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인간이 만든 재앙 '플라스틱의 역습'
닷새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해변에서 죽어가던 바다거북이 동물병원으로 옮겨졌다. 숨을 못 쉬던 거북을 보고 수의사들은 폐 감염이나 폐렴을 의심했지만 X-ray 촬영 결과는 뜻밖이었다. 거북의 목구멍에 비닐봉지가 꽉 끼어 있던 것이다. 지난달 말 영국 해협에서는 한글이 선명하게 적혀있는 스프레이 윤활제 용기가 발견됐다. 현지 매체들은 "9천5백 ㎞를 건너온 한국 쓰레기"라고 전했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산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 중단과 반환을 촉구하는 시위가 있었다.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이 썩지도, 재활용되지도 않고 지구를 떠돌며 국가간 갈등을 조장하고 해양 생명체를 죽이고 있다. 커피 매장에 등장한 종이 빨대를 보고 신기해하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플라스틱의 역습'이 거세지고 있다.
■ "한국산 쓰레기 반환하라!" ... 대체 무슨 일이?
지난달 28일 마닐라 중심가 필리핀 관세청 앞에 "빠른 우편, 한국으로 반송(Return to Korea)" 등의 피켓을 든 현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환경단체가 주도한 시위로 '한국발 폐기물의 신속 반환'과 '폐기물 밀반입 업자 고발' 등을 요구했다. '한국의 재활용 업체가 플라스틱 쓰레기 5천 톤을 무단으로 필리핀으로 보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온 데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플라스틱 감당 안 되는 한국, 처리 책임은 다른 나라에 넘겨'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낸 직후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해당 업체는 필리핀 환경부에 '플라스틱 원료'를 수출하겠다고 신고해놓고 폐기물 더미를 실어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필리핀은 베트남, 태국 등과 더불어 다른 국가들로부터 재활용 쓰레기를 수입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동남아 국가들이 플라스틱 쓰레기의 주요 수입국으로 부상한 것은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지난해 '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 중단을 선언한 여파가 크다. 중국의 수입 중단 조치로 당시, 미국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도 쓰레기 대란을 겪은 바 있다.
플라스틱 소비대국들이 눈을 돌린 중국의 대안이 바로 동남아 국가들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재활용 기술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밀려 들어오자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쓰레기로 뒤덮인 마을 하천, 쓰레기 더미 옆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흔한 광경이 됐을 정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베트남의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량은 2016년 34만 톤에서 지난해 55만 톤, 말레이시아는 29만 톤에서 45만 톤, 인도네시아는 12만 톤에서 20만 톤으로 폭증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태국과 베트남 정부는 중국처럼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 등이 규제에 나서자 최근 상대적으로 필리핀 쪽으로 쓰레기가 더 몰렸다고 한다.
■ 해마다 천 톤 넘게 '바다로' ... '캘리포니아 4배' 크기 쓰레기섬
플라스틱은 만들기는 참 쉽다. 공장에서 빨대 하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5초에 불과하지만 썩어 없어지는 데는 최소 50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다 쓰고 나면 일단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재활용하지 않는 이상 다른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버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3억 3천만 톤이다. 이 중 25%인 8천 톤 정도는 포장재라고 한다. 포장재 플라스틱 중 80% 이상은 말로만 '재활용'일 뿐 소비자 손에 들어가자마자 버려진다. 이렇게 돌고 돌다 결국 바다로 던져지는 쓰레기가 연간 천 2백여 톤에 달한다.
바다로 버려진 전체 플라스틱 조각 수는 약 5조 천억 개로 추산된다. 기약 없이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류가 순환하는 지점(자이어, Gyre)에서 모여 거대한 섬을 형성하기도 한다. 1997년 미국의 요트선수 찰스 무어는 요트 횡단 도중 놀라운 광경과 맞닥뜨렸다. '대(大)태평양 쓰레기장'을 의미하는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GPGP는 약 1조 8천억 개의 플라스틱 조각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어린이용 게임기와 페트병, 버려진 어망부터 맨눈으로 식별되지 않는 마이크로비즈(지름 5mm 미만 미세플라스틱)까지 다양하다. 뉴욕타임스는 GPGP가 차지하는 면적이 캘리포니아주(약 42만 ㎢)의 4배인 160만㎢에 달한다고 전했다.
대서양에도 50만㎢ 면적의 쓰레기 섬이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수심 만 미터가 넘는 마리아나 해구에서도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발견되곤 했다.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은 이렇게 바다를 오염시키는 환경 재앙일 뿐 아니라 바닷속 생물들에게도 치명적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매년 바닷새 100만 마리와 바다거북 10만 마리가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피해를 보는 해양 생물이 267종에 달한다"고 밝혔다.
■ 다음은 인간 차례? ... '미세플라스틱', 인체 위협
바다에 침투한 플라스틱 때문에 신음하는 동물들은 인간에게 거친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3년 전 코스타리카 앞바다에서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힌 채 구조된 바다거북이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 영상이 공개된 것을 계기로 플라스틱 빨대 퇴출 선언이 이어졌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해변에서 죽은 향유고래 뱃속에서는 자그마치 6㎏에 달하는 플라스틱이 쏟아져 나왔다. 플라스틱 컵 115개와 페트병에 슬리퍼까지 나왔다.
이런 장면들을 보고 인간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걸까? 세계 각국이 플라스틱 사용 자제에 요란스럽게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1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퇴출하기로 했고 영국은 이르면 내년부터 플라스틱 빨대와 면봉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과 접시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벨기에는 일회용 면도기에 독일은 비닐봉지에 환경부담금을 부과했다. 미국의 경우 시애틀이 가장 적극적이다. 올해 7월부터 일반 음식점의 플라스틱 빨대와 식기 사용을 금지했다. 아프리카 케냐는 비닐봉지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다. 지난해 8월부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위반 시 최대 4천2백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고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역습'은 이미 인류에게도 가해지고 있는지 모른다. 미세플라스틱, 마이크로비즈가 그것이다. 그린피스는 지난 10월 "전 세계 21개 국가에서 판매되는 소금을 분석한 결과 90% 제품에서 마이크로비즈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대기에 미세먼지가 떠다니듯이 바닷속에도 광범위하게 마이크로비즈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린피스는 마이크로비즈가 홍합이나 굴 같은 인간이 즐겨 먹는 해산물 170여 종에서 검출됐다는 보고서도 낸 바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나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등은 소금이나 바다 생물에 함유된 마이크로비즈가 인체에 들어와 쌓이면 암이나 불임 등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꾸준히 해왔다.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민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우리나라가 132.7㎏으로 세계 1위다. 다음 미국(93.8㎏), 일본(65.8㎏), 프랑스(65.9㎏), 중국(57.9㎏) 등의 순이다. 지금도 어마어마한 양으로 생산되고 있을 플라스틱은 앞으로 최소 5백 년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당장 우리 눈에서만 사라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 "한국으로 다시 갖고 가라"는 필리핀 사람들의 감정 섞인 외침이든 '마이크로비즈'든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당장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절실한 이유다.
송영석 기자 (sy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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