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지지율, 무엇이 20대 남녀를 갈랐나

백철 기자 2018. 12. 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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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대입 논술고사를 마친 수험생들이 나오고 있다./김창길 기자

20대 성별 간 정치의식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연령별·성별 표본을 모두 공개하는 한국갤럽의 2018년 12월 통합 여론조사(성인남녀 3007명 대상)를 살펴봤다. 19~29세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긍정률은 41%를 기록한 반면, 19∼29세 여성의 지지율은 63%로 나타났다.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은 50대 남성(42%)과 비슷했다. 반면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30대 여성과 더불어 전 세대·연령에서 가장 높았다.

■문재인 대통령 행보에서 기대와 희망

대체로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이 극적으로 낮아진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20대 여성들의 높은 지지율의 이유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페미니스트 중에서는 문 대통령에 비판적인 시각이 높다. 혜화역 시위에서 대통령을 조롱하는 구호가 나왔고,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을 해임하라는 요구도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 여전히 높다. 20대 남녀에게 세대 내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학원생 권은지씨(가명·28)는 “여자라고 다 페미니스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20대 여성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인식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소수라는 것이다. 여대에 다니는 권씨가 주로 들르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학교 커뮤니티다. 권씨는 “학교 커뮤니티에서는 혜화역 시위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글이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실제 여론조사에서는 20대 여성이 대통령을 가장 많이 지지하는 결과가 나와서 나도 놀란 적이 많다”고 말했다.

권씨는 20대 여성들은 현실보다 미래를 보고 문 대통령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업전선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20대 여성, 남성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성 장관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고 공약하는 등 사회 도처의 유리천장을 깨겠다는 문 대통령의 행보에서 기대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당장 제 또래가 취업하는 데 좋아진 것은 없다. 하지만 여성 장관을 5명이나 임명하는 등의 모습을 보고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일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정경희씨(가명·24)는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투표한 여성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메갈리아’가 탄생한 이후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여성과 남성은 치열한 젠더 전쟁을 벌였다. 이미 이때부터 성범죄에 대한 고발(미투운동)이나 디지털 성폭력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시작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에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현실정치까지 올라오진 않았다. 정씨는 “저희 세대에 있어서 문 대통령의 비교대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디지털 성폭력 문제가 현실정치에서 논의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뭔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남성들에겐 여전히 ‘가장의 역할’ 요구

반면 20대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기대와 희망’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대학생 김정훈씨(가명·25)는 이제 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는 “남자들은 축구도 봐야 하고 롤(온라인 게임)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라는 유시민 작가의 발언에 대해 “나를 조롱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학생들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장학금도 많이 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친한 유 작가가 ‘남자들이 놀아서 뒤처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면 반발감부터 드는 게 당연하다. 이런 식의 발언이 쌓여서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곽도훈씨(26)는 “세상은 점점 성평등으로 바뀌는데 남자들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불평등하다”고 말했다. 남자라고 해서 무조건 여자들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시대도 아닌데 윗세대 남성들로부터 ‘미래의 가장’으로 준비를 하라고 끊임없이 압력을 받는다는 게 곽씨의 설명이다.

곽씨는 “남자 어른들이나 선배들에게 ‘나도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우는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답만 돌아온다. 우리보고 보수화됐다고 하는데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안정을 찾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경희씨는 여성들도 취업전선에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동년배 남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여성들 사이에 비혼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고, 윗세대로부터 ‘가장’이 되라는 압박도 적다는 것이다. 정씨는 군대문제도 20대 남성들을 좌절하게 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며 “남성들이 2년간 군생활하는 동안 공부나 경력이 단절된다. 지인들 중에는 군 제대 후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여자들도 군대 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국가에서 우리(여성)를 군대로 못가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20대 사이의 정치적 인식 차이는 젠더 이슈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전에도 존재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최근처럼 대통령 지지율을 둘러싸고 뚜렷하고 일관되게 20대 내의 격차가 부각된 적은 없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젠더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각 사안에 따라 남녀의 의견이 정반대로 가기도,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여성폭력 방지법의 경우 20대 남녀 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에 대한 비판의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과 남성 여론이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박정훈 리서치뷰 수석컨설턴트는 젠더 갈등이 심해질수록 20대가 처한 사회, 경제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박 컨설턴트는 “진보, 보수 모두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20대 남녀가 공통으로 느끼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게 젠더 갈등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면 ‘진보적이지 않다’고 딱지를 붙이는 진보담론에 대해 20대 남성의 반감이 매우 크다. 그들의 생각을 규정하기 전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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