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아현동 화재 구멍 뚫린 통신안보]백업체계도 없는 거점·지하엔 소화기 뿐..'말로만 IT한국'

강동효 기자 2018. 11. 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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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왜 이렇게 커졌나
통신망 관할범위 넓은 A~C등급만 백업시스템 의무화
연소방지설비도 지하구 500m 이상인 곳만 설치 규정
정부, 종합 점검후 내달말까지 재발방지조치 마련 계획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지사 통신구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화재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서울경제] 지난 24일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지사는 통신망 관할범위가 가장 좁은 D등급의 시설물이었지만 통신장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났다. 국민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시설물이지만 관할범위가 좁다는 이유로 백업 시스템이 완전히 구축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시설물은 또 광케이블이 밀집된데다 사람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인데 소화기만 덩그러니 비치돼 있는 등 방재설비와 소방규정도 지나치게 허술해 피해를 키웠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T에 따르면 KT 아현지사는 전국의 주요 통신국사(통신망을 관리하는 거점) 가운데 D등급으로 분류됐다. 통신국사는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정부가 A·B·C·D 등 4개 등급으로 나누는데 D등급은 중요도가 가장 떨어지는 급수다. 현재 A~C등급은 통신망 손상 시 백업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이원화돼 있지만 D등급은 의무조항이 없어 대다수가 백업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성목 KT 사장은 이와 관련해 “KT 아현국사는 D등급 국사로 백업 체계가 안 돼 있다”며 “백업에는 상당히 많은 투자가 수반되기 때문에 아직 만들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통신망 관할범위가 광역 범위를 넘어서는 서울 혜화지사와 구로지사는 이번 같은 물리적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즉시 백업 시스템이 가동되지만 아현지사는 서울의 2개 구 정도에 국한돼 백업 체계가 완성돼 있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백업 시스템의 부재가 전날과 같은 통신대란을 불러온 만큼 국가적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KT 화재로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 수십만명의 시민들과 소상공인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며 “백업 시스템을 필수적으로 구축하지 않아도 되도록 정부가 규정했다면 차후 이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D등급에도 백업 시스템을 갖추도록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관련 법규에 따라 재점검을 해보겠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주요 망에 대해서는 백업 체계를 갖추도록 하지만 모든 망에 대해 이를 강제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어 통신사의 자율성에 맡겨놓았다”며 “D등급은 중요도가 떨어지는 국사인데 이번 사태를 바탕으로 조치할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할 부분은 고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화재는 또 광케이블이 밀집된 지역의 방재시설이 지나치게 허술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KT 아현지사는 통신설비가 집중된 국사였지만 소화기만 비치돼 있을 뿐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았다. 현행 소방법은 전력이나 통신사업용 지하구가 500m 이상인 경우에만 스프링클러 등 연소방지설비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현지사 지하구는 500m 미만이라 방지설비 설치 의무가 없다. 이를 두고 통신회선으로 전송하는 서비스와 트래픽 양이 급증한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전력구나 통신부 내부에 설치된 케이블은 한국전력공사와 KT 등의 자체 내규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며 “명확한 관리 주관부처가 없으니 유지·보수나 안전진단 등을 할 수 있는 제도도 미비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간시설 및 산업단지 공동구 등을 포함하는 일원화된 지하구 안전관리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지하구 설계 단계부터 구조물과 소방시설의 기능이 서로 극대화될 수 있도록 명확한 화재안전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하 깊숙한 곳의 밀집된 설비에 화재가 발생하자 KT 측도 통신망 복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KT는 24일 오후9시30분께 소방 당국이 화재 진압에 성공하자 오후11시께부터 안전장비를 착용한 직원들을 투입해 통신망을 복구하려 했다. 하지만 소방 당국이 안전상의 이유로 진입을 허용하지 않아 무산됐다. 이 때문에 케이블을 지하 통신구 대신 외부에서 건물 내 장비까지 연결하는 작업을 하느라 복구에 시간이 더 소요됐다. 방재시설을 갖춰 화재를 조기 진압했다면 복구 속도도 현재보다 빠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이날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통신구 복구를 적극 지원하고 피해국민 보상을 위한 조치를 하기로 했다. 민원기 과기정통부 제2차관 주재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 정부는 “통신망 복구를 신속히 완료하고 피해보상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관계부처 및 통신사업자와 함께 중요 통신시설 전체를 종합점검하고 화재방지시설 확충 등 체계적인 재발 방지 조치를 다음달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강동효·김정욱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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