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빵 바지 (하)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74] 1. 제2차 세계대전과 멜빵바지
제1차 세계대전기에 멜빵 바지를 입어 본 사람은 단번에 알았을 것이다. 이만큼 노동에 적합한 옷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작가 워커 에번스(Walker Evans)는 1930년대 미국을 돌며 멜빵바지 입은 사람들을 찍었다. 이 사진을 보면 마치 당대 미국인 남성 모두가 멜빵바지를 입은 것만 같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참전국 여성들은 다시 멜빵바지를 입고 일터로 나갔다. 물론 일터로만 나간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35만명의 여성이 참전했다. 참전 여성 대다수는 본토 군수공장에 근무했는데 1943년 현재, 미 항공산업에 종사하는 이의 65%가 여성이었다.
미 정부는 여성의 근로를 독려하기 위해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홍보했다. '로지'는 당시 국가 정책과 국민 정서가 합쳐져 탄생한 '일하는 애국 여성'이었다. 당대에 만들어진 포스터, 사진에서 리벳공 로지는 데님(denim) 상하의나 멜빵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2. 멜빵바지와 여성
제2차 세계대전기 멜빵바지는 여성의 복장 선택 자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여성은 다시 치마를 입어야 했다. 일부 특별한 활동(승마 등의 스포츠, 육체 노동)을 할 때가 아니면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일상에서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은 1960년대 여성운동과 1970년대 사회 변혁을 통과한 후의 일이었다.
3. 멜빵바지 ABC
멜빵바지의 특색 중 하나는 가슴 받이에 달린 앞주머니다. 이는 1905년 처음 등장했다. 앞주머니 형태는 큰 주머니가 가운데 달리거나 작은 주머니가 한쪽에 치우쳐 재봉된 것 등 다양했다. 종종 주머니 한편에 슬릿 포켓(slit pocket: 세로 주머니)이 보이는데 이는 회중 시계 보관용이었다. 그러다가 1915년을 전후해서 슬릿 포켓이 없어졌고, 1940년대 이후로는 대부분 '가운데 큰 주머니 하나'로 통일됐다.

멜빵바지는 멜빵이 바지 뒤쪽에 어떻게 결속되느냐에 따라 하이-백, 로-백, 베스트-백 스타일로 나뉜다. 하이-백은 바지와 멜빵 일체형, 로-백은 바지와 멜빵 분리형이다. 베스트-백은 가슴께까지 올라오는 허리 긴 바지와 멜빵이 일체인 형태다.

바지와 멜빵 연결에 사용되는 단추도 특색이 있다. 바지에 금속제 단추가 달려 있고 멜빵에 걸쇠가 연결되어 있으나 그 반대인 경우도 종종 있다.


4. 대중 문화 속의 멜빵 바지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멜빵바지는 수백 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를 간단히 뒤집은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이름은 바로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이다. 제임스 딘이라는 인물을 세상에 알린 엘리아 카잔 감독의 1955년 작품이다.
영화에서 제임스 딘은 캘리포니아 농장주의 반항적인 둘째 아들로 나오는데, 멜빵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노동자가 아니라 마치 화보에서 그대로 걸어나온 모델의 포즈를 연상케 했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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