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4000여명 '둥지'.."러시아 작은 도시에 온 듯"
[경향신문] ㆍ광주 월곡동 ‘고려인마을’

“한국인들이 고려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서로가 소통하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 21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난 박스베다씨(63)는 골목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고려인 후손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던 박씨는 수년 전 딸·아들 가족과 함께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툴고 달라진 환경에 적응도 안돼 특별한 일이 아니면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월곡동 골목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박씨가 가리킨 골목 끝에는 옛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의 러시아풍 건물들이 여럿 보였다. 초록색과 파란색, 빨간색 외벽의 건물들은 중앙아시아 작은 도시를 옮긴 듯 이국적이었다. ‘고려인마을 청소년문화센터’나 상점 이름 등도 모두 큼지막한 러시아어로 된 간판을 달았다.
고려인들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던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러시아풍으로 꾸민 것이다. 인근에 사는 양모씨(56)는 “주변에 러시아어로 된 상점들도 많아져 언뜻 보면 러시아의 작은 도시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주말이면 이런 모습을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은 전국에서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 중 한 곳이다. 산업단지와 가까우면서도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주택가인 이곳에는 2003년 3∼4가구의 고려인이 첫 둥지를 튼 이후 현재는 4000여명이 모여 사는 곳이 됐다.
이들을 상대로 고려인들이 직접 차려 운영하는 상점도 여럿 생겼다. ‘무용학원’이나 ‘음식점’ 등의 간판은 러시아어 아래에 한국어를 함께 적었다. 신조야 사단법인 고려인마을 대표는 “고려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각종 상점이 현재 12개 정도 된다”면서 “한국인들이 인근에서 운영하는 상점도 대부분 고려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 밀집지역이 되자 광산구와 고려인마을은 2019년까지 이곳을 ‘고려인마을 특화거리’로 꾸미고 있다.
마을에는 고려인마을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문화센터, 일일근로자대기소, 고려인마을지원센터, 어린이집, 역사박물관, 고려FM라디오 등이 들어서 있다.
이런 시설들을 따라 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골목길을 걸으며 이국적 풍경을 느낄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다. 지난 8월에는 골목길 입구 3곳에 러시아 전통인형인 마트료시카(차례로 작은 것이 속에 들어있는 인형)를 본뜬 마을 안내판도 설치했다. 고려인 선조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조형물도 설치할 계획이다.
신조야 대표는 “고려인들의 고난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마을을 찾은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볼거리 등을 제공해 한국인과 고려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동네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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