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로 세상을 흔든 뒤샹은 화가였다

전지현 2018. 12. 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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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50년 대규모 회고전
청년 시절 회화 작품
현대미술 개념 바꾼 '샘'
150여점 국현서 전시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
녹색 정원에서 두 남자가 머리를 모으고 체스판에 앉아있다. 한 여자는 차를 마시고, 다른 여자는 풀밭에 누워 있다. 더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이 인상주의 화풍 유화 '체스게임'(1910년)을 그린 화가가 프랑스 출신 작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이라니 놀랍다. 1917년 철물점에서 산 남성용 소변기에 가상의 예술가 R. Mutt 서명을 새긴 작품 '샘'으로 세상을 뒤집어놨던 괴짜이기 때문이다. 변기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와 병걸이 등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기성품(레디메이드)에 사인을 한 후 작품이라고 우겼다. '창조'를 해야만 예술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 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예술 작품 정의를 바꿔놓은 현대미술 선구자가 차분하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게 신선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에서 그의 소장품 150여점을 전시하는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에서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의 작품 200여점이 소장돼 '뒤샹의 성지'로 불리는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전시다. 1950년 뒤샹이 후원자인 루이즈·월터 아렌스버그 부부 소장품을 필라델피아미술관에 기증하도록 설득했고 직접 작품 설치를 지휘했다.

마르셀 뒤샹 '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난 티모시 럽 필라델피아미술관장은 "뒤샹은 사후 작품을 영구 보관할 수 있는 장소로 우리 미술관을 결정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을 추구한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인 그의 작품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미술관 내 뒤샹 전시관은 추상 조각 거장인 브랑쿠시 전시관 옆에 위치해 있다. 20세기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뒤샹의 소원이 이뤄진 셈이다.

특히 뒤샹의 회화 대부분은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선박 중개인이자 화가였던 외할아버지 영향으로 1902년 그림을 시작해 1912년까지 회화에 집중했다. 프랑스 인상주의와 야수파, 상징주의 영향을 받았고 입체파 그룹에서도 활약했다. 특히 누드 형상을 움직이는 기계로 묘사한 유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는 1913년 뉴욕 아모리쇼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뒀다. 입체파의 추상과 기하학적 공간, 과학 등을 결합한 작품이다.

마르셀 뒤샹 '자전거 바퀴'와 '샘'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보는 그림 실력은 어떨까. 럽 관장은 "뒤샹은 25세에 절필하고 다른 매체로 모험을 떠났다. 만약 미대 교수가 그의 그림에 학점을 매긴다면 아마 '낙제'일 것이다. 다음 학기에 재수강해야 한다. 여기 전시된 그림들은 그가 스스로 괜찮다고 평가해 남긴 것들이다"고 설명했다.

뒤샹은 1912년 그림을 돈벌이로 삼고 싶지 않아 프랑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기하학과 수사학, 과학 등을 공부했다. 이듬해 그의 첫 레디메이드 작품인 '자전거 바퀴'를 세상에 내놨다.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1915년 뉴욕으로 떠난 후 본격적으로 새로운 개념 미술 작업을 펼쳤으며 2년 후 '샘'을 발표했다. 미술사에 변곡점을 찍은 작품이지만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사라졌다. 희소성에 가치를 두지 않았던 뒤샹은 원작을 중요하지 생각하지 않아 자기 복제를 했다. 국내 전시장에 나온 '샘'은 그가 직접 1950년 파리 벼룩 시장에서 소변기를 구입해 복제한 것이다.

체스 게임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이번 전시에는 뒤샹이 1920~30년대 여성 자아 '에로스 셀라비'가 되어 만든 작품,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작품 소실을 걱정해 미니 복제품을 제작해 넣은 여행 가방, 세계선수권대회에 우승할 정도로 몰입했던 체스 관련 작품 등도 펼쳐진다.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뒤샹의 사후 50주년 전시여서 관람객 반응이 궁금하다. 전시는 내년 4월 7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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