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어요?" 새벽 두 시, 청바지 사러 무인매장에 갔다
24시간 운영하는 홍대 청바지 무인 매장 가보니…
신용카드로 출입, 점원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어
"저기, 아무도 없어요?"
11일 밤 10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라는 청바지 매장을 찾았다. 스마트폰 지도 앱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내가 생각한 옷가게가 아니었다. 차고 같기도 하고 냉동창고 같기도 한 외관, 옷가게라면 으레 있어야 할 쇼윈도도 없다. 큼직한 상호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터. ‘좀 독특하네’라는 생각으로 자동문 앞에서 섰다. 문이 열리길 기다렸지만, 묵묵부답. 암호라도 대야 하나? 그제야 문 옆에 달린 카드단말기가 보였다. ‘출입 조회’라고 적힌 단말기에 신용카드를 대자, ‘삑’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스르르 열렸다.
◇ 언제든, 눈치 안 보고 청바지 산다 "열려라! 무인 매장"
문이 열리자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래적인 분위기의 실험실이 펼쳐졌다. 중앙 테이블엔 청바지가 청색 염료를 수혈받는 듯한 설치물이 보이고, 벽과 중앙 옷걸이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청바지가 걸렸다. 매장을 살피는 사이 열렸던 철문이 굳게 닫혔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공간에는 음악 소리 외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누구 없어요?" 밀실에 갇힌 듯 오싹한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나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쇼핑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흥분됐다.
이곳은 청바지 브랜드 랩원오원(LAB101)이 지난 10월 문을 연 24시간 무인(無人) 매장이다. 점원 없이 손님이 알아서 옷을 골라 입어보고 구매할 수 있다. 쇼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옷을 골라 피팅룸에서 입어보고, 옷이 마음에 들면 매장과 피팅룸에 비치된 태블릿 PC를 이용해 결제하면 된다. 상품은 바로 가져갈 수도 있고, 집으로 배송을 받을 수도 있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반품도 가능하다.
무인 옷가게라니, 처음엔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원의 응대가 부담스러워 백화점을 가지 않고, 비교적 쇼핑이 자유로운 SPA 브랜드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주로 이용했던 터라 점원 없는 매장이 곧 익숙해졌다. 오히려 여러 번 옷을 입어 봐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다. 매장 개장 시간에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에 쇼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 실제로 새벽 4시나 이른 아침에 매장을 찾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비대면·빠른 소통·이색 체험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호응
이곳은 엄밀히 말해 완전 무인매장은 아니다. 매장 뒤 ‘히든 부스’라 불리는 숨은 공간에 직원이 상주하며 고객들이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예컨대 매장 이용 중 불편한 점이 생겼을 때 빨간 호출 버튼을 누르면 직원이 나와 쇼핑을 도와준다. 구매 후 옷을 가져가는 픽업 서비스를 선택하면, 옷을 포장해 픽업대에 놓아주는 것도 직원의 역할이다. 단, 픽업이 가능한 시간은 직원이 상주하는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8시 반까지. 나머지 시간에는 택배로 물건을 받아야 한다.
랩원오원 홍대점 이현석 매니저는 "아직까진 독특한 콘셉트를 체험하러 오는 분이 많다. 주로 친구와 커플들이 찾아와 옷을 입어보고 인증 사진을 찍으며 쇼핑을 즐긴다. 벌써 청바지를 세 벌이나 사간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판매자 입장에선 어떨까? 이 매니저는 인건비를 절감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감정 노동이 없어서 일하는 게 수월해졌다고 했다. "기존 의류 매장에선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감정 소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필요 없이 쇼핑에 필요한 기본적인 부분만 집중하면 된다는 점이 효율적인 것 같아요."
최근 유통업계 전반에 비대면 방식의 무인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2016년 미국 아마존이 무인매장 아마존고를 연 이래, 국내에도 무인주문시스템, 무인편의점, 무인PC방 등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미 패스트 푸드점에선 키오스크를 이용한 주문 시스템이 일반화된 상황. 자동화 기술을 이용해 편의성을 높이고 소통을 앞당긴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지만, 일각에선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소비자나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젊은 고객들이 주로 찾는 패션 매장만큼은 무인매장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드러나 보인다. 일본 패션 브랜드 GU는 지난해 일본 내 전 매장에 무인계산대를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고객 대기시간이 3분의 1가량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형욱 랩원오원 마케팅담당 과장은 "브랜드명에 실험실이라는 뜻의 ‘랩’이 있듯, 새롭게 실험하고 도전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앞으로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패턴에 맞춰 완전 무인 매장이나 자판기 콘셉트의 매장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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