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파이팅은 일본에서 온 표현" 스포츠 용어, 바로 쓰자

한준 기자 입력 2018. 11. 26. 1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바람직한 스포츠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 미디어 포럼을 주최한 정희돈 한국체육기자연맹 회장 ⓒ한국체육기자연맹

[스포티비뉴스=프레스센터, 한준 기자] "파이팅도 일본의 화이토가 기원이다. 야구라는 말도 일본에서 온 것이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이 26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바람직한 스포츠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 미디어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체육계에 만연한 왜색 표현, 잘못된 용어사용 등으로 오염된 우리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를 정착시키기 위한 스포츠 미디어의 임무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언론진흥재단(KPF), 국민체육진흥공단(KSPO), 대한체육회가 후원하고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케이토토, 위피크, 국기원이 이날 행사를 협찬했다.

한국 체육 언론의 정신은 체육기자로는 최초로 일제시대에 옥고를 치른 이길용(1899~?) 선생으로부터 이어져왔다.

손기정 선생의 마라톤 금메달 당시 일장기 말살사건의 주역인 이길용 선생은 우리나라 체육기사의 개척기에 민족적 견지에서 우리의 독특한 체육용어를 제정하기를 주장했고, 신문 지면에 실천한 최초의 기자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일본식 표현과 용어가 만연하다.

이날 포럼은 홍윤표 OSEN 논설위원이 '스포츠 기사에 녹아든 일본식 표현을 바꾸자', 김동훈 한겨레 스포츠부장이 '스포츠 영어의 한글식 표기', 정희창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자'를 주제로 진행됐다.

홍 위원은 스포츠 속의 일본어 찌꺼기를 반드시 몰아내야 한다며 "사실 야구(野球)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이다. 야구처럼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대체하기 힘든 일본어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달인(達人)’이라는 표현은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으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만 일본국어사전 『다이지센(大辭泉)』 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이다.

게임이나 경기로 순화된 '시합'이라는 표현은 일선 기자들의 노력으로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선수들이 기를 모을 때 많이 쓰는 '파이팅(fighting)'도 "일본식 조어인 ‘화이토’에서 연유된,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용어"이로 지적했다.

홍 위원은 이 외에 ‘계주(繼走. けいそう)'를 이어달리기, ‘역할(やくわり)’은 맡은 구실이나 임무, 소임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기라성(綺羅星)'은 일본어로 ‘반짝반짝(きらきら)’에 별(星)을 붙여놓은 조어로 '쟁쟁한', '한다 하는'으로 고쳐 쓰자고 했다.

이제와서 바꾸기 어려울 정도로 통용되고 있는 ‘야구(野球)’도 일본의 조어다. 한반도에 야구를 처음으로 전파한 것은 필립 질레트라는 미국인 선교사였지만 본격적인 보급과 확산에는 재일 한국유학생들과 일본인들이 기여했다.

■ 대체 불가능한 '야구', 한국 최초 표현은 타구, ‘野球’가 아닌 ‘野毬’도 한국식■ 국위선양, 기라성, 계주…일본이 녹아있는 표현, 우리식으로 바꾸자■ 남북 스포츠 용어 통일, 성차별-인종차별-비하적 표현도 점검해야■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목적 없이 일본에서 건너온 표현

한국 최초의 야구기사는 『황성신문』 1906년 2월 17일자에 ‘타구(打球)’로 표기했다.

야구도입 초창기에 『황성신문』 이나 『대한매일신보』에는 ‘野球’가 아닌 ‘野毬’나 ‘打球’, ‘擲打’라는 표기로 기사를 실었다. 3가지 표기 모두 ‘baseball’의 특징을 잘 나타낸 ‘조어’였다.

여러 표기 가운데 ‘野毬’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球’ 아닌 ‘毬’자를 써서 ‘野毬’로 표기한 사례는 1909년과 1910년 사이의 『황성신문』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같은 ‘공 구’자이지만 ‘毬’쪽이 실로 만든 공의 뜻을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홍 위원에 따르면 ‘국위선양(國威宣揚)’은 ‘일본(메이지정권)을 세계 만방에 알리자’는 뜻을 지녔다. ‘국위(國威)’는 ‘나라의 권력이나 위력’, ‘선양(宣揚)’은 ‘명성이나 권위 따위를 널리 떨치게 함’이라는 뜻이다. 그 배경을 안다면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

김동훈 한겨레 부장은 남북 체육교류 과정에 있었던 선수들 간의 의사소통 문제를 짚었다. 지난 8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구성된 여자 농구 남북 단일팀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카누 단일팀, 코리아오픈 탁구 세계선수권 단일팀은 서로 다른 용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남북 아이스하키 용어 아이스하키 - 빙상 호케이스케이팅 - 앞으로 지치기블락샷 - 뻗어막기골리 - 문지기슛 - 쳐넣기패스- 연락

*남북 탁구 용어러켓 - 판데기서브 - 쳐넣기리시브 - 받아치기사인 - 표시스매싱 - 타격

*남북 농구 용어리바운드 - 판공잡기자유투 - 벌넣기덩크슛 - 꽂아넣기어시스트 - 득점연락더블드리블 - 몰기실수

*남북 카누 용어카누 - 커누드러머 - 북잡이패들러 - 노 젓는 사람스틸러 - 키잡이스타트 - 출발하겠습니다

▲ (좌측부터) 정희창(성균관대 교수), 홍윤표(OSEN 논설위원)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김동훈(한겨레 스포츠부장), 한원상(한국영상기자협회장). ⓒ한국체육기자연맹

끝으로 정희창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스포츠 중계 및 보도에서 적절하지 않은, 불필요한 여성 표현(예/ 미녀 궁사, 미녀 스타, 엄마 검색, 상남자 등), 인종 차별적 용어(예/ 하프코리안), 불공정, 차별 언어(예/ 용병, 토종), 군사 용어(예/ 스커드 미사일, 갈색 폭격기, 융단폭격), 외래어(예/ 뎁스, 샤우팅), 과도한 외모 표현(예/ S라인, 얼짱, 명품복근) 등을 지양하고 대안 표현,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세 명의 발표자와 김학수 한국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을 중심으로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는 언론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올바른 스포츠 언어 사용을 위해 제언했다.

김학수 소장은 "최선을 다하다는 말은 안쓰는게 최선이다. 최선을 다 안하는 사람이 없다. 목적 없는 용어"라고 했다. 홍 위원은 "일본에서 잇쇼켄메이라는 말 쓴다. 최선을 다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다. 선수들이 흔히 쓴다. 승부라는 말도 일본식 표현이다. 쇼부. 진검을 붙인 진검승부도 신케이쇼부라는 명백한 일본어다. 다른 표현으로 얼마든 할 수 있다"며 일본에서 넘어와 생각없이 쓰는 말들을 지양하자고 강조했다.

포럼을 주최한 한국체육기자연맹 정희돈 회장은 "이 자리가 향후 한국 스포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미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며 “스포츠미디어 종사자들이 아름다운 우리말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는 잘못된 표현들을 없애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길잡이로 나서자"고 제안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조재기 이사장도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문을 연 뒤 "흔히 사용하는 '파이팅'이라는 구호는 무서운 말이다. 일제시대 가미카제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 외쳤던 말에서 유래된 것이 어느덧 우리가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신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단어라면 과감하게 버리고 가야 한다"고 화답했다.

대한체육회 김보영 홍보실장은 “이번 포럼을 계기로 대한체육회의 각종 행사에 ‘파이팅’ 구호부터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기 위해 고민하고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은 이후 자료집 제작 배포 등을 통해 올바른 스포츠 용어를 사용하고 전파하는데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