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대충 여경 훈련' 영상의 실체 [언더그라운드 넷]
영상에 푸른색 경찰 제복을 입은 여성이 나온다. 경찰 삼단봉을 들고 샌드백을 세 번 툭툭 친 뒤 웃으며 지나간다. 이어진 영상에는 경찰 제복을 입은 여성과 남성이 대련을 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을 향해 주먹을 세 번 내지르더니 멋쩍은 듯이 웃는다. 이 영상들이 올라간 게시물의 제목은 ‘국내 여경 제압훈련’이다. 댓글의 대부분은 여경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훈련 중에도 미소를 잃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냐”, “때찌때찌 훈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등의 반응이다.

영상 속 여성이 경찰이 맞는지 궁금했다. 서울경찰청 기동단에서 일하는 ㄱ경사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ㄱ경사는 영상 속 장소가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체육관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인재개발원의 과거 명칭은 경찰교육원으로, 신임 경찰관 등 여러 직무의 경찰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즉, 영상 속 인물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실제 경찰일 가능성이 높다.
누가 영상을 만들었을까. 여러 SNS, 커뮤니티를 검색해본 결과 가장 오래된 것은 9월 19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경의 현주소’라는 게시물이다. 이 게시물 끝부분엔 남자 경찰이 샌드백이 터질 정도로 세게 내리치는 영상도 붙어 있다. 9월 영상이 12월 게시물 속 영상보다 화질이 좋았다. 영상 우하단에는 태극기를 형상화한 마크도 붙어 있다. ‘체포술을 연구하는 현직 경찰관 동아리 모임’이라는 설명이 붙은 경찰연구회의 마크다. 경찰연구회는 홈페이지, 페이스북 등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폐쇄됐다. 이들이 만든 영상 몇 개만 인터넷에 남아있다.
남성인 ㄱ경사에게 ‘실제로 훈련 때 진지하지 않은 여경들이 많으냐’고 물었다. ㄱ경사는 일단 영상의 내용은 제압훈련이 아니라 삼단봉 사용법 교육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ㄱ경사는 다른 곳은 몰라도 자신과 같은 곳에서 일하는 여경 기동단이 훈련시간에 대충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ㄱ경사는 경찰 홍보에 여경들을 지나치게 많이 동원하면서 오히려 인식이 안 좋아진 것이라고 봤다. 그는 “나보다 일 잘하는 여경들도 많다. 그런데 각 지방경찰청에서 경쟁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여경들로 홍보 영상·사진을 찍고, SNS 잘했다고 특진한 여경 소식을 자랑처럼 내세우니 인식이 안 좋아지는 게 당연하다”며 “이왕에 여경 홍보를 할 거면 범죄자 잘 잡는 여경 소식을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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