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부부의 고통 "성생활 자유로울거라 오해하더라"

이에스더 입력 2018. 11. 22. 07:06 수정 2018. 11. 22. 08: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다양한 가족(동거가족) 간담회'에 참석한 방송인 허수경씨 [여성가족부 제공]
“(동거 가족은)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한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가더라도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권한도 없습니다.”

방송인 허수경 씨는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여성가족부의 ‘다양한 가족(동거가족) 간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허씨는 “의지하고 함께 사는 동반자가 있더라도 자녀들의 반대나 다른 이유로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함께 사는 두 사람이 부부와 유사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동반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남편과 7년째 동거 중이다. 아들(21)과 딸(11)은 각각 남편과 자신의 호적에 올라있다. 엄연한 가족이지만 법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저는 동거 부부이지만, 법적으로 ‘한부모 가정’이다. 이런 사실이 아이들 또래 집단에 알려지게 되면 놀림감이 돼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라며 “부모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 현재 존재하거나, 앞으로 비중이 늘어날 다양한 형태의 가정 아이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허씨를 포함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동거 중인 남녀 8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동거가족으로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 정부정책이나 사회인식 속의 차별과 편견 등을 털어놨다.

결혼과 동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달라지고 있지만 동거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높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살 수 있다.”라는 비율이 56.4%로 2010년 조사 이래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또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비율(30.3%)도 처음으로 30%를 돌파했다.

하지만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다양한 가족의 출산 및 양육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동거경험자(253명) 중 부정적 시선이나 편견 등 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51%에 달했다. 또 정부의 지원이나 서비스 혜택 등에서 차별을 경험한 비율이 45.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간담회 참석한 조세진(가명)씨는 아내와 12년째 동거 중이다. 조씨는 “주변에 동거한다는 사실을 밝히면 ‘오~좋겠네’ ‘부럽다’식의 반응을 보이곤 한다. 성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이런 반응을 접하면 불편하다”라고 털어놨다. 동거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다보니 가족들에게도 밝히지 못한다. 조씨는 “아내 부모님에겐 동거 사실을 알리지 않아서 부모님이 집을 찾는 날이면 내 물건을, 신발까지 다 치우곤 했다”라고 말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11월 21일(수)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에서 열린 '다양한 가족(동거가족) 간담회'에 참석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던 가족들을 포용하고, 가족형태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여성가족부 제공]

이지은(가명)씨는 결혼과 출산을 맞바꿨다. 그는 함께 사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수십년간 다르게 살아온 자신과 남편의 가족의 결합이 부담스러웠다. 이씨는 “아이를 낳으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아 낳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산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거 생활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도망자 같이 숨어지낸 세월’이라고 회상했다.

또다른 참석자 김지연(가명)씨는 동거 가족들이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씨는 “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데, 만약 배우자로 인정되면 (남편의) 피부양자가 돼 부담이 줄어든다. 사소하지만 자동차 보험료나 주택청약 할때도 1인 가구로 분류돼 차별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김씨가 ‘결혼’하지 않은건 결혼이 당사자 만의 결합이 아닌 가족 간의 결합이란 점에 부담을 느껴서다.

지난 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미혼모나 비혼 가족 등 어떤 가족 형태라도 아이와 함께 아이와 행복한 세상을 목표로 보건복지부ㆍ여가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 당사자등과 함께 가족다양성TF를 꾸렸다. 혼인신고가 아닌 출생신고시에 부ㆍ모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비혼 동거 부부도 법적 부부와 같이 난임 시술 지원을 받는 등의 대책이 제시됐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