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장하준·장하석 교수 "소득주도성장은 임시방편 불과..왜 경제 체질개선 얘기는 안 하나"
우리 경제 어려운 근본적 이유?
휴대폰 이후 개척한 신산업 없어
주력산업 무너진 게 가장 큰 문제
한국 정부는 재벌 규제에만 갇혀
中에 쫓기고 신산업 개발 못해
장기투자 위해선 차등의결권 시급
장하석 "전 정권 사람이라고 순수과학자까지 몰아내니 황당"
[ 정인설 기자 ]
영국 케임브리지대 내 유일한 형제 교수인 장하준 경제학과 교수(55)와 장하석 과학철학 석좌교수(51). 관심사가 달라 늘 따로 공식석상에 섰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언론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최근 케임브리지대에 있는 한 강의실에서 런던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한국의 상황을 크게 걱정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와 과학 모두 정치 논리에 휘둘려 발전이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장하준 교수는 두 시간 동안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규제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한국 경제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로 진단했다. 동생인 장하석 교수는 “순수 과학자까지 이전 정권 사람이란 이유로 몰아내 황당하다”고 했다.
▶사촌형인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최근 연락한 적이 있습니까. (이하 장하준 교수 답변)
“없습니다. 장하성 교수가 10년 위라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같은 집안 사람인데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르냐고 하는데 그건 연좌제적 발상입니다. 공산주의자 집안이라고 모두 공산주의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회를 바꾸자는 생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른 것으로 보면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수십 년째 생각이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서로 논쟁하면 되는 것이지 변할 이유가 있나요. 진영 논리에 빠져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어떤 나라에서 좌파 정책으로 보는 게 다른 나라에선 우파 정책으로 인식됩니다. 한국에선 산업구조를 개편하자고 하면 우파정책으로 여기지만 영국에선 산업정책을 얘기하면 ‘빨갱이’라고 합니다. 1970년대 노동당 정부가 처음 시행했기 때문이죠. 또 복지국가를 처음 만든 사람은 보수정치가인 독일의 비스마르크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유럽에서도 복지정책하면 보수주의자로 봤는데 한국에선 여전히 빨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산업구조를 개편하면서 복지도 강화하자고 주장하면 좌파, 우파 모두 공격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은 소득 대비 소비를 말하는 소비성향이 높습니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이 단기적으로 좋은 부분이 있지만 대증요법입니다. 몸이 약해져 있으니 영양제 주사 하나 놔준 건데요. 영양제를 맞았으면 운동을 하고 식생활도 개선해야 몸이 튼튼해집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는 없는 게 문제죠. 최저임금 인상도 미국 사례만 보고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제대로 모른 채 시행한 정책 같습니다. 미국 자영업자 비율은 6%지만 한국은 25%입니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들이 그것을 흡수할 여력이 없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한국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빨리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때문에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진 것입니까.
“근본적으로 주력 산업의 중요한 일자리가 무너져 이렇게 된 것으로 봐야겠죠. 울산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20년간 투자를 안 하고 신산업 개발을 안 했습니다. 1990년대 개발한 휴대폰 이후 우리가 개척한 신산업이 있습니까. 1980년대 했던 조선과 자동차, 철강이 우리 주력 산업입니다. 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5%였는데 외환위기 이후 29%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설비투자는 반토막 났습니다. 경제 체질이 약해져 일자리가 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걸 최저임금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변죽만 울리는 소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국가 비상사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문제가 심각하고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력 산업이 모두 중국에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중국에 확실히 앞섰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반도체밖에 없습니다. 나노테크와 태양광, 퀀텀컴퓨팅 같은 분야에서는 중국이 한국은 물론 유럽 미국도 따라잡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빨리 따라올지 몰랐습니다. 2025년쯤 이런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벌써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런데 한국 정부는 재벌 규제에만 갇혀 신산업을 창출하지 못하고 우리 기업들은 투자를 못 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못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한국 기업의 경영진은 배당을 적게 하고 자사주 매입에 돈을 많이 쓰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주가가 떨어지고 해외 투기자본의 인수합병(M&A) 공격이 들어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워보겠다는 사람이 기업을 경영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이 장기 투자할 수 있게 한국 정부는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를 시행해야 합니다. 구글과 페이스북,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은 차등의결권으로 경영권을 방어합니다. 주식 수로 보면 마크 저커버그가 가진 페이스북의 지분율은 10%대지만 의결권 기준으로 보면 그의 지분율은 28.5%입니다. 칠레가 썼던 기탁금 제도로 해외 투기자본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투자금의 30% 정도를 기탁받아 1년 안에 빠져나가면 기탁금을 주지 않고 오래 보유하면 기탁금을 돌려주는 식이죠.”
▶한국에선 기업 경영권 보호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 특유의 재벌체제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지주사 형태의 군산복합체인 기업들을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패전 후 미국 군정이 일본의 지주사 체제를 금지시켰습니다. 한국은 이런 상황도 모르고 그냥 일본을 따라 지주사를 못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이 허용한 기업 간 주식 교차 소유도 금지해 한국 재벌들은 순환출자 형태의 지배구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국 정부는 빨리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라고 하고 기업들은 항변도 못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번에 청와대 정책실장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바뀌었는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분배가 잘못되고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 이렇게 된 게 아닙니다. 편의점 직원이 1000원 덜 받아 더 어려워진 것도 아닙니다. 20년간 투자를 안 해 신기술, 신산업이 없어서입니다. 주축 산업이 붕괴되면서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죠. 그런데 여전히 좌파는 최저임금 인상에 집착하고 우파는 규제 완화만 주장하는데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진영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현실을 보고 접근해야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유로 미국 정책을 그대로 가져와 쓰면 안 됩니다. 스웨덴과 독일, 싱가포르 같은 나라를 보면 모두 각자 상황에 맞는 정책을 썼습니다.”
(장하준 교수 인터뷰가 끝날 때쯤 장하석 교수가 도착했다. 이하는 장하석 교수 답변)
▶한국 대학이나 정부와 같이 하는 일이 있습니까.
“과학교육계와 비공식적으로 여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북대와 한국 과학기술사를 집대성하는 사업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서울 홍릉에 있는 고등과학원에서도 한 학기 동안 공동 연구를 했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도 협업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와 함께하는 일은 없습니다. 제 전공이나 과학교육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정부가 과학교육에 무관심하지만 DGIST에는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DGIST 총장이 지난달 물러났죠. (손상혁 전 DGIST 총장은 연구비 부당 집행 등의 이유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잇따른 감사를 받다가 지난달 사표를 냈다. 과기부는 또 전 DGIST 총장이던 신성철 KAIST 총장을 연구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분은 학부 전공을 없애고 모든 학생에게 융합교육을 시켰죠. 혁신하고 싶은 생각에 수십 년간 몸담았던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국에 왔는데 황당하게 그렇게 됐습니다. 이분이 하면 ‘과학교육이 잘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지역구에 있는 학교의 총장이란 이유로 이렇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 시험을 보면 영국 학생들의 성적이 한국보다 나쁩니다. 그래도 케임브리지대에서만 노벨상 수상자가 90명 넘게 나왔습니다. 상당수가 외국인입니다. 한국도 올림픽 선수 양성하듯이 일부 소수만 강훈련시키고 일반 국민은 과학을 배움으로써 자연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학문화가 형성되고 저변이 두터워집니다. 사회 전체가 좋아져야 훌륭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오려 할 것입니다.”
■약력
장하준 교수
△한성고 졸업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박사
△1990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2005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5년 최연소 레온티에프상 수상
장하석 교수
△미국 노스필드 마운트허먼고 졸업
△캘리포니아공대 물리학과 졸업
△스탠퍼드대 과학철학 박사
△1995년 런던대 과학철학과 교수
△2006년 러커토시상 수상
△2010년~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장하준·장하석 교수는
케임브리지大 유일 형제 교수…장하성 前 실장이 사촌형
장하준 교수는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였으며 박사학위를 받기 전이었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절충안인 산업정책 이론을 구체화한 영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로손의 제자다.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상(2003년), 경제학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에프상(2005년)을 최연소로 받았다.
장하석 교수는 미국 10대 명문고로 꼽히는 노스필드 마운트허먼고를 2년 만에 수석졸업한 뒤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읽고 감명받아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8세 때인 1995년 런던대 교수로 임용된 뒤 2004년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석좌교수로 초빙됐다. 2006년 30대 나이로 과학철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받았다.
두 사람의 부친은 광주 출신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이 각각 사촌형, 사촌누나다.
케임브리지=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모바일한경 구독신청]
한국경제 채널 구독하고, 선물 받자!!<이벤트 자세히 보기>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