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보컬리스트로 진화한 '노라조' 출신 이혁
감미로운 저음까지 두루 탑재
노라조에 묻혀 보이지 않던
다채로운 매력 솔로로 발산
[스쿨오브락-83] 투수에게 있어 강속구는 엄청난 무기다. 시속 160㎞ 가까운 직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면 솜씨가 어지간히 좋지 않고서야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기 힘들다. 그래서 경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무리 투수 중에 강속구로 무장한 투수들이 많다. 9이닝을 치르느라 체력이 소진된 타자들이 빠른 볼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보스턴 레드삭스를 우승으로 이끈 마무리 투수 크레이그 킴브럴 역시 미국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다. 여러 구단을 거쳐 지금 뉴욕 양키스에서 뛰고 있는 아롤디스 채프먼은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볼을 던진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는 투수다. 그 역시 보직은 마무리 투수다. 105마일, 시속으로 변환하면 시속 169㎞의 믿기지 않는 공을 던진 마법의 투수다(비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시속 170㎞를 넘는 공을 던진 것으로 나와 있다. 160㎞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를 찾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을 던지는 셈이다).
하지만 야구에서 빠른 공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당장 메이저리스 밑 단계인 트리플A만 가봐도 시속 160㎞ 안팎의 공을 뿌려대는 파이어볼러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중 대다수는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왜 불같은 강속구를 가지고도 성공하지 못했을까.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제구력이 좋지 않으면 리그에서 생존할 수 없다. 타자 입장에서 제구가 안 되는 강속구 투수를 상대하는 법은 간단하다. 그냥 안 치고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알아서 볼넷으로 출루하면 된다(데드볼을 맞지 않을까 무서울 수는 있겠지만). 다른 하나는 효과적인 변화구를 탑재하지 못했을 경우다. 아무리 빠른 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던지는 공이다. 그렇다면 이를 쳐내는 타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타격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 최근 야구 트렌드를 볼 때 타자에게 더 유리한 야구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하는 곳에 공을 뿌릴 수 있는 로케이션이 되는 강속구 투수를 만난 타자는 어떻게 대처하면 될까. 만약 그 투수가 강속구 일변도의 투수라는 데이터가 나와 있으면 해법은 간단하다.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앞에다 놓고 가운데 몰린 직구를 받아치는 식으로 대응하면 된다. 빠른 공은 그만큼 반발력도 높기 때문에 배트 중심이 맞은 공은 생각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 그래서 강속구 투수라도 타자의 타이밍을 뺏을 수 있는 '오프스피드' 공 한두 개는 탑재해야 한다. 그래야 직구 타이밍을 노리던 타자를 상대로 기가 막힌 커브로 '루킹 삼진'을 잡을 수 있고, 변화구가 올지 직구가 올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타자를 상대로 강력한 패스트볼로 윽박지를 수 있다.

노래는 몸 내부의 성대 떨림과 공명을 통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엑스레이 카메라로 찍은 움직임 단편을 볼 수는 없지만 이 역시 수백 년간 쌓인 노하우가 세대를 내려오며 풍성해져 있는 데이터의 영역이다. 유튜브 보컬트레이너 동영상만 봐도 고음을 낼 때 어떤 입모양을 만들어야 하고, 어떤 호흡을 가지고 어떻게 소리를 돌려야 하는지 수만 가지의 노하우가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또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본인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쉽지 않다. 요컨대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배운 선수라면 직구 구속이 시속 130㎞는 무난히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시속 150㎞가 넘는 구간은 타고난 무언가가 받쳐줘야 한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음역을 확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노력만으로 대중 앞에서 노래를 완창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타고난 음역을 한 옥타브나 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물론 가성인지 진성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마법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이걸 해낸 임재범이라는 가수와 우리는 동시대에 살고 있다).
직구일변도의 투수가 '최고 투수' 반열에 오를 수 없는 것처럼 고음만 쏴대는 보컬 역시 명백한 한계가 있다. 대중의 취향은 갈대와 같아서 신묘한 음을 쏟아내는 절창의 음역대를 넋을 놓고 감상하다가도, 이내 트집을 잡아 박한 평가를 내리기 일쑤다. 사람의 귀에는 내성이 있어서 예측 가능한 음의 움직임은 물려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포인트의 고음에는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얼마 전 복면가왕에 가수 이혁이 두 번째로 얼굴을 내비쳤다. 두 번의 도전 모두에서 가왕 문턱 직전에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아쉬움을 삼켰다. 이번 복면가왕에 도전한 이혁은 나름의 칼을 갈고 나온 게 분명하다. 이혁은 최근 '이혁 TV' 등으로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데,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혁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게 확실해 보인다.
이혁은 잘 알려진 대로 그룹 '노라조' 멤버 출신이다. 언더그라운드 로커로 명성이 높던 이혁은 '녹색지대' 같은 그룹을 만들겠다는 파트너 조빈과 음반사의 제안에 넘어가(사실은 속다시피 해) '고등어' '슈퍼맨' '카레'같은 노래를 부르는 개그 콘셉트 듀오로 활동했다. 삼각김밥 머리를 쓰고나오는 조빈 옆에 서서 잘생긴 외모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하는 '부조화의 조화'가 노라조의 콘셉트었다(그러나 조빈 역시 실제 얼굴은 잘생겼으며 게다가 노래도 매우 잘한다).

노라조의 고음 보컬 이혁은 매우 독특한 존재였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손에 꼽히는 국내 최고 고음 보컬 중 하나다. 그는 야구로 치면 시속 160㎞에 가까운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다. 파사지오 구간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보컬은 중고음이나 고음에서 균일한 음색을 자랑한다. 초고음 샤우팅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노라조의 이혁은 거칠게 비유하면 사회인 야구에서 활동하며 시속 160㎞ 공을 뿌리는 이질적인 존재로 소비됐다(노라조의 음악이 사회인 야구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노라조가 추구하는 'B급 정서'를 비유한 말이다). 물론 노라조가 이혁의 솔로곡 등을 수록하며 음악의 다양성을 추구하기는 했지만, 노라조의 메인은 역시 '코믹'이었다. 따라서 이혁이 노라조를 넘어 본인이 가진 재능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대에서 '쉬스곤(She's gone)' 등을 완창하며 탁월한 고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노라조 소속으로서 이혁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개성이 넘치고 독특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혁이 복면가왕에 처음 나올 당시 그는 노라조 탈퇴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복면가왕을 본인의 음악색깔을 펼치기 위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그는 2017년 1월 복면가왕에 출연해 다음달인 2월 노라조에서 탈퇴한다). 그 당시 그가 3라운드에서 불렀던 바람꽃의 '비와 외로움'은 최고음이 3옥타브 솔까지 치솟는 초고음으로 무장한 극악 난이도였다. 후반부 후렴 '쓸쓸함이 쌓이네'를 외치며 두성으로 질러대는 초고음은 다수의 관객을 홀렸다. 홀로서기에 나서는 이혁 입장에서 '복면가왕'이라는 큰 무대에서 본인이 가장 강점이 있는 시속 160㎞의 공을 뿌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혁인 것을 미리 알아차렸던 관객 입장에서는 다분히 예상할 수 있는 곡의 흐름이었다(그렇다고 이혁의 고음이 뻔한 것은 절대 아니다. 시속 160㎞짜리 공을 던지겠지라고 예상을 하는데 정말로 시속 160㎞ 공이 들어오면, 뻔한 예상인데도 여전히 경이롭고 놀랍다).
하지만 1년10개월 만에 또 한번 복면가왕에 나온 이혁은 좀 다른 선택을 했다. 이혁의 진화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가 라운드 중간에 선보인 개인기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는 여기서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 성대모사를 했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다들 알다시피 초저음으로 유명한 대표적 캐릭터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울림통 좋은 보이스에 실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존재다.
이혁은 이제 단순히 고음에만 의존하는 패턴을 버리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사실 노라조 앨범에서도 많이 시도했던 패턴이지만 큰 무대에서 이혁을 상징하는 것은 역시 고음이었다). 그가 복면가왕에서 가왕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무대인 3라운드에서 임재범의 '줄리'를 선곡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임재범은 알다시피 타고난 초저음 성대를 갈고 닦아 본인이 가진 음역대의 한 옥타브 위의 음을 손에 넣은 기인이다. 넓은 음역대를 기반으로 하는 임재범의 보컬은 입체적이다.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떨어지는 커브와 같은 저음으로 관객을 홀리다가 끝도 없이 올라가는 초고음으로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어떤 노래를 가져와도 임재범이 부르면 그의 노래가 된다. 임재범이 전성기를 보낸 시절에 활동한 '외인부대' 앨범에 실린 줄리 역시 임재범 특유의 넓은 음역대가 주무기인 곡이다. 이혁은 이 노래를 임재범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완창했다. 단점으로 지적되던 성량이 작아 보이는 저음과 고음에서 종종 나오던 부정확한 발음은 사라졌다(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여기에는 아픔이 있다고 한다. 이혁이 어린 시절 그의 얼굴로 떨어진 스피커 때문에 그는 잘릴 혀를 붙이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특유의 혀 짧은 소리가 종종 나온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아픔을 딛고 한국을 대표할 만한 보컬 실력을 갖추게 된 것 자체가 피나는 이혁의 노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혁은 시속 160㎞의 직구만 밀어붙이는 강속구 일변도 투수가 아니다. 체인지업과 커브 슬라이더를 자유롭게 던지면서 강속구는 기본으로 탑재한 괴물로 진화할 조짐이 보인다. 이제 이혁의 노래를 듣는 청자들은 감동의 깊이 역시 배가될 수 있다. 초고음이 나오기 이전 구간에서 이혁이 던지는 변화구에 싱숭생숭한 마음은 초고음에서 터지는 이혁의 두성 보컬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단언컨대 이혁의 두 번째 복면가왕 무대는 이혁을 진정한 전성기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이혁은 이제 단점이 거의 없는 보컬로 진화했다.
이혁은 비교적 일찍 아버지와 이별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음악을 하던 분이었는데, 음악으로 밥 먹기 힘들다고 생각해 이혁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혁이 성인이 되기까지 기타를 아예 집에 들여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타를 수리하기 위해 잠시 기타를 집에 들여놨는데, 그 다음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혁은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일기장을 봤는데, 그때 음악을 너무나 하고 싶은데 생계 때문에 힘들어 그럴 수 없었던 아픔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혁은 그걸 보고 유명한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이혁의 바람은 이미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 남은 과제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에서 올타임 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급 마무리 투수로 진화할 수 있으냐 없느냐의 문제다).
이혁의 심성을 알 수 있는 노래 중 노라조에 실린 '아버지'란 곡과 '마더 오브 마인(Mother of Mine)'이란 곡이 있다.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게 헌정한 곡이다. 절절한 가사가 돋보인다. 이혁이 앞으로도 꽃길만 걷기를 기대한다. 이혁의 팬이 되고 싶다면 최근 그가 활발히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 가입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아버지>
따스한 봄날 함께한 순간 너무나도 그리워
잘될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날 지켜준 사람
보고 싶어서 꼭 듣고 싶어서
기억 속을 헤매요 만날 순 없지만
아름다웠던 지난 시간이 이젠 추억이되고
당신을 보며 꿈을 키웠던 시절이 그리워
당신을 닮은 남자로 커져가는 나 이젠
함께 한 약속 지킬 거예요
당신이 보여준 그 마음 갖고서
무대에 올라요 날 바라보세요
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
당신께 불러드릴 나의 이 노래
간절히 원했던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요
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
그 곳에서라도 날 지켜주세요
당신이 보여준 그 마음 갖고서
무대에 올라요 날 바라보세요
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
당신께 불러드릴 나의 이 노래
당신께 불러드릴 나의 이 노래
절 안아주신 당신의 사랑
영원히 잊지 않을 게요
<마더 오브 마인(Mother of Mine)>
다녀오겠습니다 서둘러서 나왔지 돌아보지도 못해 엉엉 울까봐
2년 동안 볼수 없다고 당신이 못 챙긴다고 아프지 말라고 편지하라고
꼭 그럴께 잘 이겨 내볼께 나 새 사람 될께
걱정하지마 건강하게만 있어줘
고맙다는 흔하디 흔한 말, 왜 엄마에게만
많이 아끼며 살아왔을까 후회가 돼
엄마 잔소리 땜에 똑바로 걸어서 아주 나쁜 사람은 되지 않았어
부족한 우리집 싫다고 원망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감사해하는 걸
어렸을 땐 왜 엄마 마음을 난 몰랐었을까
철이 없고 단지 어렸을 뿐일까
사랑한단 흔하디 흔한 말, 왜 엄마에게만
많이 아끼며 살아왔을까 후회가 돼
이제는 엄마 내가 꼭 지켜줄께
모든 거 내가 다 줄께 워
아프지 마 나랑만 살아 나 정말 잘할게
오래 오래 오래 오래 영원토록
큰소리로 나 지금 말할래 나 엄마 사랑해 워-
어디도 가지마 내 엄마야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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