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앤장 압수수색 뒤, 무서운 무반응

2018. 12. 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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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양승태 사법부의 강제징용 재판 개입 관련 변호사 사무실…
변호인의 비밀유지 의무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사법 농단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11월12일 김앤장 소속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세양빌딩에 있는 김앤장 사무실 모습. 김진수 기자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와 관련해 지난 11월12일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소속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일대 사건이었다. 첫째, 수사기관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변호인의 의뢰인 비밀유지 의무와 충돌한다. 이는 헌법상 권리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헌법 제12조 제4항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변호인을 믿고 털어놓은 비밀이 수사기관에 통째로 넘어가는 마당에 어떻게 변호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겨냥한 압수수색 영장은 법원이 되도록 발부하지 않거나, 발부되더라도 검찰이 실제 집행을 자제해왔다.

둘째, 국내 최대 로펌이 압수수색당했는데도 당사자는 물론 동업자인 변호사 단체들조차 조용하다.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인데도 이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16년 롯데를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이 검찰의 타깃이 됐을 때는 달랐다. 검찰이 영장을 집행하지 않고 율촌의 협조를 받아 자료를 제출받았는데도 법조계는 물론 학계의 우려가 쏟아졌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검찰과 법원은 변호사의 의뢰인 비밀유지권을 침해하는 영장을 남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냈고, 변협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법학 교수들은 “전세계에서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검찰을 성토했다.

압수수색 사실 알려진 것도 예사롭지 않아

하지만 이번에는 딴판이다. 김앤장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곤란하다”며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김현 변협 회장은 “이번 건은 율촌의 사례와 달라 보인다. 사법 농단 수사는 정치적 파장이 크고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당사자(김앤장)가 조용하다”며 변협이 나서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공익성은 변호인의 비밀유지 의무의 예외에 해당한다. 형사소송법(제112조)은 변호사가 ‘업무상 위탁을 받아 소지 또는 보관하는 물건으로 타인의 비밀에 관한 것은 압수를 거부할 수 있다’고 비밀유지권을 보장했지만, ‘그 타인의 승낙이 있거나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김앤장 압수수색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는 변호인의 비밀유지 의무와는 다른 차원에서 로펌에 큰 타격을 준다.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검찰에 사무실이 털린 변호사에게 앞으로 누가 사건을 의뢰하겠는가. 외국 클라이언트(의뢰인)들이 많이 찾는 김앤장이 검찰에 압수수색당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에 앞으로 김앤장의 영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뒤 20여일이 지나 한 언론사에서 확인 요청이 들어왔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 오히려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검찰에서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은 김앤장의 대법원 로비라는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변호인의 비밀유지권 침해와 전혀 관계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와 같은 의견서, 삼각 커넥션의 결과?

검찰의 강경 모드는 김앤장의 ‘업보’와 관련 있어 보인다. 검찰이 겨냥한 곳은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했던 한아무개(68) 변호사와,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곽병훈(49)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이들은 양승태 사법부의 강제징용 재판 개입에 깊숙이 관련됐다.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 2015~2016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대법원 집무실과 음식점 등에서 수차례 만났다. 검찰은 한 변호사가 임종헌(구속)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만나 강제징용 재판 전략을 공유한 뒤, 다시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나 이를 확인한 것으로 판단한다.

김앤장은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을 대리해 낸 상고이유서에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일본 아베 정권의 논리와 똑같은 주장을 했다. 김앤장은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원심 판결(2012년 5월)은, 정부가 체결한 조약(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취지와 내용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단으로 조약의 효력을 신뢰하고 대한민국에 경제적 투자를 한 피고와 같은 외국 기업에 사후적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아베 정권의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외무상은 2015년 7월 중의원 특별위원회에서 “국제노동기구 조약을 보면, 전시 중 징용은 강제노동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또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개인 청구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에 활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김앤장은 “정부가 일본과의 협정을 어기는 것은 국가적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외교적 훈수’까지 뒀다. 이는 통상적 변론 활동을 넘어서는 것으로 법조계에서 “김앤장의 오만함을 드러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앤장이 외교적 문제를 언급한 부분은 당시 외교부가 대법원에 낸 의견서와 내용이 같았다. 외교부는 2016년 11월 대법원에 “(배상 판결시)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의견서를 냈다.

80여 판사, 참고인과 피의자 사이

2016년 5월17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모임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판매사 옥시를 변론한 김앤장 사무실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검찰은 이 의견서가 양승태 사법부-외교부-김앤장으로 이어지는 ‘삼각 커넥션’이 작동한 결과로 판단한다. 당시 김앤장에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고문으로 있었다. 검찰은 유 전 장관이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강제징용 소송 관련 의견을 공유한 것으로 본다. 수사팀은 최근 유 전 장관을 소환해 조사했다. 두 전직 외교 장관은 2006년 외교통상부 차관과 차관보로 함께 일했다. 윤병세 전 장관도 2013년 외교부 장관이 되기 직전까지 김앤장 고문을 지냈다.

김앤장은 2016년 서울중앙지검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 때도 소속 변호사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숨기고 판 옥시를 대리했던 변호사였다. 옥시에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 대학교수가 보고서 조작에 김앤장 변호사도 가담했다고 폭로했다. 교수는 이 변호사가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경고한 실험 결과를 빼고 유리한 결과만 의견서에 담았다고 주장했다. 김앤장은 앞서 검찰에 “사망자의 폐 손상 원인이 봄철 황사와 꽃가루 때문”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김앤장은 피해자 가족들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수사팀은 이 변호사를 무혐의 처분했다. 여론의 비난이 검찰로 쏟아질 우려가 있는데도 김앤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법 농단 수사팀이 김앤장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앞으로 진행될 재판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 국내 최대 로펌 압수수색은 이미 기소된 임 전 차장을 비롯해 앞으로 기소될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피고인이 검찰이 작성한 각종 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할 경우, 지금까지 검찰에 참고인으로 소환된 80여 명의 판사들이 다시 법정에 나와 증언해야 한다. 이로 인한 재판의 장기화는 구속 피고인의 석방(구속기간 만료) 등으로 검찰의 공소유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검찰로서는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사법 농단에 등장하는 재판에 관여한 판사들은 거의 빠짐없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수사 협조 여부에 따라 법적인 신분이 정반대로 갈렸다고 한다. ‘검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면 참고인, 그렇지 않으면 피의자가 되는 분위기’였다는 게 조사를 받은 판사들의 전언이다. 한 고위직 판사는 “참고인 조사를 받은 판사들은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나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되면 피고인이 된 선배들과 진실 공방을 벌여야 하는 어색한 상황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변호인은 법정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이 위협받는 것은 사법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위험한 일이다. 재판의 정당성은 검찰과 변호인이 법정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김앤장이 미운털이 박힌 탓에 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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