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세계의 분쟁지역] 암살·고문까지 대행하는 용병, 처벌할 법망은 애매모호

한국일보 2018. 12. 2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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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는 용병들, 그들은 무죄인가 <하>

2007년 4월6일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의 폭탄테러 현장을 민간군사기업(PMC) 소속 용병들이 통제하고 있다. 사복 차림에 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이른바 ‘컨트랙터’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엄격한 지휘와 통제가 이뤄지는 정규군과는 달리, PMC 용병들의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명령 체계도 모호해 최소한의 기강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프간 전쟁은 이라크전과 함께 9ㆍ11 테러 이후 폭발적 성장세를 보인 PMC들이 가장 많이 활동했던 무대로 꼽힌다. 이유경 기자 제공

2007년 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선 오전 7~8시쯤 출근길을 겨냥한 ‘아침 폭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 해 4월 6일도 그랬다. 아침 폭탄 소식에 기자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 곳은 장갑차까지 몰고 나온 국제치안보조군(ISAF) 소속 이탈리아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하지만 ‘범죄 현장’을 다각도로 찍는 군 소속 사진사는 물론, 길다란 소방 호스로 피가 흥건한 바닥을 씻겨 내는 아프간 경찰, 끊임없이 몰려드는 시민들, 취재진까지 더해져 이미 북새통이었다. 그런데 전쟁 국가의 어수선한 하나의 풍경만으로 여기기엔 심상찮은 뉘앙스가 느껴졌다. 군복들 사이사이에 점퍼 차림을 한, 소속을 알 수 없는 ‘총 든 남성들’이 활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누구인가?

당시 아프간에서 기자가 가장 많이 들은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컨트랙터(contractors)’였다. 그날 폭탄테러 현장의 사복 남성들도 ‘컨트랙터’다. 컨트랙터는 민간군사기업(PMC) 소속 용병들의 다른 이름이자, 전쟁 특수를 타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며 돈을 버는 민간인들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분쟁의 일상이 더 심란했던 건 탈레반의 공격, 또는 그들과 싸우는 아프간군과 IASF, 미군 등의 작전 때문만은 아니다. 소속이 분명한 이들과 달리, 이른바 ‘괴한(unknown persons)’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폭력도 시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소였다. 예컨대, 그 해 4월 17일 남부 칸다하르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5명이 탄 차량에 총기를 난사,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누가, 왜’ 그랬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에 빠졌다. 다만 “컨트랙터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낮은 속삭임이 무대 뒤에서 회자됐을 뿐이다.

국제법상 ‘민간인 신분’인 용병은 전쟁 관련 규율이나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정규 군대가 철통같이 내세우는 작전의 원칙이라든가 군의 기강, 명예, 애국심 등의 명분에도 관심이 없다. 거리를 활보하고, 총기를 난사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으로 허위자백이라도 받아내겠다는 게 21세기 민영화한 전쟁터의 PMC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2001년 10월 22일 유엔은 ‘용병 모집과 이용, 재정지원 및 훈련을 금지한 국제협약’을 발효시켰지만, 이를 비준한 국가는 35개국(2016년 12월 기준)뿐이다.

2006년 9월 한 이라크 군인이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내부를 순찰하고 있다. 2004년 미군의 이라크 포로 고문ㆍ학대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던 현장으로, 당시 미 정규군 11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나 고문 행위에 가담한 ‘용병 심문관’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용병’ ‘PMC 사병’ ‘컨트랙터’ 등으로 불리는 이들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전투는 물론, 암살 작전이나 구금자 심문, 고문 통역, 심지어 드론 공격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전쟁에서 요구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폭발적 성장을 한 PMC의 대표적 활동 무대는 아프간과 이라크였다. 그런데 정보(intelligence) 분야에서 큰 사달이 났다. PMC가 정보 수집의 한 방편인 심문 절차까지 떠맡았고, 이 과정에 고문이 동반됐던 것이다. ‘CIA(미국 중앙정보국)가 고문까지 아웃소싱했다’는 한 언론 기사의 제목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선 아프간을 보자. 카불에서 동쪽으로 차량으로 세 시간 정도 거리인 낭가르하르 지방, 그리고 북쪽으로 이웃한 쿠나르 지방 일대는 ‘CIA의 대(對)테러 암살 비밀 작전’이 펼쳐졌던 곳이다. 2001년 이후 CIA는 이 극비 임무와 관련, 대표적 PMC인 ‘블랙워터’ 및 그 자회사들과 6억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미 육군 특수부대인 ‘레인저스’ 출신 민간인 데이비드 파사로 등도 CIA와 계약을 맺고 이 프로그램의 심문관 노릇을 했다.

‘사고’의 계기는 2003년 6월 쿠나르 지방 주도(州都)인 아사다바드의 미군 기지가 반군의 로켓 공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용의자로 의심받은 아프간 남성 압둘 왈리(28)는 무고함을 소명하기 위해 스스로 미군 기지를 찾았다. 그러나 왈리는 모진 고문을 받다 결국 숨졌다. 가해자는 바로 CIA의 ‘용병 심문관’ 파사로였다. 2006년 8월 미 연방법원에 기소된 파사로는 이듬해 ‘징역 100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5년 4월 20일 석방되면서 언론 인터뷰를 하던 그의 얼굴엔 뉘우치는 기색 없이 ‘억울하다’는 표정만 가득했다.

2014년 12월 미 상원이 기밀해제 후 공개한 ‘CIA 심문전술’에 관한 500쪽짜리 보고서에 따르면 9ㆍ11 이후 CIA 비밀심문 프로그램의 85%가 CIA의 ‘민간 컨트랙터’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해당 민간인들 중 처벌받은 경우는 파사로가 유일했다. 왈리 고문치사 사건 이듬해인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포로 고문 실태가 폭로돼 논란이 일자 미국으로선 누군가를 처벌하는 제스처를 보여야 했고, 이런 사정 때문에 1년 전 아프간에서 발생한 사건을 소환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7년 9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니수르 광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민간인 1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블랙워터 소속 용병 니컬러스 슬래턴(왼쪽 두 번째)과 도널드 볼(왼쪽 세 번째)이 이듬해 12월 변호사들과 함께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프간에서 CIA 용병이 심문관 노릇을 했다면, 이라크에선 ‘카키 인터내셔널’과 ‘타이탄’이라는 두 PMC가 각각 ‘심문서비스’와 ‘통역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아부그라이브 사태가 터진 후 미군이 수행한 자체 조사 결과, 이 수용소의 구금 사례 가운데 85~90%는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 온 이라크 시민들은 강제로 발가벗겨진 채 성고문, 전기고문 등에 시달렸다.

2004년 1월1일 출근길에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 끌려간 하산 알아자위도 그런 경우다. 그는 다큐멘터리 ‘이라크를 팝니다: 전쟁 이윤을 챙겨가는 자들’에서 PMC 심문관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사복 입은 이가 (고문을) 명령했고, 나는 그가 민간기업에 소속됐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명령에 군인들은 내 성기를 밧줄로 묶고 끈을 잡아당겼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나? 나한테 무슨 주사를 놓았고 고문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아부그라이브 고문에 가담한 미군 11명은 2005년 미 군사법정에 기소돼 징역 3~10년형씩을 선고받고 불명예 제대를 했다. 그러나 고문을 명령하고 가담한, 고문 과정에서 통역을 해 준 PMC 용병들은 처벌할 법도, 기소할 법정도 없었다. 아부그라이브 고문 피해자들 중 일부는 ‘용병 심문관’의 처벌을 위해 아직도 법정에서 싸우고 있다.

2007년 9월 16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니수르 광장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블랙워터 용병 4명의 재판도 미 법정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지난해 8월 4일 미 항소법원은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던 주범 니콜라스 A. 슬라텐(33)의 ‘1급 살인’ 혐의를 기각하면서 재심을 명령했다. 원심에서 징역 30년형을 받은 다른 공범 3명에 대해서도 재선고를 명령했다. 블랙워터의 로비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블랙워터 설립자인 에릭 프린스는 2009년 회사에서 공식적으론 손을 뗐지만, 여전히 PMC 세계의 대부로 남아 있다. 지난해 그는 ‘아프간 전쟁 민영화 방안’도 제시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6개월 이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고문’과 같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카불 소재 싱크탱크 ‘아프간 분석 네트워크’의 선임연구원 토마스 루티그는 “극단적으로 위험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답변에서 “만일 프린스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아프간 전쟁은 이윤추구의 장이 되고, 군사적 목표도 불분명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쨌거나 (컨트랙터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그들을 고용한 미 국방부가 져야 한다”는 게 루티그의 말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글 실은 순서

<상> 용병의 산업화, 전쟁의 민영화

<하> 용서받는 용병들, 그들은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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