태를 살핀다. 다음은 자극을 줄 때 변화를 측정한다. 마지막으로 신체가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지 확인하면 끝이 난다.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와 회복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측정은 15분간 진행됐다. 첫 5분은 편안히 있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5분은 "간단한 문제 풀이를 하겠다"고 했다. 이내 색깔 맞추기, 네 자릿수 단순 산수 등의 문제가 앞 컴퓨터 모니터에 떴다. 다 맞혀야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마지막 5분은 바다 사진을 보여주며 가만히 놔뒀다.

'스트레스 회복력이 낮음.'

받은 결과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1단계 측정 결과보다 3단계에서 근육 긴장도는 약 2배 증가했고 심장박동 수도 1분당 5회 정도 더 늘었다. 5분 쉬는 시간 동안 오답에 대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없애지 못한 결과였다. 상담사는 "평소 습관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호흡을 길게 하는 등 빨리 해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진표 작성은 일반 정신건강의학과와는 다르다. 경찰관이 트라우마를 겪을 만한 항목이 대부분이다. "타인에게 총격 및 총기를 겨눈 적이 있다" "동료 경찰관의 사망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성폭행당한 어린이, 여자를 목격한 적이 있다"…. 경험 여부와 당시 스트레스를 1에서 10까지 쓰라고 한다.

심리 상담은 문진표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기자는 취재 중 시신을 본 적이 있었다. "시신을 목격한 적이 있다"에 '경험 있음', 스트레스 정도는 '7'을 적었다.

"시신을 보셨을 때가 언제였나요?" "3월쯤이었습니다." "많이 훼손돼 있었나요?" "2주 동안 방치돼 많이 부패해 있었죠. 피부색이 어두웠고 악취가 났습니다." "그러셨군요. 언제 그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가끔 길에서 비슷한 냄새를 맡을 때가 있어요." 답할 말이 없을 때까지 상담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진료는 약 1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상담사는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기자가 시신을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누군가에게 협박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만 물어봤다. 고통에 누군가 귀를 기울여줬기 때문일까. 센터를 나설 때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베테랑 형사 차수현(김혜수)이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치료를 받는 모습./tvN 드라마 시그널

경찰은 정신질환 고위험군 직종

수도권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지난해 중년 남성이 부인을 칼로 십수 차례 찌른 사건을 담당했다. 사건 현장에서 시신을 처리했다. 열 살이 안 된 딸도 현장에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며 피투성이가 된 현장과 시신을 계속 봐야 했다. 사건 직후 현장에 나가기 두려워졌다. 이후 A씨는 길에서 피해자와 비슷한 체구의 여성만 봐도 그 현장이 떠오른다고 한다. "아파트, 길거리 어디를 다녀도 그분이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딸도 떠올라 묘한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경찰공무원은 정신질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참혹한 사건·사고 현장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2012년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살인, 화재, 자살 등 강력사건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은 10명 중 8명꼴로 트라우마를 겪었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안장애,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경찰병원 마음동행센터의 송지연 상담사는 "대부분은 살인, 성폭행 같은 사건 처리 중 생긴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년간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경찰도 늘었다고 한다. B씨는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의 모습이 나온 사진과 함께 '무능한 경찰'이라는 내용을 봤다. 사건 현장에 출동해 있던 모습을 한 시민이 찍어 공유한 것이다. 당시 사건은 잘 처리했지만 "괜히 '견찰'이 아니다" "경찰에게 내는 내 세금 돌려내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B씨는 그 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사건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든 시민을 발견할 때는 식은땀이 얼굴을 뒤덮는다고 한다.

센터 찾는 이들은 전체 경찰 중 2%

마음동행센터를 찾아오는 경찰은 전체 경찰 중 약 2%다. 상담사 인원이 부족하고, 정신치료를 꺼리는 조직 내부의 분위기가 원인이다.

17일 기준 전국 마음동행센터 심리상담사는 총 11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찰관은 11만5000명이다. 한 상담사당 1만명 넘게 돌봐줘야 한다는 뜻이다. 상담사들은 "현장에 계속 투입되는 형사들, 지구대·파출소 경찰들 위주로 상담을 진행하려 해도 몇 년은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정신적으로 위험에 처한 경찰관이 찾아와도 상담을 곧바로 진행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정신 치료를 꺼리는 경찰 분위기도 한몫한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총을 다뤄야 하는 경찰이 그런 곳을 가면 주변에서 욕한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우리 서의 한 사람이 다닌다는 소문이 나서 '정신이 이상하면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수군댔다"고 했다. 인사에 불이익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경찰청에서 지원해주는 만큼 기록이 남아 승진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미국, 호주 등에서는 일찍이 PTSD 관리에 인력과 예산을 투입했다. 미국은 1989년 국립 PTSD센터를 설립해 연구와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약 2만명이 근무하는 LA카운티 경찰청의 한 해 PTSD 예산은 33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올해 11억원이 늘어 30억원에 불과하다. 호주는 의사와 간호사, 상담사 등 250명으로 구성된 경찰관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정신 질환을 예방한다.

우리나라도 충분한 예산이 투입돼 상담사를 늘리고 조직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처음 상담을 거부했던 과장급 경찰이 1~2년 뒤에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송지연 상담사는 "정말 위험해 보이는 경찰관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치안정책연구소 박재풍 연구관은 "경찰의 정신 건강이 안 좋다는 게 우리 사회의 치안이 위협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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