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언어·관습 보존 애쓰지만 .. 사그라드는 민족 정체성 [극동시베리아 콜리마대로를 가다]

마가단시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날 에벤족이 많이 사는 올라군의 중심지 올라 마을에 갔다. 마가단 시내에서 차로 오호츠크 해변을 따라 1시간을 달렸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자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 아래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북태평양 오호츠크해였다. 주상절리처럼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는 바람이 없는 듯 고요했다.

조용한 어촌이었던 올라 마을은 1928년 유리 빌리빈을 단장으로 하는 최초의 콜리마 지질탐사대가 온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을에서 금이 발견된 것이었다. 콜리마에 파견된 금 채취단이 이 마을에 들어왔고, 주민 수는 크게 늘었다.
1957년 초 올라는 도시형 촌락의 지위를 얻었다. 관할 지역이 확대되면서 1960년 마가단주 농촌실험소가 세워지고, 올라 지역 집단농장은 실험농장이 됐다. 1963년 올라 강에 다리가 건설돼 마을이 주 중심지와 자동차 도로로 연결되었다. 다음해 농업기술전문학교가 추콧카주의 주도 아나드리에서 올라로 오면서 추콧카, 캄차카, 야쿠티야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올라로 들어왔다.

이웃한 가들랴 마을에는 작은 향토역사 박물관이 있다. 전시품은 사하공화국에서 보는 여느 민속박물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새와 설치류 같은 작은 짐승들의 박제품이 작은 방 하나를 채우고 있었다. 다음 방에는 에벤족의 생활용품들, 에벤족 의상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었다.
박물관에서 좀 떨어진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에선 에벤족 문화 여름학교가 열리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10여명의 어린이들이 에벤족 전통과 관습을 잊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에벤족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여름 학교에서 아이들은 조상의 생활 관습을 익히고 에벤 말을 배운다. 그리고 막대기 잡아당기기, 올가미 던지기 등 여러 가지 전통 놀이도 익힌다.


올라 마을에서 얻은 소득은 코략족 출신을 만난 일이다. 에벤족 학생들을 가르친 에카테리나 카프로스카 선생은 코략족이지만 조상대에서 러시아인과 섞였을 수도 있다. 올라에서 혼혈은 흔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코략족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에 대해 물었지만, 부모가 북쪽에서 왔다는 것뿐 자세한 것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코략족 출신을 만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마가단주의 소수 민족은 약 5000명에 달한다. 이들 중 절반이 넘는 2635명이 에벤인이다. 그 밖에 코략족이 900명, 이텔멘족이 613명, 에스키모가 33명, 축치족이 285명이다. 에벤족이나 코략족이 러시아인을 만나 이루어진 혼혈인을 일컫는 캄차달이 280명이다. 에벤족은 마가단 주의 북에벤과 올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제 올라 마을에서 에벤족의 전통을 찾기는 힘들다. 이 지역은 러시아인, 에벤인, 야쿠트인, 코략인, 축치인들이 섞여 있다. 올라 지역은 이제 더 이상 어느 한 민족의 정체성이 보존된 곳이 아니다. 미래의 지향점 없이 물결에 흘러가는 뗏목 같은 곳이 됐다.
강덕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소장,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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