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언어·관습 보존 애쓰지만 .. 사그라드는 민족 정체성 [극동시베리아 콜리마대로를 가다]

이귀전 2018. 12. 2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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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언어·관습 보존 애쓰지만 .. 사그라드는 민족 정체성 / 바닷가 조용한 어촌이던 올라 마을 / 1928년 금 발견돼 외지인 대거 유입 / 도시형 촌락 지위 얻으며 크게 번성 / 차츰 쇠락해 지금은 농업 중심지로 / 집단농장 자리잡자 전통 규범 상실 / 소수민족 5000명 중 에벤인이 절반 / 어린이들, 학교서 조상언어 배우고 / 올가미 던지기 등 민속놀이도 익혀

마가단시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날 에벤족이 많이 사는 올라군의 중심지 올라 마을에 갔다. 마가단 시내에서 차로 오호츠크 해변을 따라 1시간을 달렸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자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 아래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북태평양 오호츠크해였다. 주상절리처럼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는 바람이 없는 듯 고요했다.

1시간여를 더 달려 올라 마을에 도착했다. 올라 마을은 도시형 마을로 올라군의 중심지지만 쇠락한 도시의 분위기를 풍겼다. 마가단시에서 동쪽으로 30여㎞ 떨어진 마을은 오호츠크해를 마주보는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1716년 건설된 올라 마을은 마가단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가 있다. 2016년에는 군 건설 300주년 기념식을 치르기도 했다. 군과 마을 이름 올라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지역 강에 물고기가 많은 것과 관련 있다. 에벤족이 처음 여기에 왔을 때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보고 ‘올라(olra)!’ 하고 소리쳤다. 이 말은 ‘물고기다!’라는 뜻이다. 올라 마을과 이웃한 마을이 가들랴(Gadlja) 마을이다. 가들랴라는 말은 산란기의 강이라는 뜻으로 올라 마을 이름의 ‘물고기 설’이 설득력 있다.
에벤족 문화 여름학교가 열리고 있는 가들랴 마을의 작은 학교.

조용한 어촌이었던 올라 마을은 1928년 유리 빌리빈을 단장으로 하는 최초의 콜리마 지질탐사대가 온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을에서 금이 발견된 것이었다. 콜리마에 파견된 금 채취단이 이 마을에 들어왔고, 주민 수는 크게 늘었다.

1957년 초 올라는 도시형 촌락의 지위를 얻었다. 관할 지역이 확대되면서 1960년 마가단주 농촌실험소가 세워지고, 올라 지역 집단농장은 실험농장이 됐다. 1963년 올라 강에 다리가 건설돼 마을이 주 중심지와 자동차 도로로 연결되었다. 다음해 농업기술전문학교가 추콧카주의 주도 아나드리에서 올라로 오면서 추콧카, 캄차카, 야쿠티야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올라로 들어왔다.

1970년에서 1990년까지 올라는 마가단주의 행정 중심지였다. 공장과 농장들, 문화와 의료와 교육 기관들이 세워졌다. 현재 올라는 이 지역의 농업 중심지이다. 수산 회사, 건설자재 공장, 삼림공장, 가금 공장들이 있다.
향토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에벤족 전통 여름 의상.

이웃한 가들랴 마을에는 작은 향토역사 박물관이 있다. 전시품은 사하공화국에서 보는 여느 민속박물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새와 설치류 같은 작은 짐승들의 박제품이 작은 방 하나를 채우고 있었다. 다음 방에는 에벤족의 생활용품들, 에벤족 의상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었다.

박물관에서 좀 떨어진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에선 에벤족 문화 여름학교가 열리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10여명의 어린이들이 에벤족 전통과 관습을 잊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에벤족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여름 학교에서 아이들은 조상의 생활 관습을 익히고 에벤 말을 배운다. 그리고 막대기 잡아당기기, 올가미 던지기 등 여러 가지 전통 놀이도 익힌다.

아이들을 위해 작은 운동장에는 유르트(전통가옥) 3채가 세워져 있었다. 이 가옥 안에서는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을 배운다. 우리나라의 고수래와 유사한 불의 신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관습, 사냥을 나가기 전에 치르는 의식, 새해맞이 의식, 바다에 나가기 전에 치르는 의식 등을 배운다. 에벤어 노래와 민속 설화, 지역 역사를 배우고, 여학생은 구슬로 장식품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탐사대에 전통춤과 에벤어 수업 장면을 보여 주었다. 에벤어로 하나에서 열까지 숫자를 외워 보이고, 자기소개를 했다.
에벤족 문화 여름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에벤족 전통의상을 입고 그들의 전통문화를 배우고 있다.
문화 여름학교의 에벤족 선생 세묜(왼쪽)과 코략족 선생 에카테리나 카프로스카.

올라 마을에서 얻은 소득은 코략족 출신을 만난 일이다. 에벤족 학생들을 가르친 에카테리나 카프로스카 선생은 코략족이지만 조상대에서 러시아인과 섞였을 수도 있다. 올라에서 혼혈은 흔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코략족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에 대해 물었지만, 부모가 북쪽에서 왔다는 것뿐 자세한 것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코략족 출신을 만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코략족이라고 부른 것은 러시아인들이다. 코략족은 크게 두 부족으로 나뉜다. 순록을 키우는 코략족은 ‘차브치브’라 하고, 해안가에서 어업을 주로 하는 코략족은 ‘느물근’이라고 불렀다. 순록 유목 코략족은 순록 수에 따라 빈부 차가 나는 사회 구조를 갖고 있었지만, 어업을 하는 코략족 느물근은 가난했다. 이들은 집단농장화가 본격화되자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전통 사회의 규범을 상실하게 됐다. 1989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8942명의 코략족 중 코략어를 사용할 수 있는 숫자는 5.4%에 불과하다.
강덕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소장, 부총장

마가단주의 소수 민족은 약 5000명에 달한다. 이들 중 절반이 넘는 2635명이 에벤인이다. 그 밖에 코략족이 900명, 이텔멘족이 613명, 에스키모가 33명, 축치족이 285명이다. 에벤족이나 코략족이 러시아인을 만나 이루어진 혼혈인을 일컫는 캄차달이 280명이다. 에벤족은 마가단 주의 북에벤과 올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제 올라 마을에서 에벤족의 전통을 찾기는 힘들다. 이 지역은 러시아인, 에벤인, 야쿠트인, 코략인, 축치인들이 섞여 있다. 올라 지역은 이제 더 이상 어느 한 민족의 정체성이 보존된 곳이 아니다. 미래의 지향점 없이 물결에 흘러가는 뗏목 같은 곳이 됐다.

강덕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소장,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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