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화폐는 휴지, 황금만이 살길"..베네수엘라판 골드러시

최상현 기자 2018. 11. 2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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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휴지조각 만도 못한 남미 베네수엘라에서는 먹고 살기 위한 주민들의 몸부림으로 현대판 ‘골드 러시’가 불어닥쳤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국립공원까지 마구잡이로 파헤쳐지고 있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정권 연장을 위해 이를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베네수엘라 주민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볼리바르화 대신 현물 가치가 보장된 금을 캐기 위해 금광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2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역대 최악의 경제 위기로 올해에만 물가가 1만4000배 상승한 베네수엘라에서는 돈의 가치가 0에 가깝다. 이에 주민들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느니 곡괭이를 들고 가서 금을 캐는 쪽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휴지조각 만도 못한 남미 베네수엘라에 현대판 ‘골드 러시’가 불어닥친 가운데, 유네스코가 지정한 카나이마 국립공원이 노천광산 개발로 황폐화됐다. / WSJ

미국의 경제제재와 유가 급락으로 정권 붕괴 위기에 빠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골드 러시’를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금은 절대로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며 남부지역 약 11만㎢ 면적에서의 광산 채굴을 허용했다.

문제는 광산 지대 사이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카나이마 국립공원’이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립공원에서의 채굴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WSJ는 마두로 대통령의 방조 하에 채굴꾼들이 국립공원의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며 생태 보호에 앞장서 온 토착 원주민들도 아이들까지 동원해 금 캐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 환경단체는 "위성 사진으로 관찰한 결과 국립공원 가장자리에서 30개 이상의 광산이 식별됐다"고 했다. 금 채굴은 국립공원의 자연 환경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노천 광산 채굴 과정에서 축구장보다 큰 구덩이가 파헤쳐지고, 금 정제 공정에는 화학약품과 수은 등의 중금속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대변인은 "베네수엘라 정부에 금광 채굴이 공원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골드러시로 채굴꾼 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과 콜롬비아계 반란 단체인 민족 해방군까지 국립공원에 몰려들었다. 지난 10월에는 조직간 무력 충돌이 일어나 광부 17명이 숨졌고, 이달초에는 베네수엘라 국군 3명이 숨졌다.

이렇게 채굴된 금은 정부 브로커의 손을 거쳐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넘어가고, 최종적으로 터키에 맡겨진다. 마두로 정부는 올해에만 거의 10억달러 상당의 금을 터키에 예치했는데, 이는 터키가 미국의 제재 영향권에서 벗어나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와의 금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지난 1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도 베네수엘라가 맡겼던 5억5000만달러 상당의 금 14t 인출을 거부했다. 하지만 제재 조치 강화에도 마두로 대통령의 ‘금 사랑’과 베네수엘라판 골드러시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인권단체 WOLA의 게오프 램지 분석가는 "유가가 떨어지면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에 더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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