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허기.. 난 글로 채운다
휴고·네뷸러·세계환상문학상 3관왕.. SF 소설집 '종이 동물원' 국내 출간
"외계인이 쳐들어오는 것에 비하면 의회에서 부딪히는 하루하루의 문제들은 아주 작게 느껴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 SF 작가 류츠신의 소설 '삼체'를 이렇게 소개했다. 남다른 규모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중국 SF는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엔 '삼체'를 미국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휴고상·네뷸러상·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켄 리우(42)가 있었다. 소설집 '종이 동물원'(황금가지)의 한국 출간을 기념해 이메일로 만난 켄 리우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허기를 채우려는 욕구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그의 소설은 역사와 철학, 과학기술을 아우르는 방대한 상상력으로 인간을 한없이 작게 만든다. 표제작 '종이 동물원'은 미국인 아버지와 그가 국제결혼 카탈로그에서 골라 미국으로 시집온 중국인 어머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선물 포장지로 접어준 종이 동물들은 마법처럼 살아 움직이며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리우는 "중국 문화나 미국 문화가 아닌 독자적인 이야기를 썼다"면서 "작가의 관점이 명확할수록 한층 더 보편적인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11세에 미국에 이민을 간 켄 리우는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이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변호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프로그래머, 변호사, 소설가 모두 규칙에 따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선 계산 법칙을 따라야 하고, 변호사의 계약은 사법제도를 따라야 하죠. 소설도 언어 규칙에 따라 정서와 감동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규칙의 본질에는 인간의 본성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기술 발전이 증폭시키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가상현실 장치로 여자들의 형상을 불러내 외도하는 아버지를 목격한다거나(시뮬라크럼), 데이트 상대부터 먹을 음식, 대화 내용까지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미래(천생연분)는 암울하다. 누구나 고민해볼 법한 윤리적 문제를 독특한 아이디어로 풀어내는 그는 SF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한다. "SF는 미래를 예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대신 SF는 대격변을 고찰할 어휘를 제공하죠.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고전 SF의 어휘들이 이제는 정치적인 시위나 논쟁에서 사용됩니다. SF는 우리가 더 많은 정신적 도구를 가지고 미래를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의 작품은 미래뿐 아니라 과거를 함께 들여다본다. 소설 곳곳에 동북아시아의 슬픈 역사가 짙게 깔렸다. 2차대전 일본 731부대의 희생자 유족을 과거로 돌려보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그리거나 중국 문화대혁명과 대만 2·28 사건,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까지 다룬다. 내년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평양성 전투를 다룬 단편이 실린 작품집이 국내에 번역될 예정이다. "한국 역사에는 이순신 장군의 무훈을 비롯해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사건들이 많아서 경외심을 갖고 공부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변명을 일삼는 이들에 맞서 선조의 고통과 희생을 기리는 노력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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