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沒落하는 국가의 조건

강천석 논설고문 입력 2018. 11. 23. 23:44 수정 2020. 11. 11. 17: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 잃은 나라는 '역사 墓地'에 묻혀
시민단체처럼 정부 운영하는 지도자와 그에 迎合하는 국민들
강천석 논설고문

전략의 출발은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앞의 것이 ‘지리(地理) 감각’이고, 뒤의 것이 ‘역사 감각’이다. ‘상대를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아는’것도 이 두 가지 위에서 가능하다. 역사는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은 국가들의 무덤이다.

1871년 독일을 처음 통일했던 비스마르크는 후대(後代)에 두 가지 생존의 지혜를 물려주었다. 하나는 서쪽 프랑스, 동쪽 러시아와 이룬 국경이 산맥이나 바다처럼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당부다. 양쪽을 적으로 삼거나 양쪽과 동시에 전쟁을 벌이는 것은 '국가의 자살'과 같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내부가 분열됐을 땐 어김없이 외세(外勢)가 개입했다는 교훈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남긴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은 곧 잊혔고, 독일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양면(兩面) 전쟁을 벌이다 패배했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인천과 중국 산둥반도 간 거리(350㎞)는 서울~부산(325㎞)과 같다. 중국은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자국 동해안에 36기의 원전(原電)을 운용하고 20기의 원전을 새로 짓고 있다. 2030년 무렵 중국 원전은 110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1976년 중국 탕산(唐山)에서 규모 7.8의 지진으로 24만여명이 사망했다. 탕산과 원전 밀집 지대는 지척(咫尺) 간이다. 산둥반도 원전 사고 낙진(落塵)은 편서풍(偏西風)을 타고 하루 안에 한반도에 도달한다. 원전 대신 모든 저수지를 태양광 패널로 덮겠다는 현 정부 탈(脫)원전 정책에는 '지리 감각'이 없다.

서울~베이징은 952㎞다. 서울~워싱턴 1만1157㎞, 서울~도쿄 1155㎞다. 한국 GDP는 1조7000억달러, 미국 20조5000억달러, 중국 14조1000억달러, 일본 5조2000억달러다. 한국은 중국 경제성장에 올라타는 혜택을 누렸지만 작년 사드 배치 파동 때 벌거벗은 중국 모습을 봤다. "가엾은 멕시코, 하느님에게선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구나." 20세기 초 멕시코 대통령의 탄식이다. '멕시코'를 '한국'으로 '미국'을 '중국'으로 갈아 끼워보면 미래 한국이 보인다. 지금처럼 미국을 무신경하게 대하면 중국 관계에서 먼저 탈이 날 것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5시 쿠데타군(軍)은 방송국 숙직 아나운서를 깨워 혁명 공약 6개 항을 낭독하게 했다. 제2항이 'UN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이다. 쿠데타 세력도 대한민국 정부의 연속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현 정권은 제대로 된 방어(防禦) 논리도 준비하지 않은 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관해 일본과 한 합의와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그 결과 일본으로부터 "국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 간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훈계(訓戒)를 듣고 있다.

선박 조타실에는 배가 좌우로 어느 정도 기울었는지 알려주는 클리노미터(Clinometer)라는 계기(計器)가 달려 있다. 보통 선박은 35도까지 기울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세월호처럼 불법 시설이 증축(增築)됐거나 짐을 과적(過積)할 경우 더 낮은 각도에서도 복원력을 상실하고 침몰한다. 세월호는 선박 관제센터에 '배가 기울어 승객이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라고 보고한 뒤 뒤집혔다.

정부는 지난 1년 반 민노총 주문으로 한국 경제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등 각종 짐을 마구잡이로 실었다. 승객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선장은 "계기판 바늘이 반가운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물 들어 올 때 노를 젓자"고 한다

영국과 유럽 사이의 도버해협은 폭(幅)이 33㎞, 대한해협은 200㎞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좁은 도버해협을 건너지 못했다. 그러나 그보다 6배 넓은 대한해협은 한반도를 지키는 방벽(防壁)이 되지 못했다. 자신을 지킬 능력과 의지가 없는 국가엔 산맥도 바다도 소용이 없다.

한국 학교에선 19세기 말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북아에서 벌인 불안한 경쟁의 희생자가 조선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진실의 절반이다. 어느 역사가는 '외부 세력에 맞서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던 조선의 무능(無能)이 동북아 불안 요인이었다'고 했다.(피터 두스 '주산과 칼')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여기 있는지 모른다.

위기의 본질은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고 정부를 시민단체처럼 운영하는 지도자와 국민 상당수가 그에 영합(迎合)하는 현실이다. 듣기 불편해도 진실은 진실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