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SC] 한국의 세탁소는 컴퓨터 수리점?

2018. 11. 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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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세탁소
우리 세탁소 역사의 모든 것
간판에 '컴퓨터' 쓴 세탁소 유독 많아
1981년 이후 즐비..자동화 설비 도입이 이유
'잉꼬 세탁'·'돈세탁' 등 이름도 재밌어
가장 오래된 곳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세탁소

[한겨레]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 있는 세탁소 ‘무지개 패션 크리닝’의 주인 신순호씨가 손님의 옷을 다림질하고 있다. 33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탁소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인터넷에 ‘컴퓨터 클리닝’을 검색하면 세탁소들이 주르륵 뜬다. 당연한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수십 년을 보아온 입장에선 무심결에 지나치지만, 한국의 세탁소 간판이 낯선 외국인이라면 컴퓨터 내부 청소를 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1988년 문을 연 ‘싼타 컴퓨터 세탁나라’ 바로 옆에는 컴퓨터 주변기기 판매와 사후 서비스(AS)를 하는 진짜 컴퓨터 상점이 간판을 나란히 한 적도 있다. 두 컴퓨터 중 지금은 세탁소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컴퓨터라는 표현이 세탁소 간판에 쓰이게 된 시점은 퍼클로로에틸렌을 용제로 하는 전자동 세탁 시설이 도입된 1981년 이후부터다. 1983년 말에는 ‘퍼크로세탁’, ‘컴퓨터 세탁’이라는 간판만 달아놓고 폭리를 취한 업소를 고발하는 신문 기사들도 보인다. 사단법인 한국세탁업중앙회 이성범 사무총장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초창기 ‘워셔기’(세탁기)는 수동으로 돌리는 형태였다. 그다음 반자동을 거쳐 완전자동인 현재 형태의 워셔기가 보급이 되기 시작했다. 자판이나 작동 버튼을 눌러서 입력을 하면 컴퓨터 회로가 제어를 한다는 의미다.”

소규모 세탁소가 주택가에 들어서기 시작한 무렵도 1980년대 중반을 넘어오면서부터다. “세탁업은 생활환경 변화와 밀접한 업종이다. 아파트로 주거 문화가 바뀌면서 양복과 교복의 대량 세탁 수요도 생겼다. 기성복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그전까지 양복과 양장을 맞춰 입던 이들이 대거 세탁업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몸의 치수를 쟀던 기억이 남아 세탁소에 수선을 의뢰하는 이들이 있었다.” 외국의 세탁소와 달리 우리나라 세탁소들이 세탁과 수선을 겸하게 된 배경이다.

‘세탁소’ 하면 유독 흔히 쓰이는 이름이 있다. ‘백양’, ‘백성’, ‘일광’, ‘백조’, ‘무지개’ 등이 그렇다. 현재 영업 중인 ‘백양세탁소’만 해도 400곳이 넘는다. 세탁업 등록현황자료를 살펴보면 오래된 세탁소들 대부분이 ‘○○사’로 등록되어 있다. “1980년대 이전의 세탁소는 단순한 세탁 공장 형태였다. 지금은 의류마다 섬유 혼용과 부자재가 다양해서 세탁 공정이 까다롭지만, 과거에는 ‘면 100%’, ‘모 100%’ 하는 식으로 소재가 단일하다 보니 세탁 공정도 단순했다. 지역의 세탁물을 수거해서 세탁 공장이 처리하는 식이다. 이곳에서 세탁 기사 생활을 하던 분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져 세탁소를 차리면서 이름을 따왔고, 또 회사라는 개념이 이어져서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도 ‘사’자 돌림을 쓰게 된 것으로 본다.” 이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에 백양사와 경일사, 삼각지 인근에 조양사. 영등포동 일광사. 명륜동에 명륜사. 대치동에 학사사. 부산에 백성사와 한미사, 마산에 매일, 대구에 금수. 전주에 전일. 수원에 백설이 다 이름난 세탁 공장이었단다.

1914년 조선호텔(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개관 당시 호텔 내 있던 세탁소 풍경. 현재 외부 고객 대상 세탁 서비스는 중단한 상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제공

세탁소 간판을 들여다보면 사람도, 시절도 짐작할 수 있다. ‘잉꼬 세탁’은 부부가 차렸겠구나 싶고, ‘백조 세탁소’나 ‘무지개 세탁소’는 1969년 출시된 금성사(현 엘지전자)의 ‘백조 세탁기’, 대한전선의 ‘무지개 세탁기’를 떠올리게 된다. 뜻밖의 이름으로는 ‘취미 세탁소’라는 게 있다. 전국에 8곳이나 된다. ‘취미로 한다는 뜻’ 같기도 하고 ‘취미를 세탁해준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한 포털의 ‘로드 뷰’로 확인해보니 ‘돈세탁’을 간판으로 쓰는 곳도 세 곳 영업 중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세탁소는 1914년 조선호텔 개관 당시부터 이어져 온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세탁소다. 올해 7월31일을 끝으로 104년 역사를 마감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장민진 신세계조선호텔 과장은 “투숙객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 고객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은 맞지만, 세탁부는 종전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세탁소 돈을 받고 남의 빨래나 다림질 따위를 해 주는 곳.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는 정계 입문 당시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을 내세워 성실한 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가수 윤도현도 세탁소를 운영하던 부모의 곁에서 음악인의 꿈을 키우던 시절을 노래의 랩 가사로 옮긴 바 있다. 2018년 11월 기준, 세탁업으로 등록된 업체는 전국 2만8천여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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