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탈선 KTX 승무원 "안전활동 의무 아닌데 구조하느라 흙범벅"

2018. 12. 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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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사고 뒤 나흘 만에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
승무원들 코레일 자회사 소속.."안전업무 교육 못 받아"
담당 아니지만 위급 상황에 수행 안 하면 처벌
8일 오전 7시35분께 강릉선 남강릉 부근에서 198명의 승객을 태운 채 탈선한 케이티엑스 열차 4호차 내부 모습. 김경민씨 제공.

강릉발 서울행 케이티엑스(KTX) 806호 열차 탈선 사고가 난 지 나흘만인 12일, 열차에 탑승한 유일한 승무원인 김아무개(29)씨가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코레일의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인 김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위급 상황에 대처할 매뉴얼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김씨의 말과 김씨가 겪은 상황을 종합해 사고 당시를 재구성해봤다.

지난 8일 오전 7시35분께.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김아무개(29)씨는 열차에 오르자마자 첫 업무인 특실 승객들 서비스를 마쳤다. 간단한 스낵과 생수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열차 뒤쪽인 8호차까지 ‘순회’한 뒤 1호차로 돌아가려던 순간, 열차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왜 이러지. 급정거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열차가 갑자기 덜컹덜컹하면서 양옆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찰나가 지났을까, 열차는 왼쪽으로 고꾸라지듯 확 휘었다.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케이티엑스 806호 산천 열차가 탈선한 순간이다.

앉아있던 승객들과 달리 3호차에 서 있던 김씨는 열차 탈선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았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김씨는 3호차 승강문 쪽으로 빠르게 튕겨 나갔다. 문에 부딪혀 어깨와 허리, 다리 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왔다. 그러나 몸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사실 저도 넘어지고 열차가 기울었으니까 무섭긴 했지만 제 안위를 챙길 겨를은 없었어요. 기어서라도 고객들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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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몸은 승강문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사고 직후 객실 안 풍경은 ‘아수라장’이었다. 복도에는 음료들이 쏟아지거나 엎어져 있었고, 승객들은 의자와 벽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김씨는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일어나 3호차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아 안내방송을 했다. “뒤쪽 호차로 순회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안내방송을 했어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탈선으로 앞쪽이 절단돼서 그런지 안내방송이 모든 고객에게 들리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이후에는 뒤쪽으로 이동하면서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일단 3호차 고객님들한테는 바로 나가면 열차팀장이 있으니까 대피에 도움받을 수 있다 설명해 드리고 직원이 없는 뒤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직원이 열차팀장과 저 둘 뿐이다 보니 승객을 대피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8일 오전 7시35분께 강릉선 남강릉 부근에서 198명의 승객을 태운 채 탈선한 케이티엑스 열차에 탑승했던 군인들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김경민씨 제공.

열차 안에 직원은 두 명뿐이었지만, 다행히도 군인들이 열차에 타고 있었다. 김씨는 당시 도움을 준 군인들에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침 그 열차가 공군분들이 휴가 나오는 열차여서, 각 호차마다 군인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뒤쪽 호차로 이동해 방치되어 있을 고객들을 챙겨야 해서 군인분들에게 노약자랑 부상자를 우선 대피시켜주실 수 있느냐고 부탁했어요. 군인분들이 흔쾌히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휴가를 가던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소속 군인들은 ‘안전요원’이 되어 2명에 불과한 케이티엑스 열차 안 직원들의 빈자리를 메웠다.

몸도 온전치 않은 상태인 데다 열차가 크게 기울었기 때문에 한 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김씨는 꾸역꾸역 뒤로 나아갔다. “벽이나 봉을 잡지 않으면 조금도 걷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뒤쪽으로 최대한 빨리 가려고 했는데 걷는 것도, 객실 문을 열기도 쉽지 않았죠.” 김씨는 통로에서 객실 문을 향할 때 거의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하면서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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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은 안전업무에서 배제됐다

탈선 사고가 난 이후 승객 구조에 케이티엑스 열차 승무원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사고 당시를 돌아보면, 그들은 ‘보이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었고, 더군다나 승무원은 체계화된 안전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이날 다친 몸을 이끌고 구조활동에 나선 김씨는 사실 안전업무 담당이 아니다. 김씨와 같은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아닌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직원들이다. 코레일은 승무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분리하기 위해 본사 직원의 ‘안전업무’와 자회사 승무원의 ‘승객서비스’ 업무를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았다. 사고 열차 안 2명의 직원 중에서도 안전업무 담당은 열차팀장 1명뿐이었다.

그래서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은 승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 소속 승무원들에게 안전업무에 대해 ‘지시’할 수 없다. 다만 ‘협조’는 구할 수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열차팀장들에게는 ‘지시가 아닌 협조를 구하는 투로 말하라’는 지침이 내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김씨는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안전업무를 맡은 본사 직원과 함께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안전 교육을 받더라도 체계화된 매뉴얼을 습득할 기회도 없었다. 올 초에 비상 사다리를 설치하는 법에 대해 배웠고, 분기에 한 번씩 동영상 강의를 들을 뿐이다. “저희는 안전업무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코레일 직원들이 받는 디테일한 안전업무에 대해서는 솔직히 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같은 회사 소속이고 함께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았으면 보다 원활하게 구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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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가 아니어도 처벌은 받는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안전업무의 담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지 않는 승무원들이 위급 상황 시 제대로 안전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받는다. 철도안전법을 보면, 열차 사고 시 승객을 대피시키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승무원은 처벌받을 수 있다. 2015년 7월 개정된 ‘철도안전법’ 제40조2항은 ‘여객승무원이 철도사고 등의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국토부령으로 정한 안전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제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정된 법률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선장부터 선박 안전관리의 핵심 보직인 갑판부 선원까지 전체 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1년~6개월의 계약직이었는데, 한국 사회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승무원에 대한 의무만 강화하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안전업무에 대한 의무는 없는데 책임은 있고, 협조는 해야 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모순된 게 있죠.”

8일 오전 7시35분께 강릉선 남강릉 부근에서 198명의 승객을 태운 채 탈선한 케이티엑스 열차의 모습. 김경민씨 제공.

기울어진 열차 안을 곡예 하듯 이동하고, 구조활동을 하며 돌아다니느라 구두가 흙투성이가 된 김씨는 승객을 모두 대피시킨 뒤에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사고 열차 승객들을 태우고 진부역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큰 사고가 나서 죄송하다”고 울면서 사과했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대체 열차에도 올라 사고 열차 승객들을 찾아다니면서 한 명 한 명의 안부를 확인하고 사과했다. “저는 열차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더 놀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일이 다니면서 아프신 곳이 있다면 치료받으시고 코레일 쪽에 배상받으시라고 안내해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았어요.”

김씨는 사고 당시 충격으로 다친 어깨를 고정하려 부목을 댔고, 허리와 다리 관절 쪽에 이상이 발견돼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이다. 김씨는 사고 당시를 계속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침착하게 대응해줬던 승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고 후에 그때 열차에 타셨던 고객이 오히려 제가 괜찮은지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날 열차에 타셨던 고객들이 무사하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큰 사고였음에도 침착하게 직원들의 말에 따라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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