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욕설·따돌림·폭행..18세 다문화 소녀 "학교가 지옥 같았다"

위성욱 2018. 12. 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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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새 다문화 자녀 3배로 늘었는데
피부색 다르다고 '초코파이' 놀림도
작년 학교 그만둔 아이 1278명
피해자 36%는 "그냥 참고 넘긴다"
교사 등 중심 상담시스템 늘려야


다문화 초·중·고생 12만 시대

학교 폭력을 당한 다문화 가정 자녀 이모양과 아버지가 중앙일보 기자를 만나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학교에 가면 나에게만 적용되는 벌이 있다. 수업시간에 졸거나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받는 벌이다. 교사가 아니라 같은 반 친구들이 나에게 주는 벌이다. 그 애들은 오전 11시50분 점심시간이나 오후 2시40분 청소시간에 나를 다목적실로 데려간다. 거기서 옷을 벗기고 때리기도 한다. 싫다고 저항해 봤지만 2명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떤 날은 매직으로 몸에 낙서도 했다. 옷도 숨겼다. 그런 날은 옷을 찾느라 수업에 늦게 들어가 선생님에게 눈총을 받았다. 다목적실에 머무르는 시간은 너무나 괴롭고 수치스러웠다. 하교 후에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밥을 먹으면 돈은 항상 내가 냈다. 그 돈을 마련하려고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렇게 사느니 내가 없어지면 다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극단적인 마음을 먹은 적도 여러 번이다.’

필리핀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모(18)양이 자신이 겪은 학교폭력을 직접 적어 취재진에 넘겨준 글이다. 이 양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처음엔 신발을 던져 주워 오라는 식의 괴롭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세져 나중에는 주먹으로 맞았다. 이양은 그동안의 학교생활에 대해 “나에겐 지옥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양이 사는 강원 지역의 경찰은 지난 10월부터 이양이 당한 학교폭력을 수사 중이다.

다문화 가정 자녀 이모양이 자신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담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글. [박진호 기자]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 4만6954명이던 다문화 가정 자녀(만 7~18세)는 올해 12만2212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결혼이주민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가 늘면서 다문화 가정 자녀도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다문화 가정 자녀도 적지 않다. 지난달 13일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 옥상에서 동급생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다 추락사한 중학생도 다문화 가정 자녀였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발표한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이하 여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9~24세 다문화 가정 자녀 6만1812명 중 5.0%가 학교폭력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로 응답한 피해 유형을 보면 협박·욕설(65.1%)이 가장 많았다. 이어 집단 따돌림(34.1%), 인터넷 채팅·e메일 등으로 욕설과 비방(10.9%), 손·도구로 폭행이나 감금(10.2%), 돈 등을 빼앗기는 갈취(9.5%), 심부름 등 괴롭힘(5.3%), 성희롱 및 성추행·폭행(2.8%) 등의 순이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부분의 경우 한국말이 서투르고 외모가 다르다는 것에서 괴롭힘이 시작된다. 파키스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A군(18)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검은 피부색 때문에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친구들은 그를 ‘튀기·초코파이·깜둥이’로 불렀다. 당시 같은 반에 40명이 있었는데 그중 4~5명이 그를 괴롭혔다. 쉬는 시간이면 아무 이유 없이 발로 차고 놀렸다. A군은 “오전 9시 등교해 오후 2시 하교 때까지 친구들에게 들은 말은 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기도 수원시의 한 유스호스텔에서 수학여행 온 6학년 남학생이 같은 반 다문화 가정 자녀 박모(13)군을 향해 장난감 화살을 쏴 실명하게 한 사건도 있었다. 박군은 현재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고 아직도 통원치료를 받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학교폭력을 당해도 이런 고민을 부모나 친구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 여가부 실태조사 결과 학교폭력을 당한 다문화 가정 학생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6.1%가 적절한 대응 없이 참거나 그냥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가난하거나 주변에 도와줄 이가 없어 학교폭력을 당해도 혼자 속앓이만 한 것이다.

수년 전 귀화해 경남 김해에 사는 베트남 출신 김모(40·여)씨는 “한국말이 서툴러 아이들의 숙제도 못 도와주고 가정통신문 등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준비물을 빠뜨린 경우도 있다”며 “맞벌이로 바빠서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을 못 쓴다”고 말했다. 일부지만 교사들의 차별적 시선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다문화 가정 학생 중에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2013년 572명이던 학업 중단 다문화 가정 자녀는 지난해 1278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학업을 그만둔 이유는 학교생활 부적응이 가장 많다. 이어 학교생활 및 문화가 달라서 또는 학교 공부가 어려워서 등의 이유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문화 가정 자녀가 학교폭력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가난하며 권력이 없고 돌봐줄 사람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약자여서다”며 “교사 등이 중심이 돼 이런 아이들의 어려움을 상담하거나 해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학교와 사회 차원에서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화천·대구=위성욱·박진호·백경서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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