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제주 귀농 4년차, 비정규직보다 불안한 '백수 농민' 신세

2019. 1. 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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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투기 실태 르포르타주: 땅 없는 농민 한상수
땅값 상승에 농지 구하기 어려워 불법 임대 횡행
"주인이 비워달라면 농사 접어야, 생계형 소작농"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 봐요.’

택시 뒷좌석에 앉아 귀농이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제주도의 푸른 밤>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것도 잠시, 라디오에서 ‘제주지역으로의 순이동인구가 급격히 감소…제주지역 인구소멸 위험이 증가세’라는 단신이 흘러나왔다. 제주도는 귀농·귀촌의 성지가 아니었다. 실상은 단꿈을 안고 귀농한 사람들이 내몰리고, 귤농사를 짓던 원주민마저 쫓겨났다. 통계청이 집계한 제주지역 귀농인 수 추이를 보면 2013년 250명에서 2014년 297명, 2015년 391명, 2016년 511명으로 3년 사이 귀농 인구가 두배로 늘어났지만, 2017년에는 369명으로 30%가량 감소했다. 귀농인 수가 감소세로 들어선 것이다. 그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편집자 주)

# 제주 귀농 4년차 한상수씨의 긴 하루

“새벽 3시반에 잠자리서 일어나 밤 11시가 돼서야 잠자리로 돌아가요.”

추운 날씨에 해는 짧지만, 4년차 귀농인 한상수(47)씨의 하루는 길다. 새벽 4시께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집에서 나와 25㎞가량 떨어진 애월읍 엘리시안 골프장으로 새벽 4시반까지 출근한다. 5시부터 잔디 깎는 일을 시작하면, 동틀 무렵인 아침 7시반께 잔디 정리가 끝난다. 이후에는 8시반 퇴근 전까지 잔디 깎는 기계의 칼날을 연마하고 세척한다. 오전 9시께 큰아들 서진(6)을 승용차에 태우고 5㎞ 거리에 있는 고산리 등대어린이집으로 등원시킨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 강민경씨(37)와 함께 1톤 트럭을 타고 집으로부터 5㎞ 밖 귤밭 창고로 향한다. 부부는 귤 상자 포장과 택배 발송 작업을 하다가 점심을 먹은 뒤 밭으로 나가 오후 5시반께 하늘이 어두워지기 직전까지 나무에서 귤을 딴다. 밀려 들어오는 귤 주문에 한씨는 아내를 먼저 집으로 보낸 뒤, 창고에 홀로 남아 밤 10시까지 귤 상자 포장을 한다. 온난한 기후로 사계절 농사가 가능한 제주도에서 한씨는 귤 외에도 콜라비와 미니단호박 등의 밭농사를 하고 있다. 농사만으로도 힘이 부칠 법한데, 꼭두새벽에 골프장 잔디 깎는 일까지 투잡을 뛰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상수씨가 귤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 제주 평당 농지 임대료 2000원 전남은 500원

지난달 16일 저녁 제주시 한경면 한 치킨집에서 한상수씨가 자신의 처지를 놓고 이야기를 꺼냈다. “2015년 귀농했어요, 당시 땅값이 꼭짓점을 향해 막 오르던 시기라 땅을 못 샀어요. 땅을 빌려서라도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운영하는 농지은행도 알아봤지만, 임차 가능한 곳이 없더라고요. 나중에 알았는데, 불특정 농부가 땅 망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는 사람에게만 개인적으로 임대하더라고요. 저도 동네 삼촌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요. 연간 임대료가 평당 2000원씩 600여만원인데, 1년 농사 아무리 잘 지어도 평당 1만원 이상 수익 내기는 어려워요. 결국 이것저것 떼면 남는 게 없어요. 전남지역은 임대료가 (평당) 500원 정도래요. 그게 적정 가격이죠.”

농업진흥지역서 풀려난 제주지역 농지의 용도 변경이 가능해지면서, 부동산 과열이 심각해졌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2008년 제주도 전 농지가 농업진흥지역서 풀려 농지 전용이 가능해지면서, 농지를 개발해 시세 차익을 차지하려는 외지인들의 땅투기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주지역 표준지 공시지가는 2017년 18.66%, 2018년 16.45% 올라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씨를 비롯해 지역 주민들은 실질거래가격의 경우 더 가파르게 상승해 평당 5만원 이하로 형성되어 있던 농지가격이 10년 사이 최소 10배 이상 뛰었다고 전했다. 현재 한씨가 임차한 2800평 농지의 평당 매매 가격은 100만원 상당으로, 매입하려면 28억원이 필요하다.

# 울며 겨자먹기 불법 농지 임대로 ‘서류상 백수 농민’들로 전락

터무니없는 땅값에 놀란 귀농인들은 농지 임차로 눈을 돌려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헌법 121조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소작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제도*를 통해서만 합법적인 농지 임대차가 가능하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극심한 부동산 투기로 땅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은행에 등록되는 농지는 극히 일부다. 8년 자경이 이뤄진 농지에 한정해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중과세인 양도소득세를 피해 일반과세로 매매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과 은행에 등록된 농지는 양도소득세를 피할 수 있지만 최소 임대 기간인 5년 동안 매매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또한, 땅 주인들은 은행을 통해 무작위로 진행되는 농지 임대가 초보 농부에게 이뤄질 경우 지나친 비료 사용 등으로 땅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우려해 임대를 꺼리기도 한다.

헌법 121조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개인 간 농지 임대 거래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땅주인이 불법으로 임대하는 농지에서 농사를 지을 경우, 소작농은 농지원부**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농업경영체*** 등록도 할 수 없다. 결국, ‘밭직불금’과 ‘조건불리직불금’, ‘경영이양직불금’ 등의 정부 보조금이나 각종 면세 혜택은 서류를 가지고 있는 땅주인에게 돌아간다. 이를 놓고 한씨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원부를 받아 농업경영체에 등록할 수 있어야 해요. 저는 농지원부가 없고 농업경영체 등록도 할 수 없으니, 농부라고 할 수 없어요. 서류상 백수죠.”

-농지은행*: 농지의 효율적 이용과 영농규모의 적정화, 농가소득 안정 등을 위해 한국농어촌공사가 시행하는 제도.
-농지원부**: 농지의 소유·임차 관계 등을 기록한 공적 장부.
-농업경영체***: 농업인과 농업법인. 농업경영체가 정부기관에 등록되면 농작물의 생산 정보 등도 함께 전달되는데, 이 정보는 농업인 또는 농업법인 대상 농림사업 등의 참여 자격 부여와 농가 소득안정직불제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 투잡에 1년마다 불안에 떠는 제2, 제3의 한상수들

지난 2018년 12월15일 저녁 제주도 제주시 한림면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다코야키(일본 길거리 음식) 가게 ‘문어빵빵’서 한상수씨와 가까운 귀농인 4명이 밭일을 마치고 모여 맥주잔을 기울였다. 이들은 귀농인끼리 서로 돕자는 목적으로 모여, ‘네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좌우명 아래 <세바농>(세상을 바꾸는 농부들) 모임을 결성했다. 현재 회원은 8명으로 모두 한씨와 같거나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하윤이네 농원’ 이름으로 온라인서 유기농 귤을 파는 이수영(39)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 제주에 와서 땅을 구하지 못했어요. 땅 가격이 비싸도 보통 비싼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생계형 투잡을 뛰게 됐는데, 골프장에서 그린 위 잔디 깎는 일은 상수형보다 제가 먼저 시작했어요. 제가 나중에 형한테 소개해준 일자리에요.”

제주의 모든 한상수들에게 ‘농지’는 일상이자 생존의 문제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문어빵빵’ 사장인 정기성 <세바농> 대표도 같은 처지다. “귀농 초기에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바닷가 마을에 가면 일당 10만원 짜리 일이 있어요. 그물에 걸린 생선을 터는 일인데,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내려 배가 출항을 하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면 생계가 어려워져요. 수중에 돈이 없어 핸드폰 요금을 못내 발신이 정지된 적도 있고요. 고등학생이었다면 친구들한테 ‘비기**** 알’이라도 달라고 해볼 텐데. (웃음) 지금은 가게를 운영할 공간을 얻어 이렇게 다코야키 팔아서 부수입을 만들고 있어요. 감귤, 한라봉, 콜라비, 옥수수 밭농사를 전업으로 하고 싶은데 초보 귀농인이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는 쉽지 않죠.”

<인스타그램>서 ‘와랑농부’ 이름으로 온라인 과채 판매를 하는 김상헌(34)씨도 소작농들이 겪는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말했다. “회사서 비정규직은 2년이라도 고용을 보장받지만, 생계형 소작농은 1년마다 불안에 떨어요. 개인적으로 농지 임대한 땅주인이 밭을 비워달라고 하면 그간 지었던 농사 미련 없이 접어야죠. 임차인을 공식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서류가 없어 쫓겨나도 항의할 수 없어요.”

# “제주 출신 삼촌들도 다 소작농”

이씨가 덧붙였다. “몰랐는데, 여기 제주서 태어나 자란 삼촌들도 다 소작농이야. 자기 땅이 얼마 안 돼. 2만평 중에 2000평 정도? 깜짝 놀랐다니까.”

이들은 연이어 공공기관서 시행하는 농업 관련 교육 내용을 놓고 귀농인의 현실을 모른다며 입을 모아 비판했다. 그 교육 내용의 문제점을 놓고 김씨가 나서서 설명했다. “제가 농림축산식품부 사업인 청년창업농에 선발돼 교육을 받고 있는데요 ‘2% 저리로 대출을 받아 땅을 사라’와 ‘법인으로 스마트팜***** 사업을 해라. 최대 70억까지 2% 저리로 대출해준다’ 등의 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요. 2% 저리로 70억을 대출하면 이자만 1년에 1억4000만원을 갚아야 해요. 농협의 소작농이 되는 거죠. 정부가 귀농인들 빚쟁이 만드는 거예요. 70억은 언제 갚나. 하하하.”

온난한 기후로 제주도에서는 동계채소 수확이 가능하다. 오른쪽은 동계 채소인 콜라비 밭. 위쪽은 귤 밭. ‘원:피스’ 화면 갈무리.

지난 2018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제주의 농가부채는 2011년 3104만2000원에서 2017년 6523만4000원으로 급증해 연평균 13.2%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전국의 농가부채는 2011년 2603만5000원에서 2017년 2637만5000원으로 연평균증가율 0.2%에 머물렀다.

<세바농> 회원들은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연거푸 맥주를 들이키며 웃음 지으려 애썼지만, 공허한 헛웃음만 가게 안에서 메아리쳤다. 이날 나온 농지 문제 이야기는 같은 달 26일 저녁 정 대표 집에서 열린 <세바농> 12월 월례회의에서 다시 쏟아져 나왔다. 제주의 모든 한상수들에게 ‘농지’는 일상이자 생존의 문제였다.

-비기****:비기는 케이티(KT)가 2001년 시작한 휴대전화 청소년 요금 체계이다. 비기는 일반적인 성인 요금제에 비하여 할인의 폭이 크다. ‘알’이라는 과금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알’만큼 통화 및 문자 발신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알’을 같은 비기 서비스 가입자에 한하여 주고받을 수 있다.
-스마트팜(Smart Farm)*****: 비닐하우스에 아이시티(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원격·자동으로 작물의 생육환경을 적정하게 관리

# 높은 땅값에 ‘백수’ 농업인들 탈출…결국 농촌 소멸로

지난달 27일 오전 한상수씨가 자가용에 큰아들을 태워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시킨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 중 한숨을 쉬었다. “우리 서진이를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인터넷서 온라인으로 지원서를 냈어요. 그렇게 제출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 아들은 집에서 꽤 떨어진 어린이집으로 가게 됐어요.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맞벌이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이 일 순위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농사를 짓고 있어도 서류상 백수이기 때문에 그 순위 밖이었어요.” 백수라는 신분으로 한씨가 당황한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처음 귀농했을 당시에 농협서 신용카드 만들 때도 같은 이유로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집에 돌아온 한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적당한 가격의 농지를 찾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평당 180만원인가. 이거 대출금 이자도 못 내겠네. 이거 투기지 뭐. 여기다 집 지어서 팔아먹는 거지. 가격이 이래서 사람들이 버텨내나.”

한서진군이 승용차 뒷자석에 앉아 운전중인 아버지 한상수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제주연구원이 지난 2018년 11월 30일 ‘제주 인구소멸지수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 제목으로 <정책이슈브리프> 297호 보고서를 발행했다. 그 내용을 보면, 2017년 기준 제주지역 인구소멸지수는 주의 단계에서 10년 이내에 소멸위험 진입 단계로 진행된다고 전망한다. 인구소멸지수는 매우 낮음-보통-주의-소멸위험 진입-소멸고위험으로 그 단계를 구분한다. 이 보고서는 인구소멸 근거로 볼 수 있는 2008~2017년 기준 제주지역 청년(20~39세) 및 노년(65세 이상) 인구 추이를 제시하는데, 청년층 대비 노년층의 증가세가 42배에 육박한다. 지난 2018년 12월15일 제주도 제주시 제주연구원에서 만난 안경아 연구원은 이 문제를 단순히 인구 감소로만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농지 투기로 땅값이 오르면, 자경하는 농민들은 자산가치가 올랐다고 좋아하죠. 근데, 청년층 농사 구성원들은 임차할 땅마저 구할 수 없어 농촌을 떠나게 돼요. 신규 청년층 구성원이 사라지는 건 농사 노하우를 이어나갈 농부가 사라진다는 의미고요. 결국 농촌이 소멸하는 거죠.”

제주/ 글 영상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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