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선거제 합의'..1박2일간 무슨 일이?

2018. 12. 1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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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서영지의 오분대기

14일 문희상 의장, 대통령과 '깜짝만남'
"선거제도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 같아"
문 대통령, 선거제도 발언 녹화도 요구
김관영, 나경원 밤까지 만나며 막판설득
이튿날,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안 발표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선거제도 개혁 관련 합의문을 발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윤소하, 민주평화당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선거제도 개편의 큰 틀에 합의했습니다. 주말인 토요일에 이뤄진 ‘깜짝 발표’였습니다. 전날까지만해도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만나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전격적인 이번 합의 뒤에는 야당 대표들의 단식 농성 등 정국 경색을 풀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의 비공개 회동,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한 설득 등 막후 과정이 숨어있었습니다. 14일 오후부터 이튿날 오후 ‘선거제도 개편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긴박했던 1박2일을 따라가 봤습니다.

■ 14일 오전: 문희상 의장 “대통령과 만날 수 있게 해달라”

지난 14일 오전 8시43분, 문희상 의장은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재인 대통령과 회동을 긴급히 할 수 있는지 청와대와 조율해 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날은 오전 10시20분부터 문 의장 주재로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이 예정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9일째 단식을 벌였지만 여야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긴박한 시점’이라고 의장님이 판단했다. 적어도 주말 사이에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임시국회 소집도 안 되고 단식농성도 연말까지 간다고 봤다. 그러면 무엇보다 손학규·이정미 대표의 생명이 위험할까봐 가장 걱정이 됐다. 또 (12월) 임시국회도 소집 안 되고, 민생법안도 처리 안 되면 정당 간의 감정이 더 상하고 얼어붙으면 이걸 풀 길이 (더) 없을 것 같았다.(박수현 비서실장)”

실제 이날 오전과 오후 5당 원내대표는 문 의장 주재로 두 차례 만났지만 이견은 여전했습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나 “단식을 풀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까진 논의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오후5시30분: 문 대통령 “내 발언 녹화해 달라”

그러던 중 청와대에서 문 의장의 ‘긴급 만남’ 제안에 대한 화답이 왔습니다. 문 의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40여분간 비공개로 만났습니다. 문 의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기본 인식은 변함없다고 했다. 한 번도 다른 생각을 가진 적이 없다면서, 그동안 무슨 얘기를 해왔는지 쭉 얘기했다.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에 한 공약,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선거제도 개혁안(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한 적도 있는 것, 이후에도 각종 모임에서 (그런) 얘기를 해오셨다고 했다. 다만 숫자(의원정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이 나설 게 아니라 국회가 할 일이라고 했다. 국회가 합의하면 충분히 이를 지지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이 회동에서 문 대통령은 문 의장에게 “10분 정도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카메라 등 녹화장비를 집무실로 가져오게 해 발언을 녹화하게 했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대 대변인을 지낸 박 비서실장은 “비공개·비공식 회동임에도 카메라로 녹화하게 한 것은 사실상 대통령이 확고한 자신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대통령의 진심이 정확하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오후7시: 문 의장, 나경원에게 “새로운 전기 만들길”

이후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문 의장은 이날 저녁 한일의원연맹 대표단과 함께 하는 환영만찬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났습니다.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인 나 원내대표도 이 만찬에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문 의장은 나 원내대표에게 “엄청난 발표(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인적쇄신 명단 발표)를 앞두고 당에 내란이 있을 텐데 (야당 대표 단식농성 등 이 국면이 지금 안 풀리면) 나중에 국민한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새로운 원내대표가 됐으니 새로운 기운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리고 단식 중인 두 대표가 잘못되면 (선거제 개편에 가장 소극적인) 자유한국당이 책임을 지는 만큼 결단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설득에 대한 답이 바로 왔느냐’는 물음에 문 의장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바로 될 리가 있나”라고 답했습니다.

■ 저녁 8시30분: 문 의장, 손학규·이정미 대표 ‘설득’

이후 나 원내대표를 만난 사람은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였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밤까지 나 원내대표를 만나 설득을 거듭하며 ‘선거제 개편’에 대한 최종합의문 조율에 나섰습니다. 김 원내대표가 전한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14일 밤 10시30분까지 나 원내대표와 최종조율을 했다. 이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조율안을 보냈는데, 의원정수 10% 확대하는 문제와 ‘원포인트 개헌’ 논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합의를 해준 만큼 민주당에서도 관철해달라고 얘기했다. 그 뒤 의장님께 전화를 걸어 선거제도 개혁의 주축인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비슷한 시각, 문 의장도 누구보다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한일의원연맹 만찬을 마친 뒤 저녁 8시30분께 문 의장이 향한 곳은 손학규·이정미 대표가 단식농성 중인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이었습니다. 문 의장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 내용, 또 문 대통령이 임종석 비서실장을 통해 메시지를 주겠다고 말한 부분까지 자세히 전달했습니다. 결국 설득과 협의를 거친 끝에 비로소 이날 밤 늦게야 6개항이 담긴 합의문 초안이 완성됐습니다.

■ 15일 낮 12시25분: 임종석 비서실장 국회 방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앞줄 왼쪽 둘째)이 15일 낮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바른미래당 손학규(앞줄 맨왼쪽)·정의당 이정미 대표(앞줄 오른쪽 둘째)를 만나 "국회가 비례성 강화를 위해 여야 논의를 통해 (선거제 개혁) 합의안을 도출하면 이를 지지하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지만 막판까지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문 의장은 15일 오전 8시께 박수현 비서실장에게 변동상황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라고 당부했습니다. 박 비서실장은 “이틀간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과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연락망’ 역할을 한 김관영 원내대표와 통화한 것만 수십 차례였다. 의장이 합의가 타결될 때까지 상황을 긴박하고 세밀하게 챙겼다”고 말했습니다. 애초 5당 원내대표의 선거제도 개편안 합의 기자회견이 15일 낮 12시45분으로 예정됐던 만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회견에 앞선 낮 12시25분 국회를 찾아 단식농성 대표들에게 대통령 뜻을 명확히 전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습니다. 임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를 찾아 손학규·이정미 대표를 만나 지난 14일 문 대통령이 문 의장을 비공개로 만나 한 발언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 오후1시40분: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문’ 발표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미뤄진 오후 1시40분께 진행됐습니다. 회견이 미뤄진 것은 초안 합의문에서 일부 문구를 재조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합의문 초안에는 의원정수와 관련해 ‘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로 되어 있었지만, 최종합의문에는 ‘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로 ‘여부’라는 말이 새롭게 들어갔습니다. 나 원내대표가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 단어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 합의에 전향적으로 나선 데 대한 긍정적 평가도 나왔습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기본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만큼 앞으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야 3당의 걱정처럼 앞으로 구체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더 험난할지 모릅니다. 그런 만큼 이번 합의 내용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화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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