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들의 첫 우정여행, 열차티켓 하나까지 추억으로 남겼는데..

박상현 기자 2018. 12. 1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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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변당한 서울 대성고 3학년 10명.. "함께 여행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 와"

수능 시험을 마치고 '우정 여행'을 떠난 고등학생 10명은 들뜬 표정이었다. 강릉행 KTX에서 찍은 셀카 속에서, 학생들은 파마머리에 귀에는 피어싱하는 등 멋을 부렸다. 환하게 웃으며 기차에 탄 지 25시간 만에 학생들은 펜션 방에서 숨지거나 의식불명인 채로 발견됐다.

18일 강원도 강릉시 한 펜션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누출 사고로 숨지거나 의식불명에 빠진 서울 은평구 대성고등학교 3학년들이다. 2000년생 동갑내기다. 김모, 안모, 유모 군 등 3명이 사망하고, 7명은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약간 호전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18일 강릉 펜션 사고로 숨진 서울 대성고 김군의 인스타그램에는 우정 여행을 기념하는 사진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탑승권 인증사진에는‘여행 1일 차’라며 환하게 웃는 이모티콘을 남겼다. /고(故) 김군 인스타그램

이들은 문과반인 3학년 1반과 2반 학생들로, 2학년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학생들은 "수능 끝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고 한다.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학교에 '개인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부모들에게 허락받은 여행이었고, 2박에 총 50만원이 드는 펜션 숙박비도 부모들이 지원했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도모 군의 아버지는 "갈 대학이 정해진 아이도 있고, 이제 (정시) 원서를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서로 약속했던 여행이라 다 같이 갔다"고 했다.

학생들은 17일 정오 서울역을 출발하는 강릉행 KTX 열차에 올랐다. 숨진 김군은 KTX 열차 안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사진에는 '#우정여행' '#강릉'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사진 아래에는 '부럽다' '나도 데려가'라는 친구들의 댓글이 달렸다. 이들은 오후 1시 50분 강릉역에 도착해 오후 3시45분 펜션에 입실했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장을 보러 나갔다가 경포 해변으로 향했다.

18일 오후 고교 3학년생 10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강원 강릉시의 펜션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이날 경찰 등 관계 당국은 오후 5시부터 10시 50분까지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 /고운호 기자

고 김군은 오후 6시에는 경포 해변을 배경으로 '아쿠아리움 가는 길'이란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 속 김군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진 18일 오후부터 김군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엔 '무사히 오기만 해' '멀쩡히 오길 바란다 제발' 등의 댓글이 달렸다.

대성고 학생들은 "사고당한 친구들 모두 평소 밝은 성격에 학교생활을 잘했다"고 전했다. 숨진 유군은 야구를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유군의 페이스북에는 야구 선수인 양의지와 더스틴 니퍼트 선수 사진이 올라와 있다. 두산 치어리더 서현숙씨와 함께 찍은 사진도 게시할 정도로 열성적인 팬이었다. 고 안군은 여느 10대처럼 인기 여자 아이돌 팬이었다. 안군의 페이스북에는 가수 트와이스 사진 여러 장이 게시돼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곳에는 아이유와 우주소녀의 앨범을 올려놓았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김군은 대성고 연극부에서 연극을 연출했다. 한 종합 일간지의 청소년 기자단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부상당한 백모 군은 고2 때 직접 언론광고 동아리를 만들었다. 초대 동아리 부장을 맡기도 했다. 대한민국청소년의회에도 가입하고 한국청소년통역단 활동도 했다. 대학도 광고홍보 계열에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친구라고 밝힌 한 학생은 "부모님 걱정시키는 일 없이 활달하고 다재다능한 친구들이었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남모 군의 페이스북 '좋아하는 것들' 목록에는 한 명문대 이름만 유일하게 올라 있었다.

학생들은 17일 저녁 펜션 1층에서 고기를 구워 함께 저녁을 먹었다. 고 김군은 오후 9시 인스타그램에 '이쁜 추억 만들자 친구들'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은 김군이 남긴 생전 마지막 흔적이 됐다. 펜션 1층에 거주하는 펜션 주인 김모씨는 "18일 새벽 3시까지 학생들 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18일 오후 1시 김씨는 방에 쓰러져 있는 학생들을 발견했다.

대성고 한 재학생은 "늘 환하게 웃고 사교성이 좋던 친구들이라 사고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성고는 19일부터 3일간 휴업한다고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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